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집은 한 생애를 마감했다.

6. 집의 생애

by 밤호수
큰언니가 그린 한옥집 대문


때때로 나는 그런 생각을 한다.

집도 사람처럼 한 생애가 있고

생의 초기 중기 후기. 혹은

탄생 - 어린 시절 - 전성기 - 쇠퇴 - 소멸

이런 생의 주기를 갖는 것은 아닐까.

집도 그 안에 생명과 온기, 사랑함과 사랑받음을 느끼고

무수한 것들을 품어주고 지켜주는

힘을 지닌 것은 아닐까.


적어도,

내 기억속의 집은 그러하다.

생명을 가지고 태어나,

나와 함께 그 가장 따뜻하고 밝은 시기를 거치고

사랑하던 사람들을 잃어버림과 동시에 쇠퇴하고 소멸하여 생의 한 주기를 마감한 나의 그 집.


나의 할아버지는 1930년대.

당신의 젊은 시절 이 집을 지으셨다.

고장에서 가장 좋은 집을 짓겠다는 마음으로, 저수지 옆의 크고 좋은 나무를 베어 날라 정성스레 2년에 걸쳐서 직접 지으셨다고 한다. 나무 하나하나 대패질을 하고 말리고 많은 시간을 들여 만드신 것이다.


나에게는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없다. 지금껏 살아계셨다면 집을 지으셨을 때의 이야기를 자세히 듣고 싶지만, 이 이야기는 나의 아빠도 태어나기 전의 일이므로 먼 나라 이야기처럼 나는 그저 전해내려오는 이야기를 듣는 수밖에 없음이 아쉽다. 그렇게 집이 태어났다고.


나 어릴 때 도립병원 관사로 이용되던 집 옆의 공터는 집이 만들어질 당시 원님이 사시던 데였고, 뒤로는 골짜기가 있었던 집의 위치는 아름다운 곳이었다.


그렇게 할아버지의 정성과 신념으로 지어진 집에서 아빠보다 무려 열 살 위이신 큰고모가 태어나고, 아빠가 태어나고, 작은 아빠가 태어나고, 고모들 둘이 또 태어났다. 모두 다섯 남매가 이 집에서 태어난 것이다. 요절복통 다섯 남매가 오색천연한 기와지붕과 흐드러진 나무가 가득한 이 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거기에 미망인이 되신 할아버지의 여동생이 만주에서 자녀들과 함께 와 있었기에, 다섯 남매에 사촌남매 둘까지, 집은 조용할 틈이 없었을 게다.



집에는 위기도 있었다.

1950년. 아직 집도 어린아이에 불과했을, 새집이었을 그 무렵, 6’25의 발발과 함께 위기가 찾아왔다.

전쟁이 일어나자, 할머니 할아버지도 리어카에 짐을 가득 싣고 이고 지고 피란을 가셨는데, 산을 넘어 가는 길을 가끔 아빠가 회상하시곤 한다. 전쟁이 뭔지도 모르고, 신나하다가 어른들께 혼줄을 나셨다고 말이다. 큰고모에게 첫눈에 반한 어떤 국군이 차를 태워줘서 그 차로 이동을 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아빠는 시골에서 몸이 약한 사촌 누님을 몸보신 시킨다고 형제들과 산에 독사를 잡으러 다니고, 열매를 따서 먹고 보내셨다고 한다. 그런데 3개월여를 두어 시간 떨어진 시골에서 지내다 왔을 때 주변의 집들이 모두 불에 타 사라졌는데, 우리집만 꿋꿋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는 것이다.


놀라운 일이었다.

어른들은 모두 ‘집터가 좋아서 그런가 보다’라고 하셨다지만, 나는 이 집의 생명이 스스로를 지켰다고 믿는다. 훗날 나와의 만남에 이르기까지, 스스로를 지키고 버텨온 그 생명력.

몇 달을 집을 방치한 채 피란을 다녀왔을 때, 그렇게 정성들여 가꾸던 정원은 잡초로 덮이고, 감나무는 늘어지고, 엉망이 되어있었단다. 벽에는 이북노래 ‘장백산 줄기줄기~’ 어쩌구가 쓰여 있었다. 그러나 당시 귀하게 사모으셨던 전축, 라디오, 카메라 등은 인민군이 집을 사용하다 정신없이 돌아갔는지, 그대로 있었다.


