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화낼 준비가 된 사람들

나를 지키는 방식, 혹은 나를 갉아먹는 방식

by 김지윤

화낼 준비를 하는 마음


나는 사실 화가 많은 사람이다. 다만 화가 늘 폭발적인 모습으로 드러나는 건 아니지만, 말투와 표정에, 혹은 대화의 공기 속에 스며든다. 나는 스스로를 ‘감정에 충실한 사람’이라서 그런 거라 생각했지만, 황석희 번역가님의 ’ 오역하는 말들‘이라는 에세이집을 읽는 순간 깨달았다. 나는 감정에 솔직한 게 아니라, 단지 화를 곧바로 내지 않았을 뿐, 늘 마음속에서 ’ 화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화낼 준비를 하는 것, 그것은 어쩌면 나를 보호하기 위한 무의식적 방어 기재일지도 모른다. 남들보다 먼저 화를 내야 상처받지 않는다는 착각, 먼저 공격해야 방어에 유리하다는 계산. 이런 사고방식이 우리도 모르는 새 일상에 깊이 스며들어 있는 것만 같다.
-출처: 황석희 번역가님의 에세이, 오역하는 말들-


‘화낼 준비‘라는 표현은 내 안을 너무 정확하게 꿰뚫었다. 준비한다는 건 감정을 무조건 억누르는 것도, 즉시 폭발시키는 것도 아니다. 대신, 상대의 말과 행동을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언제든 화살을 쏠 수 있도록 손끝에 힘을 주는 상태. 나는 바로 그런 상태로 지내고 있는 사람이었다.


나를 지키기 위한 무기


돌이켜보면, 나는 종종 누군가의 말속에 숨어 있는 뾰족함을 찾아내는 데 민감했다. 농담인지 진심인지 불분명한 말 한마디에도 마음이 먼저 움찔했다. 그리고 곧, 마음속에 날카로운 대답을 준비했다. 그 대답을 실제로 꺼내놓지 않더라도, 이미 방어 태세는 완성되어 있었다.


어쩌면 나는 내 마음이 다치지 않도록 항상 경계선을 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먼저 웃고, 먼저 배려하고, 먼저 양보하는 척하지만, 사실 그 안쪽에서는 ‘나를 건드리지 마’라는 간판을 세워두고 있었다. 책 속에 문장들을 읽고 나서야, 나는 그 간판이 ‘화낼 준비‘라는 이름을 가진 무기였다는 걸 알았다.


나를 지키는 방식, 혹은 나를 갉아먹는 방식


나는 늘 ‘먼저 화내기‘의 전략을 썼다. 누군가 나를 무시하거나, 얕잡아볼 기미가 보이면 그 순간 이미 머릿속에서 몇 가지 반격 문장이 떠올랐다. 그것은 상대방이 내 마음 깊숙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기 위한 일종의 울타리였다. 하지만 그 울타리는 가시로 뒤덮여 있었다. 상대가 다가오면 찌르듯 상처를 주고, 그 상처로 인해 나는 역시 더 고립되는 구조였다.


이런 태도의 기원은 아마도 어릴 적 경험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반 친구들 사이에서 장난 반, 놀림 반의 말들이 오가던 시절, 나는 웃어넘기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대신, 재치 있는 반격이나 차가운 표정으로 대응했다. 그렇게 해야만 더 이상 공격받지 않을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믿음은 사실 방어가 아니라, ’늘 준비된 전투태세‘였다.


화낼 준비의 무게


문제는 화를 ‘준비‘하는 시간이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이다. 늘 마음의 근육을 긴장시켜야 하고, 상대방의 한마디 한마디를 분석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내 몸은 사소한 일에도 피로를 느꼈다, 마치 전탱터에서 돌아온 병사가 집에서도 방탄복을 벗지 못하는 것처럼. 나는 일상에서도 늘 경계 태세를 유지했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누군가 내 의견을 무시하거나, 그 자리에서 말끝을 흐리며 다른 의견을 제시하면, 그 순간 내 안에서 '준비 모드'가 켜졌다. 속으로는 '지금 바로 반박할까, 아니면 한 번 더 지켜볼까?를 계산했다. 겉으로는 차분한 척했지만, 이미 머릿속은 전략을 세우느라 복잡해졌다. 그 에너지를 쓰고 나면, 정작 중요한 일에는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화는 보호막이 될 수 있을까


황석희 번역가의 문장은 내 마음에 깊은 울림을 줬다. '남들보다 먼저 화를 내야 상처받지 않는다'는 착각. 나는 그 착각을 너무 오래 품고 살아왔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먼저 화를 낸다고 정말 상처를 막을 수 있었던 적이 있었나? 오히려 먼저 화를 내고 후회 한 기억이 훨씬 많았다.


사람들은 종종 나에게 "생각보다 예민하네"혹은 "화가 많구나"라고 말하고 했다. 그 말에 더 화가 났다. 나는 그 순간에도 '화를 참고 있다'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화를 '안 내는 것'이 아니라, '화 낼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내 마음은 이미 전투의 장비를 갖춘 상태였다.


상처를 피하려다 더 크게 다치는 마음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왜 이렇게 방어적인 거지?‘ 아마도 과거의 경험들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을 것이다. 예고 없이 날아온 말의 칼날,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서 당한 부당함. 그때의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상처를 삼켰다. 그리고 결심했다. ’ 다음엔 절대 가만있지 않겠다’고. 그 열심히 내 마음속 깊이 뿌리내리면서, 나는 늘 준비 태세로 살아왔다. 하지만 그 태세는 역설적으로 나를 더 고립시켰다. 누군가가 다가오기도 전에 나는 먼저 ’ 들어오지 마’라는 표지를 세웠다. 그 표지는 나를 보호하는 대신, 외롭게 만들었다.


그 후로 나는 조금씩 ‘무장 해제’ 연습을 했다. 누군가 기분 나쁜 말을 해도, 바로 반격하지 않고, 그 말을 그냥 듣는 연습부터 시작했다. 처음에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조금 지나니 이상하게도 마음이 덜 피곤해졌다. ‘당장 반격하지 않아도 세상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화 대신 선택할 수 있는 것들


화낼 준비를 멈추면, 그 자리에 다른 것들이 들어왔다. 호기심, 이해심, 그리고 때로는 유머. 예전 같았으면 공격적으로 받아들였을 말도, ‘저 사람은 왜 저렇게 말했을까?’ 하고 궁금해졌다. 이렇게 시선을 바꾸면, 감정의 무게가 훨씬 가벼워졌다.

물론 나는 여전히 화를 낸다. 다만 예전처럼 ‘먼저’ 준비하지는 않는다. 화를 내려면, 그 화가 정말 필요한 순간인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그 과정에서 나는 불필요한 싸움을 피할 수 있었고, 관계도 조금 더 부드러워졌다.


결국 나를 지키는 건

황석희 번역가의 문장을 다시 읽는다. “화낼 준비를 하는 것, 그것은 어쩌면 나를 보호하기 위한 무의식적 방어 기재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제 안다. 나를 진짜로 지키는 건, 먼저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먼저 마음을 살피는 일이라는 것을. 화는 일시적으로 나를 지켜줄 수 있지만, 오래 두면 나를 고립시키고, 내 안을 갉아먹는다. 이제 나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나를 보호하려 한다. 필요한 순간에만 화를 쓰고, 그 외에는 마음의 무장을 풀어놓는다. 세상은 여전히 날카롭지만, 그 속에서도 부드럽게 설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걸,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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