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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내일 May 01. 2019

죽어보니 후회만 남더라

내가 변화를 선택한 이유

좋아하는 만화인 <죽음에 관하여>에는 아래의 한 장면이 나온다.

한 남자가 죽었고 그 앞에 자신은 신이라고 말하는 인물이 나타난다. 죽은 남자는 살아있을 때 하지 못한 것이 너무 많으니 한 번만 살려 달라 애원한다. 신은 누구에게나 동등할 뿐 누구를 살릴 수는 없다고 말하며, 이어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죽음은 그리 멀지 않아. 어렵지도 쉽지도 않고 그냥 곁에 있는 거지. 두려울 수도 있고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어. 그러나 죽음은 현실이란 걸 알아야 해. 생각하지 않으려 하면 분명히 후회해. 지금의 너처럼. 죽음은 나와 상관없다고. 먼 미래니까 지금은 괜찮다고 생각하는 거지.”    


이야기의 결말은 남자가 죽는 것으로 끝난다. 스포일러가 아니다. 죽었으니까 죽을 뿐 반전은 없다.  


웹툰 <죽음의 관하여> 中


사람은 태어났으면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을 안다. 나도 사람이며, 태어났으니 언젠가는 죽을 것이다. 그 무엇보다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언젠가는 과학기술의 발달로 죽음을 정복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아직은 아니다. 노화로 인한 자연스러운 죽음을 바란다. 하지만 TV에 나오는 사건 사고의 주인공이 되어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렇다고 죽음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해 보지는 않았다. 공부하고, 일하고, 돈 벌고, 놀고, 연애한다고 바빴다. 나중에는 돈 벌고, 결혼하고, 아이 키우고, 노후 준비한다고 더 바쁠 것이다. 살기도 바쁜데 죽음을 생각할 여유는 없었다. 게다가 죽음에 관해 공부하는 철학자도 아니었다. 종교는 있지만 확고하게 사후세계를 믿지도 않았다.


내 주변에서 죽음과 관련된 상황이 생겼을 때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오랫동안 생각을 곱씹거나 파헤쳐보지는 않았다. 그러나 ‘간접적인 죽음’으로 인해 회사를 그만두고 선택하게 되었으며, ‘직접적인 죽음’을 겪은 ‘그날’로 인해 내 인생은 변하게 되었다. 아마, ‘그날’이 없었다면 <죽음에 관하여>에 나오는 신의 말처럼 먼 미래의 일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죽음이란 걸 처음 보게 된 것은 18살 때였다. 그전에 친가, 외가 할아버지, 할머니 모두가 생을 마감하셨지만, 왜인지 내 기억에는 남아 있지 않다. 하루는 학교 수업을 마치고 횡단보도를 건너려고 기다리고 있는데 오토바이와 5t 트럭이 부딪치는 사고가 났다. 오토바이 운전자는 10m 이상 날아갔고, 그 자리에서 끔찍한 모습으로 삶을 마감했다. 그 모습은 너무 선명해서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사고를 보고 나서 인간은 언제나 죽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나와는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었고, 시간이 흐르면서 그와 죽음에 관한 생각은 서서히 잊혀갔다.


그로부터 1년 후 죽음에 대해 교통사고보다 조금 더 오래 생각할 수 있는 일이 있었다. 엄마가 쓰러지셨고, 내 소중한 사람을 잃을까 두려웠다. 다행히 3일 뒤에 눈을 뜨셨다. 엄마가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이하시기 전까지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않았다. 내 일상에 치여 엄마의 사고는 지나간 사건으로만 남게 되었다. 부모님께 대하는 내 모습은 좀 더 건강을 챙기시라는 잔소리가 늘어난 것 빼고는 이전과 특별한 차이가 없었다. 결국, 죽음은 나에게 직접 와 닿아야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을 몇 년이 지나서 깨닫게 되었다.


