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하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후회마저도 사랑하기 위해서.
후회는 늘 불시에 다가온다. 창문을 두드리는 작은 바람처럼, 혹은 예고 없이 내리는 빗방울처럼, 마음 구석을 스쳐 지나며 나를 붙잡는다. 그때마다 나는 주저앉아 과거를 떠올렸다. '만약'이라는 단어에 갇힌 채로. 만약 그때 다른 길을 택했다면, 만약에 그날 다른 말을 했다면, 지금의 나는 조금 달라져 있지 않았을까. 그 질문은 나를 끊임없이 괴롭히면서도, 동시에 나를 다잡게 했다. 하지만 이미 지나가버린 시간 앞에서는, 늘 무력감이 나를 덮쳤다.
그날도 어김없이 '만약'이라는 굴레에 갇혀 있던 나는, SNS를 무심히 스크롤하다가 한 문장과 마주쳤다.
시간을 엎지르고 싶다. 그때를 줍고 싶다
짧은 글귀였지만, 그 순간 내 안에 파고드는 울림은 묵직했다. 엎지른 물을 다시 담을 수 없듯, 흘러가버린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간절한 마음이 내 속 깊은 곳의 갈망과 맞닿았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후회라는 감정은 단순히 과거를 원망하거나 후회한다기보다는 내가 놓쳐버린 시간과 순간을 붙들고 싶다는 애달픈 몸부림이라는 것을.
돌아보면 주워 담고 싶은 순간들은 언제나 사소한 것들이었다. 친구가 건넨 어설픈 농담, 한밤중 창밖에서 들리던 바람소리, 오랜만에 마주한 따스한 햇살. 그때는 아무렇지 않게 지나쳤던 장면들이, 시간이 흘러 다시 찾아오며 마음속 깊은 곳을 두드린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과의 마지막 대화는 내 안에 깊은 후회로 남아 있다. 그때 조금 더 웃어주지 못한 것, 손을 잡아주지 못한 것, 더 진심을 전하지 못한 것, 그 모든 순간들이 엎지른 시간의 조각처럼 발밑에 흩어져 있다. 손을 뻗어도 닿지 않고, 잡으려 할수록 더 멀리 굴러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럴 때면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을 한다. 어쩌면 '줍는다'는 건 시간을 되돌리는 게 아니라, 그 기억을 내 안에서 다른 방식으로 살아내는 일일지도 모른다고. 주워 담을 수 없는 순간들을 가슴속에 묻고, 다시는 오지 않을 날들을 마음속에서 천천히 되살려 보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줍기'아닐까.
처음 그 문장을 마주했을 때, 나는 답답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과거는 돌아오지 않았고, 아무리 원망해도 시간은 쉼 없이 흘러갔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후회가 남긴 답답함 속에서도, 우리는 깨달음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을.
후회는 언제나 고통스럽고 복잡하다. 그러나 후회 없는 삶이 가능할까? 나는 오히려 후회가 있어야 삶이 더 진실해진다고 믿는다. 후회는 내가 사랑을 했었고, 간절했고, 애쓰며 살아왔다는 증거다. 아무런 감정도 없었다면, 돌아보고 후회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시간을 엎지르고 싶다'라는 문장이 내게 깊은 울림을 준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흘려보낸 시간 속에서 내가 여전히 붙잡고 싶은 것이 있다는 뜻이니까. 그 마음 자체가 내가 삶을 충실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다.
어제의 후회를 품고 오늘을 살아갈 때, 답답함은 조금씩 희망으로 바뀌기 시작한다. 엎지른 물자리에 햇살이 스며들고, 바람이 스쳐 지나가며, 꽃잎이 천천히 흩날린다. 그 모든 것들이 모여 또 다른 하루를 만들고, 또 다른 내가 살아갈 공간을 만들어 준다.
오늘을 진심을 다해 살아가는 것, 그것이 내가 후회를 품고서도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이다.
나는 여전히 후회하는 순간들이 많다. 그러나 이제는 그 후회 속에서 길을 잃지 않는다. "그때를 줍고 싶다"는 간절함을 품은 채, 오늘을 살아간다. 어쩌면 오늘의 이 순간도 언젠가 후회가 될지 모르니까, 오늘을 가능한 한 온전히 품고 싶다.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작은 선택, 지나가는 사람과의 짧은 대화, 스쳐가는 바람, 마주한 햇살 하나하나까지, 모든 순간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시간은 흐른다. 하지만 흘러간 자리에 남는 것은, 우리가 진심으로 품었던 감정과 기억들이다. 그 기억들이 나를 다시 살아가게 하고, 다시 사랑하게 한다. 후회마저도 품고 살아가는 법을 배우면서, 나는 비로소 오늘을 더 단단하게, 더 따뜻하게 사랑하며 오늘을 살아가게 만든다.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후회마저도 사랑하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