그렇게 시대를 뒤로 하고 아빠와 형제들은 시끌벅적하게 이 집에서 자랐다. 장난꾸러기 우리 아빠 이야기는 다음에 한번 해야겠다. 나무 사이사이를 타고 다니고, 기와지붕 위를 타잔처럼 날라다니던 우리 아빠는 하도 장난꾸러기여서 지금도 그 집 이야기를 하실 때 ‘광'이야기가 나오면 ‘거기야..거기..아빠가 맨날 벌받느라고 갇혀있던 데' 라고 하신다. 똑똑하고 얌전하던 고모들과 작은 아빠 사이에서 어지간히도 눈에 띄었을 아빠이다.


그렇게 한 세대가 집과 함께 지나갔다.

그리고 큰 아들인 아빠가 타지방 사람이었던 엄마와 결혼을 하셨고, 우리를 낳으며 집의 새로운 세대가 시작되었다. 당신의 자녀들이 장성해 떠난 이 집에서 할머니는 우리 딸 셋과 함께 새로운 삶을 사셨고, 할아버지를 이 집에서 떠나보내셨다.


탄생과, 죽음과, 결혼이 있지 않고서는 한 집이 완성되지 않는다


이런 요지의 말을 내가 좋아하는 Anne책에서도 본 적이 있는데, 그런 의미에서 나의 한옥집은 ‘집'의 ‘집됨'을 완성한 셈이다. 많은 탄생이 있었고, 할아버지의 죽음이 있었고, 결혼들이 있었으니까.


별채로 있던 사랑방에도 우리 가정과는 별도로 많은 사람들이 들락거렸다. 엄마가 동생들을 그 방에서 데리고 있기도 하셨고, 수사과장님도 계셨었고, 많은 분들이 그 방을 통해 사연도 많고, 성공도 하며 그렇게 사랑방의 이야기를 완성했다.


나는 이 집을 사랑했고, 자랑스러워했다. 나의 부모님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항상 그런 것은 아니었다. 최신 양옥집들이 유행처럼 번지던 때에는, 어찌나 그 집들이 부러웠는지 모른다. 한번은 학교 친구를 집에 데려왔는데 그 친구가 나에게 ‘어머, 한옥집인 줄 알면 안 올 걸 그랬어' 라고 말을 한 이후 큰 상처를 받았다. 나에겐 이토록 자랑스러웠던 집이 누군가에겐 그저 구식의 낡은 집일 수도 있다니. 그 말을 들으신 아빠가 ‘그 친구가 뭘 몰라도 한참 모르는구나' 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기셔서 나도 맞아, 그 친구가 뭘 모르는거야. 하고 넘겼지만.




내가 초등학교 4학년이 되던 해.

아빠의 느닷없는 계약으로 우리는 아파트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할머니는 절대 이 집을 떠나지 않겠다고 하셨고, 우리만 아파트로 이사를 갔다. 할머니는 홀로 이 집에서 다른 방들은 다 세를 놓으신 채 몇 년을 사셨다. 이후, 관리가 힘들어지자 집을 팔고 결국 할머니도 이사를 나오셨는데, 그 때 이야기는 지금도 나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마당 가득 있던 장독대를 깨고, 수호신과 같았던 나무를 인부들이 베어낼 때, 마치 집의 심장을 끊어내는 듯한 느낌을 나는 받았다.


지금도 그 집은 남아있다.

하지만 나와 함께 했던 그 집의 한 생애 주기는 마감을 했다. 고쳐지고 다듬어져서 다른 이들과 함께 한 지 오래된 집은, 나와는 운명을 달리하는, 집의 새로운 생애이다.


내가 사랑하던 집.

나의 유년의 삶과 추억이 가득한 집.

나의 유년과 가장 찬란한 시간을 꽃피우고 우리를 사랑하고 보호해주며 스스로를 지켜온 집은

우리가 그 집을,

장독대와,

그 오래된 나무를 잘라버리고 나왔을 때.

스스로의 생애를 한 번 마감했다.


그래서 나는.

이제는 볼 수 없는 오래된 친구를 그리워하듯.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나무 밑동에

그의 늙어버린 친구가 와서 앉아있듯.

그 집을 그리워한다.

나의 한옥집을.


이 집이 나의 한옥일기에서 다시 생명을 갖고

그리움의 색을 입기를.

나는 그토록 바란다.


* 이 이야기는 <안녕, 나의 한옥집>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엄마가 그리신 우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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