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문장

완벽한 회복을 강요하지 않아도 되는 날

by 김지윤

TV 드라마처럼 삶이 명확하게 ‘기승전결’로 흘러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드라마 주인공에게도 아픈 순간이 생기고, 감정이 절정에 닿으면서 이겨내는 순간에 ‘회복’이라는 결말이 따라오는 그런 구조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아픔은 예고 없이 찾아오고, 아무런 절정도 없이 흘러가버리며, 회복이란 것도 뚜렷한 장면 없이 그냥 하루를 흘려보내는 일상의 반복일 때가 많다.


그래서였을까. 내가 어떤 책에서 마주친 이 문장은 오래도록 내 마음에 남았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
— 김신회,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


이 짧은 문장이 스며든 건, 나도 모르게 나를 몰아세우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괜찮아?”라는 말에 "응"이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을 때


“요즘은 좀 괜찮아?” 친구가 조심스레 물었을 때, 나는 반사적으로 “응, 이제 괜찮아졌어”라고 대답했다. 그 말은 거짓이었다. 마음 깊은 곳에서는 여전히 괜찮지 않았고, 생각은 복잡했고, 감정은 여전히 흐트러져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늘 ‘괜찮아져야만 할 것 같은’ 압박을 느끼곤 했다.


“아직도 그 일로 힘들어?”라는 말을 듣게 될까 봐.
“이제 좀 털어내야지”라는 말이 돌아올까 봐.


사실 그 말들이 틀린 건 아닌데, 그 말들을 들으면 마치 내가 너무 오래 힘들어하고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괜찮지 않아도 괜찮지 않다고 말하지 못했다. 오히려 더 괜찮은 척을 하고, 잘 지내는 듯한 말투로 대화를 이어갔다. 그럴수록 마음은 더 멀어지고, 나는 더 혼자가 되었다.


그때 책 속에서 만난 문장 하나가 불쑥 들어왔다.


그날도 기분이 가라앉은 채 집으로 돌아와, 책장을 아무렇게나 넘기고 있었다. 그러다 김신회 작가의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라는 책에서 이 문장을 마주쳤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


처음에는 무심하게 넘기려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다시 책장을 거슬러 올라가 그 문장을 또 읽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 내 속마음을 들여다보고, 조용히 손을 내민 것처럼. 그날 이후로, 나는 그 문장을 자주 떠올렸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하루가 저물어갈 때도.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고. 조금 멈춰 있어도 괜찮다고. 내가 지금 서 있는 이 자리 그대로도 괜찮다고.


회복이라는 이름의 강박


우리는 흔히 ‘회복’을 어떤 목표처럼 여긴다. 우울했던 날들, 아팠던 순간들, 부서졌던 관계들, 무너졌던 자신을 다시 ‘회복’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 이상 아프지 않아야 하고, 다시 활기차게 살아가야 하며, 웃으며 사람들을 대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런데 회복은 그렇게 단순하게 측정되지 않는다. 어떤 날은 눈물을 흘리는 것만으로도 회복일 수 있다. 어떤 날은 외출하는 대신, 집에 있는 나 자신을 미워하지 않는 것이 회복일 수 있다. 그러니까 회복은 완벽한 ‘이전 상태로의 복귀’가 아니라,‘지금의 나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하지만 우리는 회복을 해야 한다는 조급함에, ‘아직도 이런 나’를 쉽게 탓한다. “왜 이렇게 나약하지?”, “이제 좀 그만해야 하지 않아?”. 그런 말들을 스스로에게 쏟아붓고, 결국 자존감만 깎이며 더 깊은 어둠 속으로 들어간다. 그럴 때 필요한 건 누군가의 조언이나 해결책이 아니라, 그저 이 한 문장일지도 모른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


나는 그 문장을 마음속에 품은 이후로, 스스로를 대하는 방식이 조금 달라졌다. 전처럼 완벽하려고 애쓰지 않았고, 무기력한 하루를 보낸 나에게도 “그래도 오늘 수고했어”라는 말을 해주기 시작했다. 남들보다 한참 느린 걸음으로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도, “괜찮아, 너는 너의 속도로 가고 있는 거야”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SNS에 올라오는 ‘회복 서사’들이 새로운 운동을 시작했다, 아침 6시에 일어난다, 긍정적인 사람이 되었다는 글들을 보면 한편으론 나도 빨리 괜찮아져야 할 것 같고, 뭔가 시작해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곧 깨달았다. 그건 그 사람의 리듬이고, 나는 내 리듬대로 살아도 된다는 걸. 회복에는 정해진 속도가 없다. 누군가는 2주 만에 잊을 일을 나는 몇 달씩 끌 수도 있고, 누군가는 3년 동안 품은 감정을 나는 아직도 들여다보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그만큼 마음을 진지하게 대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문장은 누군가의 말보다 깊게 스며들 때가 있다. 시간과 상관없이, 맥락 없이, 그저 가볍게 눈에 띄었을 뿐인데 그날따라 이상하게 가슴 깊은 곳에 박히는 문장.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 이 문장이 내게 그랬다. 지금도 여전히 나는 완벽하게 회복된 상태가 아니다. 어떤 날은 여전히 흐리고, 어떤 날은 이유 없이 울컥한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나를 탓하지 않는다. 그저 오늘 하루를 이렇게 통과할 수 있었던 나에게, 작은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이 글을 읽고 있는 누군가에게도 이 문장이 조용한 위로로 스며들기를 바란다. 지금은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고. 그 말 한마디면 충분할 때도 있다는 걸 기억해주었으면 한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


이 말이 마음속에 오래 남아,
오늘을 살아내는 당신에게 조용한 등불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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