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3. 기다릴 줄 모르는 아이들에게

기다림의 미학에 대하여

by Carpe diem



중간고사를 앞두고 마지막 한 시간, 아이들에게 학습한 내용을 총정리해 준 후 질문을 할 수 있도록 자습 시간을 주었다. 시험 문제를 출제하는 건 교사인 나니까 최종적으로 정리해서 질문도 나에게 하라는 의미에서 준 시간이었다. 기다렸다는 듯 교과서를 들고 교탁 앞으로 모이는 아이들을 보면서, 온라인 수업과 대면 수업을 병행하며 발생할 수밖에 없는 학습 결손을 스스로 채우려 노력하는 모습이 기특해 하나하나 최선을 다해 답변해 주었다. 그런데, 질문과 질문 사이에 잠깐의 정적이 흐름과 동시에 쨍한 여자 아이 목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야, 나랑 얘기 좀 하자고!”

같은 반 한 남학생에게 마음이 있는 건지, 아니면 서로 호감이 있는 사이인 건지 붙어있는 모습이 자주 포착된 여학생의 목소리였다. 남학생 자리 옆에 본인 책상 의자를 끌고 가 뭔가를 따지듯 묻다가 말이 없는 남학생에게 화가 나서 언성을 높이는 듯 보였다.

“가영(여학생 가명)아, 네 자리로 돌아 가자.”

내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남학생을 쏘아보느라 바쁜 가영이는 돌아가겠다는 대답과 달리 그 곁을 떠날 줄을 몰랐다. 내 마음에서의 경고는 늘 삼 세 번. 가영이에게도 화를 누그러뜨릴 시간이 필요하겠지 싶어 시간을 주고 다시 질문하러 온 아이에게 답변을 해주었다. 답변이 끝나자, 이제는 약간 목소리를 낮춰 옥신각신하는 두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정우(남학생 가명)야, 너도 네 공부해. 가영이는 자리로 가고. 대화는 쉬는 시간에 하자.”

평소 넉살이 좋은 정우의 난감한 표정과 가영이의 날 선 눈빛이 교차하며 스파크를 일으켰다. 내 학창 시절이 그러했듯 너희들의 사랑싸움도 그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 둘에게 또 한 번 각자 자리로 돌아갈 기회를 주고 다음을 기다리는 아이의 질문에 답변을 마쳤다. 그리고 역시나, 그 둘은 여전히 붙어 앉아 싸움을 멈출 줄 몰랐다. 싸움인지 일방적인 질타인지 알 수 없는 대화에서 더 답답해 보이는 건 가영이었다. 그리고, 내 마음속 마지막 경고는 한 번 남아있었다.


“가영아, 아까부터 간다고 하지 않았니?”
“진짜 조용히 대화할게요.”
“아니야. 다른 아이들은 조용히 자습하는데 조용한 대화라도 결국 사적인 대화잖아. 교실이고 엄연히 수업 시간이니 자리로 가자.”
“얘랑 꼭 해야 할 말이 있단 말이에요.”
“가영아, 어떻게 네 감정을 매 순간 쏟아내려고만 하니. 너도 좀 생각해 보고, 나중에 얘기해. 가끔은 적절한 침묵이 필요할 때도 있는 거야.”


뭐가 문제인지부터 따져 물었다가는 ‘현실판 연애의 참견’의 패널이 될 게 뻔했으므로 다른 아이들을 배려해서 각자 자리로 돌아가자 묵직하게 타일렀다. 나에겐지 정우에겐지 잔뜩 화가 난 가영이는 심술 가득한 얼굴로 자리에 돌아가 엎드리는가 하더니 수업 종료 종이 치자마자 눈물을 닦는 건지, 번진 화장을 고치는 건지 거울을 보고 눈가를 닦기 시작했다. 그런 가영이를 뒤로 하고 교실을 나왔다. 결국 가영이를 삼 세 번 지켜본 나의 기다림은 불필요한 갈등은 피했다는 점에서 어른스러웠으나, 가영이의 깨달음까지 이끌어내진 못했다는 점에서 허무하고 쓸쓸하게 마무리된 셈이었다.


