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떠한 단어를 들었을 때 머리로는 어찌어찌 이해를 하지만 누군가 그것을 설명하라 하면 어떡해 설명해야 할지를 모를 때가 있다. 나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일 때도 말이다. 스스로 머릿속으로 정립하여 어떤 단어들을 풀어, 나 자신에게 말할 때조차 이 단어는 이것을 말하는 것이라고 술술술 이야기할 수가 없다. 다만 어림 짐작할 뿐이다. 요즘 들어 나 자신의 기분을 표현하는 단어가 있었다. 늘 부정하고, 외면했던 단어이지마 언제쯤은 마주해야만 한 발짝 더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단어와 나 자신이 대면을 해야 할 것 같다.
뭐든지 다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바보 같은 행동, 멍청한 생각, 미련한 일상을 하루하루 꾸준히 착실하게도 그런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그래도 그래도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꽤 괜찮은 사람이 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몇 밤을 자다 일어나도 전혀 나아지지 않는다. 분명 나는 알고 있다. 나아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렇다고 딱히 맞는 액션을 취하지도 않았다. 그냥 알게 모르게 느껴지는 알 수 없는 고통의 나날들, 살같이 벗겨지고 뼈가 부러지는 그런 상처로 인해 고통받는 거라면 차라리 나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고통은 눈으로도 보이고 왜 고통스러운지도 금방 찾아내 치료하면 될 테니깐 하지만 지금 격고 있는 고통은 그런 종류에 것이 아니다. 가슴 깊숙한 곳에서 느껴지는 아리아리한 고통 아프지만 아픈 게 아닌 그런 고통 살아졌다 생겼다를 반복해서 내 심장을 죄여 오지만 윽~하고 송곳으로 찌름을 당할 정도의 고통은 주지 않는다. 어제보다는 오늘이 오늘보다는 내일이 더더욱 숨 막히게 서서히 고통으로 심장을 죄여온다. 차라리 한꺼번에 오는 고통이라면 뜨거운 쇳덩어리를 잡은 것 처럼 앗 뜨거워하고 손을 떼면 되는데 이건 내가 알 수 있을 듯 없을 듯 정해진 시간에 서서히 익혀먹는 수비드 요리처럼, 스멀스멀 천천히 나를 갈갈 먹는다. 드믄드믄 조여 오는 고통 때문에 맘과 몸은 어떡해서든 회피하려 자잘한 쾌락들을 찾아 나선다. 아니 마비제를 찾는다. 불안하고 초조해지는 감정을 억 누르기 위해서 내 몸 안의 시스템에 망치질한다. 방법이 없다. 현자라고 자칭하는 자들은 이겨내야 한다. 참고 견뎌내야 한다. 말하지만 그들 또한 입술에 침을 잔뜩 발랐을 뿐이다. 뒤돌아 서서는 그들 또한 나와는 다른 방법으로 자신의 몸과 마음에 독약을 집어넣는다. 서서히 죄여오는 독약을 말이다. 모래시계의 모래알들은 착실이 중력에 힘에 의해 한 알 한 알 떨어지지만, 나라는 존재는 끝을 향에 가는 동안 왜인지 끊임없이 도돌이표 일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엉킬 때로 엉켜버리 실타래 안에서 빠져나오려는 듯한 기분이 든다. 빠져나가려 할수록 엉키고 엉켜 잘라내야지만 빠져나올 수 있는 그런 곳에 빠져 버린 듯하다. 어떻게 하면 나는 실타래를 자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빠져나올 수 있을까? 그 방법을 구하려 책들을 읽어 보지만 어떤 책들의 내용들을 삶에서 행동해 보지만 그 방법 또한 모두가 해피엔딩이 아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 살점을 뜯어먹는 방법들 삼국시대의 살인과, 21세기 현대에서 벌어지는 살인이 다르게 느껴지는 것처럼 말이다. 나를 태워 줬던 타이타닉은 얼음에 부딪혀 서서히 가라 않고 빠져나온 나는 망망대해 조그마한 나룻배에 의지해 육지로 어찌 갈지 망막함에 어찌할지 모르며 벌벌 떨고 있다. 손을 휘휘 저어 가면 내일이면 다다를 수 있을까? 일주이면? 한 달이면? 누군가 시간이라도 알려 줬으면, 어디로 가서 어디로 돌아와야 할지를 코스를 알려 줬으면, 나는 더 이상 이런 감정에 허우적 될 필요 없을 텐데 접시물에 코 박고 살려달라고 외치는 모양새처럼 살아가지 않아도 될 텐데, 누군가는 그것이 인생의 재미라면 다 알고 가면 무슨 재미냐며 말하지만 그건 그 사람이야기이지 나 같은 사람도 한 대 묶으면 안될이 이야기다. 각자 좋아하는 음식은 인정하면서 각자 다른 성향은 인정받지 못한느 느낌이 든다. 하지만 이차이로 인해 내가 생각하는 단어에 속하는 인간과 아닌 인간으로 구분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