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마시다 결심한다, 변하자.
집 커피는 근사한 카페와는 다른 특유의 매력이 있다. 내가 가장 편한 곳에서 가장 편한 마음으로 있다 보면 마음속에 몰아치던 어떤 것에 대한 복잡한 생각이 하나 둘 정리되어 아, 그러네. 하고 명료한 끝을 보게 된다.
어젯밤, 모처럼 일찍 일을 마치고 조금 여유롭게 들어오니 밤이지만 커피 생각이 들었다. 흠… 이번엔 어떤 원두를 마셔볼까?
얼마 전 배송 온 예가체프?
가짜라고 무시했지만 손이 가는 루왁?
집 앞 내 마음속 커피집의 블론드?
뽀얀 거품이 매력적인 앵커 커피?
루왁이다, 이번엔.
커피를 내려서 설탕을 세 티스푼 넣고 방금 사 온 오트 밀크를 넣었다. 신선한 오트 밀크의 고소함이 풍겨 나와 마음이 너무 설렌다.
요즘 나는 어떤 문제에 대한 고민은 오랫동안 하고 있다. 커피를 들고 조용한 방 안에 앉으니 자연스레 그 문제가 떠오른다. 나는 지금 변화를 해야 할 시기인데, 결심이 쉽게 서지 않는구나.
커피 한 모금 호로록, 그리고 생각.
커피 한 모금 다시 호로록, 또 생각.
조용한 방 안에서 커피의 모락모락 김과 그 위의 차분한 내 눈만이 깜박이는 소리를 낸다.
마음속으로 분명 ‘이게 맞아.’라고 생각했지만 지금까지 해오던 일상이나 습관, 익숙한 일 등등의 이유로 어떤 결정을 쉽게 내리지 못하거나 주변에 끊임없이 ‘어떻게 생각해?’라고 묻는 사람이 많다. 나도 그렇다.
누구 하나 시원하게 그래, 일단 해봐!라고 말해주길 간절히 바라지만 우리는 보통 변화를 원하지 않으니까. 겁나니까.
가족, 친구, 선배, 동료 모두에게 물어봐야 ‘하는 일 착실하게 하며 아끼면서 살아라’라는 식의 조언이 돌아오고 나는 마음이 답답해진다.
분명 마음속으로 이게 아니다, 싶어서 결심을 했었는데 주변에 여러 차례 이 ‘확인 도장’을 받는 과정에서 내 변화의 의지는 스멀스멀 수그러지고 역시 그냥 있는 게 낫겠지, 라는 물에 물 탄듯한 그 흐릿한 감정만 남는다. 하지만 마음은 시원치 않다.
우리 주변의 사람들은 당연히 아니 왜? 하고 말한다. 왜냐? 우리가 좋은 모습만 보이기 때문이다.
좋은 것만 보여주고,
좋은 점만 이야기하고
나는 행복하다, 그렇게만 말한다.
당연히 그들은 속사정은 모른다.
우리가 변화가 필요한 그 시점이 우리가 움직여야 할 때이다. 누구에게 ‘사전 동의’ 같은걸 받을 필요가 없다. 누구에게 내 계획을 이해시킬 필요도 없다.
변화를 받아들이고 새로운 것에 적응하고 만 뒤 주변에 나 사실은 ~~~ 바꿨어. ~~~ 하기로 했어,라고 말하면 아, 그래? 알겠어.라고 할 것이다. 결국은 나의 인생인데 내가 알아서 한 결정에 누구 하나 토를 달지 않는다. 그 결정에 주변 모두의 주머니 사정이 휘몰아치지만 않는다면. (슬픈 현실).
내 결심을 ‘그게 옳다’라는 누구의 동의를 받기 위해 설명할 필요도, 내 결심을 수그릴 필요도 없단 말이다.
누군가의 ‘아니 왜, 지금도 괜찮은데’라는 만류로 내 결정을 슬며시 옆으로 미루고 살면 반드시 나중에 ‘그때 그랬어야 했는데!!!’ 하며 후회하게 된다. 그때는 오직 나만을 탓해야지. 하는 것도, 안 하는 것도 내 결정이니까.
변화는 언제나 설레지만 두렵기도 하다. 그런데 헤쳐나가 보면 또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 다 해내게 된다.
커피를 다 마실 때쯤 나의 얼굴은 조금 더 단단하고 단호하게 변했다. 그래, 변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