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나이를 파도처럼

감성을 품은 채 나이 든다는 것

by 김지윤

나이를 파도처럼, 감성을 잃지 않기 위해


나는 요즘 '나이 듦'이라는 단어를 자주 떠올린다. 이전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숫자에 불과했다.한 해가 지나고 나면 하나가 늘어나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요즘은 다르다. 거울에 비친 나를 볼 때, 친구들과 대화를 나눌 때, 예전과는 다른 감정이 스며든다. 무언가를 결정할 때도, 예전 같으면 가볍게 지나갔을 고민들이 더 무겁고 진지해졌다. 그리고 자연스레 질문이 따라온다. '나는 지금, 어떻게 나이 들고 있는 걸까?', 그러다 김이나 작사가님의 책 『보통의 언어들』에서 한 문장을 만났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파도를 타듯 자연스러울 때 근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 무언가 마음속 깊은 곳이 건드려지는 느낌이었다. '파도, 자연스러움, 근사함', 나이 듦이라는 주제를 두고 이렇게 다정하고 단단한 단어들을 함께 본 건 처음이었다. 그리고 문득, 나는 지금까지 '나이 듦'을 두려움의 언어로만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이 듦이 무서웠던 이유


사실 나는 나이 드는 것이 두려웠다. 단순히 주름이 늘고, 체력이 떨어지는 육체적인 변화 때문만은 아니었다. 내가 나답지 않게 될까 봐, 내가 지켜온 감정들이무뎌질까 봐, 지금까지의 내가 사라져 버릴까 봐. 두려웠다. 예전에는 쉽게 감동하던 장면이 감정 동요 없이 무덤덤해지고, 좋아하던 음악이 더 이상 설레지 않고, 작은 일에도 설렐 줄 알았던 마음이 점점 무디어지는 걸 느꼈다. 그러면서 스스로에게 실망했다. '나도 결국 그렇게 변해가는 건가?, 나이 들어간다는 건 이렇게 조금씩 메말라 가는 건가?', 하지만 김이나 작사가님이 쓰신 문장을 읽고 나서,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파도를 타듯'이라는 표현이 생각을 더 깊게 할 수 있는 디딤단어가 됐다. 파도는 멈추지 않는다. 흐르고, 밀려오고,다시 되돌아간다. 일정하지도 않고, 때론 거세고 때론 잔잔하다. 나이라는 것도 그렇게 흘러가는 것이라 생각이 들면서 두려움이 사르르 녹아 없어졌다.


감정을 품은 채 나이 든다는 것


이 문장을 마주한 뒤부터 나는 감정의 움직임에 더 귀 기울이기 시작했다. 여전히 가슴이 뛰는 순간이 있고, 말 한마디에 눈시울이 붉어지는 날도 있었다. 나는 달라진 게 아니었다. 감정은 여전히 내 안에서 살아 숨 쉬고 있었지만, 내가 외면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나이를 먹는다는 건, 그런 감정을 모른 척하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제 알고 있다. 세월의 파도가 밀려올 때, 버티려 애쓰기보다는 조용히 숨을 고르고 마음을 들여다 보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파도를 거스르기보다 함께 흐르되, 내 감정은 흐름 속에 흘려보내지 말고 품고 함께 흐르는것. 이렇게 나이 들어갈 수 있다면, 나는 나를 잃지 않을 수 있다. 그게 어쩌면 '근사한 나이 듦'이 아닐까. 겉모습이나 성취가 아니라, 수많은 파도를 지나며 지켜낸 내면의 감정으로 나이를 먹는것. 시간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는 수순함 가지고 감정을 품은 채 나이드는 삶이야 말로 훨씬 단단하고 온전한 나의 삶을 살아 가는 것이 아닐까.


순수함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나는 계속 순수하고 싶다. 어린아이가 세상을 바라보듯, 사람을 대하고 싶다. 계산하지 않고, 먼저 상처 주지 않으려 노력하고, 누군가의 이야기에 진심으로 귀 기울이고 싶다.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그런 감정들까지 포기하고 싶지 않다. 세상은 너무 빨리 변하고, 어른이 된다는 건 때때로 타협과 체면의 연속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나는 그 속에서도 나만의 감수성을 지키고 싶다. 이기적인 순수함이 아니라, 세상과 부딪히면서도 끝내 잃지 않는 따뜻함 말이다. 우리는 '철들었다.'는 말을 성장의 증표처럼 말한다. 하지만 나는 철들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철들지 않은 마음이 때로는 세상을 더 다정하게 만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감정을 기록하며 살아간다는 것


나는 감정을 잊지 않기 위해, 글을 쓴다. 감수성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나이 들어서도 여전히 마음이 살아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어떤 날은 흐릿하게 스쳐간 하루를 붙잡고, 어떤 날은 오래 남을 문장을 기록하기도 한다. 그 순간들은 글로 적으며, 나는 내 감정을 손으로 만질 수 있게 된다. 글은 내 감정의 증거다. 살아 있다는 것, 여전히 설렐 수 있다는 것, 나이 들어서도 마음은 여전하다는 것. 그걸 증면하기 위해 나는 오늘도 조용히 문장을 적어 나간다. 그리고 그 문장 속에 나를 담고, 나의 나이를 바라보게 된다.


나이 듦이 겁지 않는 이유


이제는 조금 달라졌지만, 나이가 든다는 것에 여전히두려움은 있다. 시간이 너무 빠르게 지나간다는 사실과 내가 놓치고 있는 것들이 많다는 자각을 하게 됐다.하지만 그 안에서 여전히 나다운 감정을 품고 있다는 확신도 함께 들었다. 나이 듦이란, 오히려 더 깊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전보다 쉽게 울지 않지만, 더 많은 의미를 담아 울게 된다. 쉽게 웃지도 않지만, 진심으로 웃는 순간이 더 소중해진다. 이런게 나이 듦이라면, 나는 두렵지 않다. 아니, 오히려 기대된다. 어떤 풍경을 만나게 될지, 어떤 문장이 내 마음에 남게 될지 말이다. 그리고 언젠가, 나 역시 누군가에게 이런 말은 전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나이 드는 게 겁이 났었는데, 오히려 괜찮은 삶이다.' 그렇게 내 문장 하나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 파도가 되기를. 그 문장 속에서, 다정하게 함께 흔들릴 수 있기를. 그게 내가 바라보는 나이 듦의 모습이 되기를, 오늘도 나는 다행히, 감정을 품고서 파도의 움직임을 따라 흘러가본다. 파도에게 온몸을 맡겨 흘어 가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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