영업 특성상 차가 필요해 회사에서 경차를 지급받았다. 하루는 외근을 마치고 회사로 복귀하기 위해 황령터널을 지나가던 중이었다. 남은 매출을 어떻게 받아야 할까 고민하던 중에 ‘쾅’ 소리와 함께 내 기억은 끊겼다. 5t 트럭을 모는 운전자가 졸음운전을 했고 옆에 달리던 내 차를 받아버렸다. 눈을 떴을 때는 구급차 안이었다. 사고로 인해 몇 주 동안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다행히 사고가 났던 시간이 차가 막히는 시간이라 트럭의 운행속도가 빠르지 않아서 생명에는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사고로 인해 죽음에 대해 이전과는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시점부터 직장생활에 대한 동기부여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죽음 앞에 모든 것이 무의미해 보였다. 그 이후 지인 2명의 ‘간접적인 죽음’을 겪었고,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그날’을 이야기하기 전에 왜 그날이 중요했는지를 잠시 말해야 할 것 같다. 나는 사람은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성품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은 좀 더 나아지려 하는 변화이다. 앞서 말했듯이 ‘더’라는 단어는 끝이 없으며, 변화하려는 노력은 피곤과 스트레스를 불러올 수 있다. 그래도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행하던 15개월 동안 한국에는 큼직한 이슈가 있었다. 촛불을 들었고, 대통령이 바뀌었다. 사람들은 그에 맞춰 변화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생존을 위해서, 누군가는 대의를 위해서였다. 내가 말하는 변화는 결국은 생존에 가깝다. 시대는 계속해서 변하고 있고, 예전의 변화와는 속도 자체가 다르다. 스스로 흐르는 물이라고 생각하지만, 고인 물이 되는 건 순간이다. 안타깝게도 이미 고인 물일 수도 있다. 최근 들었던 인문학 강의 중 ‘왜 인문학을 계속 공부해야 하는가?’에 대한 마지막 말을 들으면서 변화에 대한 내 가치관을 다잡을 수 있었다.    


“우리는 고등학교 때까지 공통으로 인문학을 배웁니다. 그러나 그 인문학은 대부분 우리가 태어나기 전이거나 최소 십여 년 전에 성립된 것들이죠. 우리의 남은 삶은 못 해도 50년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인문학을 계속 공부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고작 학창 시절 배운 최소 십여 년 전의 인문학으로 끊임없이 변화하는 남은 50년을 살 수는 없습니다.”    


20년 혹은 30년 동안 정립된 생각과 행동으로 남은 50년을 살 수는 있을 것이다. 다만, 그것은 ‘살아가는 것일 뿐’이 아닐까 한다. 예전의 나는 성장과 변화를 계속 바랐지만, 이 모든 것은 보수적인 관점 안에서 이루어졌다. 즉, 사회가 바라는 성장이자 타인이 기대하는 성장이었다. 인정받기 위해 대기업에 가려고 했고, 넓은 평수의 아파트에 살기를 원했다. 관계에서는 좋은 사람으로 남길 원했고, 스트레스는 스스로 감내했다. 내 기분보다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며 살았고, 행동이 아닌 생각으로 수많은 기회를 놓쳤다. 그 당시의 나는 내 생각이 맞다 생각했지만, 여행하면서 좀 더 나은 방향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그날’ 나미비아에서 겪은 한 번의 죽음 이후 현실이 되었다.    


우리는 생존하기 위해 변화한다


나미비아 피시리버캐년에서 세스림 국립공원으로 가는 도로를 달리는 중이었다. 그 전날까지 타이어가 터지는 작은 사고를 제외하고는 완벽했다. 매우 좋아서 불안할 만큼 행복했다. 그런데 비포장도로로 들어오는 순간 조금씩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날은 점점 저물어갔고, 어두워지기 전에 숙소에 도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도로 상태는 점점 나빠졌고, 얼마 후에는 도로라고 말하기도 모호한 길 위를 달리고 있었다. 동행하던 형이 운전했는데, 속도가 점점 빨라지는 것으로 형의 급한 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한 번은 코너를 돌면서 속도에 못 이겨 차가 살짝 붕 뜨는 느낌이 들었다. 옆에는 절벽이었다. 불안한 마음에 형에게 해가 져도 괜찮으니 천천히 가자고 이야기했다. 지도에는 100km 앞뒤로 건물 표시 하나 없었다. 그렇지만 그리 진지하지 않았다. 어둠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고 생각은 했으나 ‘여행 경력이 얼만데. 무슨 일 생겨봤자 해결하면 되지.’라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순간 절대 느끼고 싶지 않은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태어나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느낌이었다. 굳이 표현하자면 악당이 스파이더맨을 기습적으로 공격할 때 스파이더맨이 느끼는 위험신호 같은 것이었다. ‘덜컹’ 소리와 함께 차가 붕 떠버렸다. 정말, 찰나에 벌어진 일이었다. 정상 경로를 이탈한 차는 뿔난 황소처럼 이리저리 날뛰기 시작했고, 사정없이 옆으로 구르기 시작했다. 4바퀴까지 구르는 걸 인지했다. 5바퀴째 구르는 순간 ‘이렇게 죽는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기억이 끊겼다. 얼마 뒤인지 모르지만, 형이 “괜찮아요?”라고 부르는 소리에 눈을 떴다. 안경이 사라져 모든 것이 희미했다. 다행히 창문에 부딪힌 왼쪽 머리, 왼쪽 어깨의 지끈거림과 함께 부서진 작은 유리들이 박혀있는 살갗이 피부에 감각을 전하는 순간 살아있음을 느꼈다. 절벽 끝 철조망에 막힌 왼쪽 문 대신 오른쪽 운전자석 문을 통해 기어 나왔다. 그리고 두 발이 땅에 닿는 순간 한 가지를 결심했다.    


