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성숙한 어른의 사랑

지나간 사랑이 건네는 위로

by 김지윤

사랑이 성숙해진다는 것


사랑이 성숙해진다는 건 단순히 오래 이어진다는 뜻이 아니다. 성숙한 사랑은 끝마저 받아들이는 법을 배운다. 누군가는 이별을 흉터처럼 평생 안고 살아간다. 하지만 어떤 이는 그것을 풍경처럼 품는다. 흉터는 고통을 상기시키지만, 풍경은 바라보는 마음에 따라 다른 빛을 낸다. 같은 이별일지라도 그것을 어떻게 기억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은 전혀 다른 모습이 된다.


그날은 유난히 마음이 무겁던 날이었다. 바쁘게 하루를 보내고 늦은 밤 침대에 누워 무심히 SNS를 넘기고 있었다. 반복되는 피드 속에서 큰 감흥을 느끼지 못하던 순간, 한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성숙한 사랑은 이별조차 흉터가 아니라 풍경으로 남긴다.”


짧은 문장이지만 내 마음을 오래 붙들었다. ‘흉터’와 ‘풍경’이라는 대비가 주는 울림이 강렬했다. 나는 지난 사랑들을 하나둘 떠올렸다. 어떤 기억은 여전히 흉터처럼 쓰렸고, 어떤 기억은 풍경처럼 담담했다. 그리고 그 차이가 나를 성숙하게 만들었음을 알게됐다.


흉터가 아닌 풍경


첫 이별은 흉터였다. 그 시절의 나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다루는 법을 몰랐고, 관계의 끝을 받아들이는 힘도 없었다. 끝내 붙잡지 못한 사랑 앞에서 무너져 내렸고, 눈물과 후회만이 남았다. 흉터는 오래도록 마음을 짓눌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깨달았다. 그 사랑이 전부가 아니었다는 것을. 흉터처럼 아프던 기억이 어느 순간 풍경처럼 멀리 자리했다. 오래된 길가의 담벼락처럼, 그저 지나가는 길에 자연스럽게 시야에 들어오는 무늬가 되었다. 여전히 남아 있지만, 더는 나를 아프게 하지는 않았다.


SNS에서 읽었던 그 글귀처럼, 지나간 사랑은 흉터가 아니라 풍경으로 남을 수 있었다.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흉터는 상처를 증명하지만, 풍경은 삶의 일부가 된다. 나는 사랑을 통해 그 차이를 배웠다.


지나간 사랑이 남긴 배움


사랑이 끝나면 허무만 남는 줄 알았다. 그러나 지나간 사랑은 뜻밖의 배움을 남겼다.


자신을 잃지 말 것.

누군가를 사랑하는 동안 나는 나 자신을 잃어버리기도 했다. 상대의 기분에 휘둘리고, 내 감정을 숨기면서도 그것을 사랑이라 착각했다. 그러나 결국 그런 관계는 오래가지 못했다. 사랑 속에서도 나를 잃지 않는 것, 그것이 성숙이었다.


기다림을 배울 것.

사랑은 언제나 같은 속도로 흐르지 않는다. 한쪽은 서두르고, 다른 한쪽은 머뭇거린다. 그 차이를 존중하지 못하면 관계는 금세 틀어진다. 기다림은 불안을 이겨내는 용기였고, 동시에 성숙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용서와 수용.

끝내 함께하지 못한 사랑이라 해도, 그것이 헛된 시간은 아니었다. 잘못을 따지고 원망하는 대신, 그 또한 우리의 이야기였음을 받아들이는 것. 그때의 나와 그 사람을 함께 용서하는 것. 그것이 어른의 사랑이었다.


지나간 사랑은 책 보다 깊은 배움이었다. 살아내야만 알 수 있는 것들이었다.


어른들의 사랑은 다르다

나이가 들어 다시 사랑을 시작했을 때, 나는 달라져 있었다. 젊은 날의 사랑은 불꽃같았다. 뜨겁고 강렬했지만 쉽게 꺼지곤 했다. 반면 어른이 된 뒤의 사랑은 잔잔한 불씨 같았다. 크게 타오르지 않지만 오래 지속되며 은근히 따뜻했다.