남자와 여자는 참 많이 다르고 애들의 연애도 어른의 연애와 고충은 비슷하다.





점심시간, 친한 동료 교사와 대화를 하다가 가영이와 정우의 이야기를 하게 되었고, 자연스레 각자의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첫 연애를 했다는 네 살 아래의 동료는 한 손으로는 공부를, 다른 한 손으로는 남자 친구에게 문자를 보내며 바쁜 연애를 했다 전했고, 나의 첫 연애는 열일곱이었다고 말해주었다. 이어, 내가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1997년은 핸드폰이 전면 보급되기 전이었으니, 난 핸드폰보다 삐삐가 익숙한 세대였고 쉬는 시간이 달라 상대가 남긴 음성 메시지를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 수업 시간에 집중하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비록 네 살 터울이지만 ‘핸드폰과 삐삐’만으로도 우리의 세대 간극은 어마어마함을 느꼈다. 그리고 이내, 아이들과의 세대 간극이야 더 말할 게 뭐가 있나 싶은 생각에 이르렀고 나의 기다림이 앞으로도 여러 번 반복된 후에야 진정한 소통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결론을 내렸다.


‘응답하라 1994’에 등장한 삐삐


음성 메시지 수신 여부만 확인할 수 있는 삐삐는 사실 공중전화 앞에 도달하기까진 누구에게 어떤 용무로 왔는지 알 방도가 없었다. 약간의 힌트라면 삐삐에 남겨진 숫자가 전부였다. 그런데도 그 삐삐가 갖고 싶어서 아빠를 설득해 내 손에 쥐자마자 한 살 위인 이웃 학교 오빠와 연애를 시작했고, 교환일기와 음성 메시지를 주고받는 것으로 꽁냥꽁냥 사랑을 키워나갔다. 물론 얼마 안 가 엄마에게 들통이 나서 오빠와의 사랑도 삐삐를 가진 행복도 모두 물거품이 되고 말았으나 하교 후 교환 일기를 주고받으며 잠깐 만나는 시간을 하루 종일 기다리는 재미가 있었다. 만나는 시간을 기다리며 한없이 키운 마음을 음성과 편지에 꾹꾹 눌러 담아 상대에게 전달되기까지의 설렘으로 꽤 자주 두근거렸다.



그렇게 그 시절의 사랑은
불편했지만 그 나름의 낭만이 있었다.



이제 교실에 핸드폰 없는 아이들은 없다. 아이들은 핸드폰으로 세상을 접하고 사람을 만나고 취미 생활을 즐긴다. 궁금한 게 있으면 바로 검색을 하고, 연락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바로 메시지를 보낸다. 기다린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왜 가치 있는 것인지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진지하고 무겁게 ‘나 때는 말이야.’를 시전 하고 싶지 않은, 아직은 젊다고 자부하는 나는 ‘대인 관계와 공감적 소통’이라는 단원의 학습 예시를 빙자해 아이들에게 말한다.


얘들아, 사회생활을 하든 교우 관계가 됐든 연인 사이가 됐든 잘 말하는 방법이 뭘까? 우선, 말을 잘하려면 상대의 말을 잘 듣는 것부터 시작해야겠지? 말을 앞세우기보다 한 번 기다리고 생각한 후 상대의 말에 공감하며 듣고, 배려하는 말하기를 생활화하는 것이 좋아. 그런데 이게 제일 어려운 일인 건 사실이야. 그리고 선생님도 잘 못 해.



그제야 아이들도 실없이 웃는다. 기다릴 줄 모르는 아이들에게 이렇게라도 기다림과 배려와 공감의 중요성을 전달할 수 있다면 그거면 충분하겠지. 달라진 시대에 우리 세대와 다르게 성장한 아이들만을 탓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그렇게
아이들을 한 번 더 바라보고, 기다리는 것으로
인생 선배가 몸소 터득한 기다림의 미학을
실천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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