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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상담 일지] 11회 차

너무 들떴다가 다시 벌 받을까 봐 무서워요

by 우주먼지

12회 차 상담은 초반에는 비교적 우울하지 않고, 현재의 가족에서 생긴 고민과 답답함을 토로하느라 40분 정도를 써버렸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전문가의 입장에서 듣고 싶어서 조언을 구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지난 몇 개월보다는 마음이 편해졌음에도 불구하고, 문득문득 내가 이렇게 마음이 편해져도 되는 것인가에 대한 불안감이 찾아왔었다.


상대방이 내 카톡에 단답을 하면, '아 내가 너무 귀찮게 했나.' 싶어서 조마조마했고

축하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축하받을 일이 있다가 나중에 슬픈 일이 생기면 어떡하지.' 하면서 무서웠다.

체력으로 힘들어서 힘이 빠지다가도, 지금 이 시간들을 감사하지 못하면 나중에 더 큰 벌을 받을까 봐 두렵기도 했다.


나는 내가 마음이 편하고, 들뜨고, 기분이 좋아지다가 주체를 못 하고 다른 사람한테도 신남을 들키면 바로 아차 하게 된다. 너무 거만했나 싶고, 감사함을 잊은 것에 대한 벌을 받을까 봐 무섭다.


선생님께서는 이런 말을 듣고 안타깝다고 하셨다.


그런데 나는 후회하는 감정이 너무 싫다. 고등학교 때 공부한답시고 있는 없는 짜증을 다 내며 입시 공부한 게 가장 후회되는 일 중 하나인데, 그래서 지금은 후회하는 감정을 다시 느끼기 싫어서 (너무 고통스러우니까) 그런 일을 아예 차단한다.


상대방이 나에게 너무 잘해주면, 내가 이런 호사를 누려고 되나 좋으면서도 두려워진다.

상대방이 죽으면 어떡하지, 사고 나면 어떡하지 등등의 극단적인 상상으로 이어져 잠시 연락이 안 되는 2시간도 마음이 두근거리면서, 그동안 내가 잘못한 일이 뭐가 있나 되짚어본다.

'아 내가 그때, 마음을 나쁘게 먹어서 이런 벌을 받나'

'아 내가 그때 그 사람을 시기하고 질투해서, 나 대신 상대방이 벌을 받았나.'


그런데 오늘은 이런 생각하는 내가 가식적으로 느껴진다.


어제 나의 가장 친한 친구로부터 이런 문자를 받았다.

'너는 엄청 눈치 보는 척 하지만, 사실 눈치도 없고 배려도 없는 애야. 그러니까 그렇게 착한 척 좀 하지 마.'


옛날에, 고등학교 때도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착한 척 좀 하지 마'


생각해 보니 대학교 때도

'착한 척하지 마'


이런 말을 들으면 내 마음을 들킨 기분이다.

맞다. 나는 사실 착한 사람은 아니다.

시기도 많고, 질투도 많고, 욕심도 많고... 속으로 욕을 하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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