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게 오른 건물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듭니까? 건물의 가격은 얼마 할까? 언제쯤 다 만들어질까? 어떤 건물이 들어설까? 건물의 주인은 누구일까?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자주 지나는 길을 걷다 보면 하루하루 변하는 건물이 보인다. 높으면 높은 건물일수록 위에 말처럼 가격, 용도, 주인 뭐 이런 생각을 더 자주 했다면 요즘은 이상하게 지어지고 있는 건물을 아무 생각 없이 우두커니 서서 바라보게 된다. 몇 번을 그런 행동을 하자 그냥 그런 게 자연스러운 행동처럼 느꼈었다. 그러다 문득 내가 왜 이런 행동을 하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왜? 그렇게 우두커니 서서 건물을 보는 거니’ 하고 말이다. 그냥이라는 대답이 돌아올 걸라 생각했는데 대답이 들렸다. 어쩌면 나라는 존재를 만드는 것도 건물을 짓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한 거였다. 건물이 지어지는 동안 건물의 크기에 따라 사람, 자본, 자원, 재원 각양각색의 많은 것들이 필요하다. 핵심이라고 생각하는 것부터 소모품에 이르기까지 한건물이 만들어지는 동안 수많은 것들이 건물 안에 들어가고 많은 것들이 폐기되고 소모된다. 나라는 존재를 만드는 동안도 분명 많은 것들이 내 안에 들어왔을 거고 많은 것들이 소모되고 폐기 될을 것이다. 그래서 또다시 질문 ‘지금 너라는 건물의 용도는 뭐니?, 가격은?, 다 지어진 거니? 그리고 네가 주인이기는 한 거니?????? 맞다. 나를 믿으려 하지만 꼭 그러고 싶지만 가끔은 아니 자주 나도 나를 의심한다. <나> 자신의 주인이 <나>가 맞는 가하는 그리고 지금 내가 짖고 있는 <나>라는 건물이 잘 짖고 있는 것인지 말이다. 그리고 내가 짖고 있는 이 건물이 내가 원하는 대로 그리고 내가 사용하고자 내가 원하고자 하는 건물이 맞는지 모든 질문들이 내가 나 자신의 주인인지 아닌지에 대한 의문에 대한 대답을 원한다. 나 스스로 원하는 대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많은 것들에 엉켜있다. 굵은 줄 얇은 줄 각양각색의 수많은 실타래들이 내 몸에 엉켜있다. 한 건물에 이해관계가 엉켜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 건물이 비쌀수록 높을수록 클수록 그 이해관계라는 게 복잡하지만 나의 모든 것들은 생각보다는 심플하다. 심플하다는 건 어떤 면에서는 나 자신에 대한 욕일 될 수도 있다. 그만 큼 내 몸값이 똥값이라는 이야기 이기도 하다는 말이니깐 누군가의 욕망의 주체가 될수록 나 자신의 몸값은 커지는 것이고 나를 얻고자 하는 누군가는 나의 욕망을 자극하여 나라는 파이의 지분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나라는 건물이 높아질수록 커질수록 나라는 파이도 커지는 것이고 커진 파이 만큼 나 자신이 원하는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타인에게 내어 줄 수 있는 파이도 커진다. 이런 과정 속에서 나와의 이해관계는 복잡해진다. 다 귀찮아 나는 소확행 할 거야, 미니멀 라이프를 할 거야, 욜로 할 거야 하지만 말자체는 많은 것들은 내려놓고 가볍게 산다는 말처럼 들리지만 이 또한 자신의 욕망이다. 그 말은 전혀가볍 거나 심플하지 않다는 거다. 노숙자나 거지처럼 산다 뜻은 아니기 때문이다. 소확행을 할 수 있는 필요한 것 욜로를 할 수 있는 필요한 것 미니멀 라이프를 할때 필요한 것 그 또한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욕망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핀트를 잘 맞추어야 하는 듯하다. 자신의 욕망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욕구에 만 사로 잡히면 무리수를 두기 때문이다. 욕망이라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니다. 잘만 이용한다면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나라는 건물을 지을 수 있다. 이런 생각을 한다. 미래의 끝은 어디까지가 끝이라 말할 수 있을까? 타이머신이 만들어지면 우주여행을 할 수 있으면 그게 미래라고 말할 수 있는 끝일까? 미래에 대한 상상조차 어떠한 한계를 두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상상인데도 말이다. 어떤 천재 과학자들이 상상하는 미래조차 어디서 본 것 같고 어디서 들은 것 같은 것 같다. 오히려 오타쿠 말하는 미래가 억 소리 나는 상상이 많다. 왜 그럴까 천재들은 현실가능성을 염두 해두고 상상하는 건 아닐까!? 오타쿠는 현실이 되거나 말거나, 말이 되거나 말거나 아무런 제약을 두지 않으니 상상력의 한계가 사라진다. 한계가 사라진 상상력은 가끔 어이없는 나를 만든다. 흔하디 흔한 회색 아파트가 아닌 어떠한 단어도 정해지지 않은 그런 건물말이다. <나>라는 존재자체가 특이점이 되는 그런 건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