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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rpe diem Jul 30. 2020

EP5. 불안과 설렘은 묘하게 닮아있다

틈과 틈 사이

#1 너의 틈

 무언가를 잃어버린 듯 쉼없이 두리번대는 너를 처음 만난 건 때 이른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5월의 초입 언저리였다. 외국 바이어와 유창하게 대화를 나누며 거래까지 완벽하게 성사시킨 또렷한 눈빛을 가진 여자가 잃어버린 건 무엇일까.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을 닦을 겨를도 없이 한참 동안이나 흙바닥을 더듬기만 하던 네게 준 시선을 쉽사리 거둘 수 없었던 이유를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한다. 네 머리카락 끝 대롱대롱 매달린 작은 진주 귀걸이를 너보다 먼저 발견한 나는 보물 찾기에 신이 난 어린아이 마냥 들떠 네게 다가갔다. 갑작스러운 이의 등장에 주춤 물러선 너에게서 은은한 허브향이 났다.


 익은 밤,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다의 검은 물결 위 작은 별처럼 반짝이던 건 어쩌면 네 귀걸이가 아닌 내게 보인 네 빈틈이었는지도 모른다.



#2 시간의 틈

 틈만 나면 서로를 찾기 바빴다. 우린 원 없이 뜨거웠고, 서로의 시간을 공유했다. 반복되는 일상의 지루함이란 우리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였다. 틈틈이 서로를 떠올렸고, 살뜰했다. 방학 계획표의 동그라미를 그리며 야무지게 입을 다문 아이의 설렘과 다짐처럼 서로를 향해 철없이 설렜고 변치 않으리라 다짐했다.


 “오늘은 바빠서 못 만날 것 같은데?”


 예측 가능한 시간의 틈이 또 다른 일상이 되어 지루해질 즈음, 오만하게 상대의 마음을 잡고 흔들어 일탈을 감행하기 시작했다.


 불안과 설렘은 묘하게 닮아있었고, 다짐은 부질없었다.


 “우리, 시간을 좀 가질까?”


 우린 결국 서로를 향했던 시간들이 필요 이상으로 요란했음을 묵인한 채 서로 등을 돌렸다.



#3 관계의 틈

 수많은 관계 속에서 지치고 치일 때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건 꽤나 어려운 일이다. 하물며 거리라는 게 있을 리 만무했던 우리 관계의 간극은 시간을 갖자는 너의 말을 시작으로 좁혀질 줄 모르고 벌어지기만 했다. 문틈으로 쏟아지는 햇살처럼 반짝이던 서로가 찢어진 우산 사이로 질질 새는 비처럼 성가신 존재가 되어버리는 건 순식간이었다. 콘크리트 틈바구니에서 뻐쭉 내민 들꽃 무더기가 형체를 알아볼 수 없도록 흉물스럽게 말라붙어버린 모습만 한참을 바라보다 너에게 전화를 걸었다.


 “헤어지자.”


우리의 시간은
이미 말라붙은 들꽃이 체념해버린 봄과 같았다.



#4 나의 틈

 너를 향한 내 마음의 틈은 초지일관 철부지 어린아이만 못했다. 지친 네 마음의 틈을 기회삼아 도망가기 바빴고, 더 이상 설레지 않는다는 이유로 쉽게 종지부를 찍어버렸다. 단련되지 않은 마음은 멈추는 법을 몰랐고 단단하지 않은 내 다짐은 결점 투성이었다. 수많은 틈을 어루만질 줄 몰랐던 우리가 서로를 가여워할 줄 알았다면 우리의 끝은 조금 달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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