남을 위해서 살지 말자. 나를 위해 살자.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자.  



해는 이미 저물어 빛 한 점 없었고, 우리는 아프리카 도로 한가운데에 있었다. 생존은 했으니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을 때, 저 멀리서 반짝이는 불빛을 발견했다. 발에 유리가 박혀서 제대로 걸을 수 없었으나, 살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발을 질질 끌어 도로 중앙에 섰다. 그리고 양팔을 위아래로 휘저었다. 차가 나를 치고 가도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다행히 운명은 내 손을 들어주었다. 차는 점차 속도를 줄였고, 운전자와 탑승자는 차에서 내렸다. 그들이 사고 상황을 파악하고 응급차를 부르는 동안 나는 옆에서 속을 게워냈다.


3시간 정도 지나고 나서 경찰차와 응급차가 도착했다. 그리고 응급차를 타고 3시간 후 세스림 국립공원에 도착했다. 병원을 가려면 다음 날 수도인 빈두후크로 가야 했다. 국립공원에는 몸 상태를 점검하거나 치료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았다. 결국, 아무 치료도 받지 못한 채 국립공원 내 응급환자를 위한 임시 숙소에서 잠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빈두후크로 가서 치료받는 대신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렇게 431일의 여행은 끝이 났다.    


지금은 이전의 삶과는 다르게 살아가고 있다. 이 책에 쓰인 모든 변화의 내용이 ‘그날’에 의한 결과물이다. 지인들은 세계 일주를 선택했을 때 보다 지금의 선택을 더 의아하게 생각한다. 안정된 삶을 놔두고 왜 ‘위험해 보이는’ 변화된 삶을 살려하느냐는 것이다. 나도 두렵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사고가 아니었다면 예전의 나에겐 미친 짓으로 보이는 지금의 선택은 절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화를 선택하고, 변화를 선택한 길을 묵묵히 걸어갈 수 있는 이유는 차가 4바퀴까지 구를 때 들었던 생각 때문이다.

그 찰나에 생각났던 것이 

‘왜 그렇게 하지 못했을까?’, ‘진작에 했었어야 했는데’, ‘A 말고 B를 선택했었어야 했는데’ 등 후회와 관련된 것이었다. 

황령터널에서 사고 났을 때를 비롯해 여행 도중 4번의 죽을 뻔했던 상황을 겪을 때도 ‘살아서 다행이다.’, ‘죽을 뻔했네.’라고 생각이 들었을 뿐 후회와 관련된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날


어릴 적 오락실에서 하던 게임에서 주인공에게 2개 목숨이 주어졌던 이유는 1개 목숨은 악당에 의해서 언제든 잃을 수 있으니 주인공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 나는 지금 그렇게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나에게 그날 한 번 죽었다고 이야기한다. 2개의 목숨 중 한 개는 잃었다고 생각하며, 남은 목숨 1개로 살고 있다. 나중에 두 번째 죽을 때 처음 죽었을 때와 같은 후회로 가득 찬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아서 예전의 나와는 정반대의 삶을 살아가는 중이다.    


앞서 언급했던 <죽음에 관하여>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대사는 “타인의 시선이 중요한가. 너의 세상이야. 네 눈은 너의 세상만을 보여줘. 1인칭 시점이지. 오직 너만이 주인공이야.”이다.

이제 더 이상 타인의 시선에 신경 쓰며 후회하고 싶지 않다. 그러기 위해 ‘나의 변화’를 선택했고, ‘더 나은 내’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다. 어디에서 변화가 멈출지는 알 수 없다. 내일일지, 죽기 전까지 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지금의 나’가 ‘예전의 나’보다는 마음이 편하다.






책 <답은 '나'였다>와는 달리 사진 몇 장을 첨가하였습니다.

(기존 책에는 사진이 한 장도 없습니다.)

위클리 매거진 목차가 총 12개밖에 안 되기 때문에 전체가 아닌 부분으로 맥락을 이해해야 하다 보니 사진 몇 장을 넣는 것이 좀 더 공감하기 쉽다는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회차를 마지막으로 위클리 매거진 <답은 '나'였다>는 마감되었습니다.

12주 동안 소중한 시간을 내어 글을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답은 '나'였다> 책 구매를 원하시는 분은 아래 주소에서 부탁드립니다.

https://tinyurl.com/ybfj6tf2 


책에 나오는 사진 및 강의 일정은 인스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www.instagram.com/ksh_writer


자세한 인사는 개인 글에서 드리겠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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