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쥐

by J팔

내 나이 열다섯부터 막노동 쟁이로 살았다. 어느 순간부터 이름도 사라졌다. ‘김’씨 세상에 수많은 김 씨가 있지만 이 바닥에서 김 씨라고 말하면 나라는 걸 증명해 주는 이름이었다. 유명인 아닌 유명인이었다. 일을 잘하는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일을 잘했다면 뭐라도 견장을 달았겠지만 그냥 일꾼으로만 몇십 년을 일했다. 세월이 지나 남들보다는 경험이 많아 일을 조금 아는 일꾼으로만 말이다.

결혼도 하지 못했다. 마흔 중반이 넘어서부터는 포기하고 살았다. 주위에서는 먹여 살릴 처 자식이 없으니 돈은 많을 거라 생각했다. 아예 없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억 하는 소리를 낼만큼 많지도 않았다. 열다섯에는 집에 보탰고 스물에는 사람을 너무 믿었고 서른에는 욕심에 조급했다. 그래도 늘 주위에 등지는 사람만큼은 아니었기에 꾸역꾸역 걸어 같다.

세상에 덩그러니 되고 몇 년을 아무 생각 없이 일 집 일 집을 반복하던 어느 날 햇빛이 좋은 어느 날 들고 있던 벽돌이 쇳덩이가 유난히도 무겁게 느껴졌다. 그리고 나와 나가 분리되는 기이한 경험을 했다. 혼자 중얼거리는 나,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나로 말이다.

‘내가 왜 이걸 들고 있지, 내가 왜 이걸 들고 있지’ 하며 혼자서 중얼거려 됐다. 그리고 손에 쥔 것을 등에 울러 맨 것을 흙바닥에 탁하고 내려놓고는 멍하니 하늘을 봤다. 몸에 있는 모든 것들이 메말랐는지 푸석한 얼굴은 햇빛에 쩍쩍 갈라지지만 마음속에는 때아닌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김 씨 김 씨 김 씨” 과음소리가 들렸지만 평소 같지 않았다. 칼 같은 소리들도 고요함에 웅웅웅 거리기만 했다. 누군가 어깨를 툭 치자 먼 곳으로 날아간 마음에 새가 돌아왔다. 날바라보는 눈에 멋쩍은 웃음을 내비치고는 현장밖으로 천천히 걸어 같다. 멋쩍은 웃음을 본 누군가는 평소라면 빽빽빽 됐을 누군가는 더 이상 아무런 소리 없었다. 그 또한 이곳에 오랫동안 자리를 지켰고 저런 눈을 한 사람을 드문드문 보았었다.

허무하게 이렇게 그만둘 거라 생각지 못하게 그만둔 날 처음 한일이 동네 슈퍼에서 막걸리를 사는 일이었다. 주위에 마트며 편의점이며 많이 생겼지만 오다가다 밉살스러운 말을 하는 할매가 있는 슈퍼마켓에 발걸음 하게 된다.

“안 나간 거야 땡땡이친 거야”

“땡땡이요.”

“쯧쯧쯧 내일 일 안 나갈 거야 막걸리를 세 통이나 사간데 한통만 사가”

“좀 쉬고 싶네 컵이나 하나주소”

봉지에 미쳐 넣지 않은 막걸리 두 통과 종이컵을 주섬주섬 비닐봉지에 넣고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지폐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슈퍼에 나왔다. 먼가 맥이 풀린 어깨를 본 할매는 더 이상 말을 보태지 않았다. 막걸리 가 담긴 봉지를 털래 털래 흔들며 들고 가다 볕이 잘 드는 낮은 돌담 위에 엉덩이를 걸터 않아 종이컵에 한잔씩 한잔씩 채워 넣으며 홀짝였다. 안주는 골목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이런저런 사람들이 지나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그동안 떠오르지 않던 이런저런 것들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왜 진작에 이런 시간을 가지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아마 그때는 모든 것들이 그것에 맞게 그것이 옳다고 생각했겠지

하루가 이틀이 되고 이틀이 일주일이 되고 일주일이 한 달이 한 달이 반년이 반년이 일 년이 되었다. 지긋지긋하게 일만 할 때는 더디게만 같던 시간이 그저 밖에 나와 지나다니는 사람을 구경하는 것만으로 일 년이라는 시간이 원래 없었던 것처럼 지나가버렸다. 너무나 허무한 것 같으면서도 꽤 좋은 시간이었다. 사실 잘 모르겠다. 이런저런 감정과 생각을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때때로 생경한 한 것들이 느껴질 때가 있었다. ‘동네’ ‘골목’ ‘사람’ 특히 이 동네 자체였다. 몇십 년을 살아온 동네인데 그냥 오다가다 느꼈던 감정은 다른 무언가가 생기는 정도였는데 유심히 바라보게 되고부터 어쩐지 이상했다. 늘 바라보던 동네 골목이 아닌 것 같았다. 생김새는 뭐라고 말할 정도로 변한 것은 없는 데 어쩐지 풍기는 분위기가 알고 있던 평소에 느끼고 있던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다. 좋은 감정 같다가도 오묘하게 꺼림칙해질 때가 있었다. 자연재해가 생기기 전 생쥐들이 먼저 알아차리고 움직이는 것처럼 마음에 들쥐들이 팔닥일때가 있었다. 골목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서도 그런 것들이 느껴졌다. 조금 작게 작게 크게 더 크게 하지만 상반되는 사람들이 있었다. 꼭 저울이 어느 한쪽을 치우치치 않겠다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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