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치듯 가벼운 마음인 줄 알았다
늘상 곁에 있는 줄만 알았던 것들을 쉬이 놓아버리기 마련이다. 한도 없이 누릴 줄만 알았던 젊음을 마음 놓고 허비하다 뒤늦게 후회하는 경우가 허다하고, 치기 어린 마음에 이성을 놓거나 마음 놓고 무작정 던진 말과 행동으로 단순한 후회를 넘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야기하기도 한다.
그래서 마음은 쉽게 놓을 수 없다.
그런데 조금은 억울하다.
내 시간, 내 인생, 내 사람, 내 마음인데 왜 마음을 놓으면 안 되는지 반문한다. 조금은 유연하게 때론 느슨하게 놓아주어도 되지 않나. 한 번뿐인 삶이라 견고히 살아내고 싶었는데, 또 한 번뿐인 삶이라 꾹꾹 눌러 다지기만 하는 건 어딘가 모르게 가엽다.
그렇게 나는 내 마음과 시간을 놓아주기로 했다.
수많은 기로에서 방황하는 게 인생이라 최선의 선택을 위해 고심하는 척하다 조금 더 마음이 기우는 쪽으로 향하기 마련이다. 고로, 내 선택이 늘 최상일 거라 생각한 적은 없다. 선택은 결국 어느 쪽이든 마음이 기운 내 몫이고 최선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다만, 최선이기 위해 노력하다 정말 중요한 것을 간과하는 경우가 있다. 내 선택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 불편한 마음을 애써 다독이며 인내와 희생을 스스로 강요하는 꼴이 되어 가학적인 채찍질을 감행한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른 건 가여운 내 마음이었다. 내가 만든 울타리가 실은 덫이었다는 걸 인정하지 않았더라면,
소중한 내 마음을 스스로 놓을 뻔했다.
위기가 찾아온 순간 그걸 기회 삼아 성장해야 한다고들 말하지만 성장하기 이전에 위태로워진 마음을 돌보는 게 순서라는 걸 깨달은 직후였을까. ‘위기는 곧 기회’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위기는 기회가 아니다.
그런 기회는 놓치면 그만이다. 모르는 척 놓치는 것도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 연습이 필요하지만 놓쳐도 그만인 것들은 비워야 한다. 기회를 잡는 것보다 새로운 기회를 놓치는 용기가 더 절실한 순간들이 자연스러워질수록 내 삶은 좀 더 견고해졌다. 오롯이 혼자인 나를 사랑하기 위해 모르는 척 툭 기회들을 놓쳐버렸다.
시간과 마음이 온전한 내 것이 되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나는 우려했던 것보다 단단했고 회복도 빨랐다. 모든 게 순탄했고 자연스러워졌다. 그렇게 온전한 나를 되찾았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한 번 스스로 제동을 건다. 시련의 무게만큼 회복도 더뎌야 하는 게 아닌가 채근하며 마음과 행동을 단속한다. 정말 아무렇지 않은데 그런 척을 하는 것처럼 여겨지는 순간들마저 계산하며 적당히 긴장하고 꽤 자주 차분해져야 했다. 완전히 자연스러워지기까지 시간이 좀 더 필요한 듯싶었다. 그렇게 몇 번의 기회들이 다시 찾아왔으나 잡을 수 없거나 잡고 싶지 않아 놓치길 자주 했다. 그 또한 스치듯 가벼운 마음인 줄 알았다. 네 눈에 비친 내가 일렁이지 않았다면 그저 그런 마음으로 치부한 채,
소중한 마음을 놓칠 뻔했다.
마음 놓고 안일했던 내 선택의 결과는 참담했으나 모든 걸 놓아버린 순간 놓쳐서는 안 될 소중한 마음 하나 온전히 내 것이니, 무심코 놓았거나 놓쳐버린 것들을 향한 회한과 자책은 이쯤에서 접어두기로 한다. 놓았거나 놓쳤거나 그렇게 ‘지금’ 내가 놓아서는 안 될 소중한 시간들이 켜켜이 쌓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