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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팔 Apr 20. 2024

주인공


‘언제나 나여야만 했고 나여야만 했다.’ 내가 어릴 적 가지고 놀던 장남감은 요즘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것처럼 그리 복잡한 게 아니었다. 투박한 플라스틱이 각져있으면 로봇이고 둥근 형태이면 인간이었다. 눈코입은 알 수 없는 잉크로 그려졌지만 번져있어 흐리멍텅했다. 스티커로 붙여져 있는 것은 몇 번 가지고 놀다 보면 금세 스티커가 때어져 눈코입이 사라진 게 태반이었다. 나중에는 플라스틱을 녹여 뭉쳐놓은걸 티브이에 나오는 어떤 것이라고 상상하며 가지고 놀아야 한다. 결국 스토리텔링이 중요하다. 내가 나에게 설득이 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서 플라스틱뭉치가 살아 숨 쉬는 무언가가 될 수 있게끔 가지고 놀아야 한다. 물론 처음은 힘들다. 악인을 없애고 나면 대부분의 이야기가 끝나버렸다. 점차 살이 붙고 뼈가 붙으면서 주인공이 지기도 하고 비기기도 하면서 이야기는 재미있어진다. 말도 안 되는 친구도, 말이 되는 적도 만든다. 대부분의 결말은 결국 주인공의 해피앤딩이었다. 늘 해피앤딩을 만드는 이유는 주인공이 나라고 생각하고 이야기를 만들기 때문이다. 적당한 시련과 적당한 도전 적당한 험난함을 넘어 완벽한 인생을 살아가는 주인공 이야기 속 주인공은 그래야 했고 그래야만 했다. 그리고 그게 나여야만 했다. 하지만 나이가 한 살에 한 살이 더해지면서 당연하다고 생각한 이야기의 결말이 상상일 뿐인데도 무언가 힘겨워진다. 모든 것이 해피엔딩일 수 없고 내가 주인공이 될 수 있는 확률은 70억 분에 1이며 그것조차 점점 늘어가고 있었다. 마이웨이로 내 삶의 주인은 나야라고 울부짖으려 해도 그것 또한 이 세상이 만든 시스템에 어느 정도 자격을 가추어진 인간만이 그것을 누릴 수 있었다. 어릴 적 이야기를 만들었을 때는 진한 하얀색 진한검은색 뚜렷한 빨간색 분명한 초록색이었는데 이제는 모든 색깔이 희미하고 모호해진다. 주인공이 재미있어지려면 적당한 고통이 따르는 시련이 있어야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상상 속에 나에게 조차 시련을 마주하는 것을 보면 위액이 역류해 구토가 나올 정도로 힘들어진다. 나중에는 주인공이고 싶지가 않았다. 주인공옆을 스쳐 지나간 소시민 1이고 싶었다. 어쩌다 마주친 소시민 2이고 싶다. 평생을 살아도 한 번도 보지 못하는 시골깡촌 어디쯤 사는 소시민 3이고 싶었다. 주인공과는 먼 세상에서 조용히 살아가는 한 사람이고 싶었다. 상상 속에조차 나에 삶은 평범하고 싶다. 아무런 시련 없이 아무런 고통 없이 산골짜기에 졸졸 흐르는 물처럼 푸른 바다 위를 유유자적하는 바람처럼 들판 위에 살랑이는 풀처럼 자연이고 싶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러한 바람조차도 불편하다. 상상과는 달리 쉽사리 손에 거머쥐지 못하는 욕망과 욕심 때문에 괴로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욕망과 욕심을 누르려 스스로에게 세뇌하려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너는 주인공이 될 수 없는 인간이라는 것을 알잖아 그 걸인정하기 싫지 그러니깐 주인공이 되는 것은 그리 기쁜 일이 아니고 다르게 생각하면 저주받은 일과 같아’라고 스스로에게 세뇌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방황한다. 내가 원하는 이야기는 무엇일까를 사이에 두고 말이다. 어느 쪽이 재미있는 것일까 플라스틱뭉치를 주인공인 나라고 상상하는 이야기일까? 아니면 험난한 주인공보다는 내가 가진 현실에 안주해 마음이 편안하다 생각하면 살아가는 이야기일까? 어떨 때는 무엇도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어떨 때는 어느 하나 내가 선택할 수 없는 것들이다. 상상이 빈약해져 간다. 7살 철부지 어린아이였을때보다 생각이 없어지는 듯하다. 그때는 우주를 생각했다면 지금은 내 주위 1m를 버거워한다. 철이들은 것이라 자위해 보지만 결국 자위일 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주인공처럼 살고는 싶지만 주인공이 될 수는 없다. 주인공이 될 수 있지만 주인공처럼 살 수는 없다. 가끔 뉴스에서 평범한 시민이 어떤 범죄자를 잡는다 평범한 시민은 어느 날 눈을 떠보니 반짝이는 존재가 되었다. 범죄자는 무엇을 위해존재 하였는가 괴변일지도 모르겠지만 우주공간처럼 어두운 바탕화면이 있어야 별들이 더반짝이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범죄자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자신도 그전에는 자신 같은 존재를 응징하고 반짝이는 존재이고 싶지 않았을까? 포승줄에 묶이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7살 어린 시절 티브이 속 어린이애니메이션 속 주인공을 보면서 정의로운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 했던 시절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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