어른들의 사랑은 서로의 자유를 존중하는 데서 비롯된다. 젊은 날의 사랑이 ‘너 없이는 살 수 없어’라는 고백이었다면, 어른의 사랑은 ‘너와 함께해서 좋다’는 인정이었다. 덜 극적이지만, 더 진실한 고백이었다. 그리고 어른의 사랑은 이별조차 품을 수 있는 힘을 지녔다. 젊은 날엔 이별이 곧 파국이었지만, 어른이 된 뒤에는 이별도 삶의 과정 중 하나로 받아들였다. 그것이 흉터가 아니라 풍경이 되는 이유였다.


다시 사랑할 수 있다는 용기


처음엔 믿지 않았다. 이별을 겪은 뒤 다시는 사랑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지나간 사랑이 남긴 풍경 덕분에 나는 다시 사랑할 수 있었다. 흉터처럼 아픈 기억도 시간이 지나면서 단단함을 남겼고, 풍경이 된 기억은 내 마음을 더 넓게 열어주었다.


새로운 사랑 앞에서 나는 여전히 두려웠다. 그러나 동시에 알았다. 설령 이 사랑이 또다시 끝을 맞더라도, 결국 또 하나의 풍경이 될 거라는 걸. 그 풍경은 언젠가 나를 다시 위로할 거라는 걸.


그래서 용기 내어 마음을 열 수 있었다. 사랑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임을 믿었기 때문이다.


SNS 글귀가 건넨 불씨


SNS 속 짧은 글귀는 내가 미처 정리하지 못했던 생각에 불을 붙였다. 그날따라 유난히 마음이 허전했는데, 그 문장은 내 안에서 잊고 있던 감정을 꺼냈다. ‘흉터가 아니라 풍경.’ 단순한 대비였지만, 그 속에는 깊은위로가 있었다. 나는 이제껏 이별을 흉터로만 받아들였다. 그래서 아물지 않는 상처를 안고 살아야 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문장은 다른 길을 보여주었다. 흉터로 기억할 수도 있지만, 풍경으로 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알려주었다.


짧은 글귀 하나가 삶의 태도를 바꾸기도 한다. 나는 그날 이후로 지나간 사랑들을 다시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것들이 나를 여전히 지탱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후회 대신 감사로


지나간 사랑을 떠올리면 후회가 먼저 떠오른다. 더 웃어주지 못한 것, 더 오래 붙잡지 못한 것, 더 따뜻하게 말하지 못한 것. 그러나 이제는 후회 대신 감사로 기억하고 싶다.


사랑했던 순간들은 모두 선물이었다. 함께 웃었던 날들, 떨리던 눈빛, 손끝의 온기. 그것들은 내가 진심으로사랑했음을 증명한다. 그 사랑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

감사로 남길 때 사랑은 흉터가 아닌 풍경이 된다. 그리고 그 풍경은 내 삶을 더 따뜻하게 물들인다.


오늘의 사랑을 위하여


사랑은 언제나 끝을 향해 간다. 그러나 그 끝은 곧 또 다른 풍경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의 사랑을 더 소중히 안는다. 오늘의 웃음이 내일의 위로가 되고, 오늘의 떨림이 훗날 다시 사랑할 용기가 되기를 바라며. 오늘을 품는 일, 그것이 결국 사랑을 풍경으로 남기는 방법이다.


성숙한 사랑은 이별을 흉터가 아닌 풍경으로 기억하는 것이다. 그 풍경은 나를 단단하게 하고, 다시 사랑할 용기를 준다. SNS에서 읽은 짧은 글귀 하나가 나를 멈추게 했고, 나는 그 속에서 오래된 사랑들을 다시 바라보았다. 그 풍경들이 있었기에 나는 여전히 살아가고, 여전히 사랑할 수 있다.


지나간 사랑은 끝이 아니다. 오히려 내 안에서 여전히 살아 있는 위로다. 그래서 나는 오늘의 사랑을 언젠가 또 하나의 풍경으로 남길 준비를 하며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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