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Parkjudan
Oct 03. 2024
5. (2) 외로움은 결국
5. (2) 외로움은 결국
그 일을 시작으로 어느 순간 소피아와 약은 내 삶에 일부가 되어버렸다. 제로와 함께 하는 것만큼은 아니지만 일하는 합이 나름 잘 맞았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이야기들은 함께 나눌 수 없었다. 원단의 비밀 그건 제로와 나와의 비밀이기도 했다. 아직은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사이라고 생각하기는 힘들었다. 소피아는 특히 원단에 대해 공유를 원하는 듯했다. 알고는 있지만 제로와 나의 결과물을 그리 쉽게 내주기는 싫었다.
“주단 이번 컬렉션은 하고 싶은 걸 다해봐! 지원은 내가 해줄게”
금전적인 부분은 나도 부족하지는 않았다. 다소 불쾌한 기분이 들었지만 화려함과 자신감이 얼핏 교만으로 느껴지는 소피아의 단점을 생각하며 일단 제의를 받아들였다.
쇼장에 들어선 순간 소피아는 자본만으로 할 수 없는 것들을 이야기한 거는구나라고 느꼈다. 어느 쇼보다 화려한 인사층들이 있었고 무대 또한 내가 구상한 것 이상으로 완벽했다. 쇼가 끝나고 들리는 박수와 환호 소리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저번 쇼들도 좋았지만 이번쇼는 주단과 소피아의 콜라보답게 화려하고 유니크했어요”
칭찬에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성공적인 쇼들이 이어졌다. 하지만 소피아는 자주 하는 마약 때문인지 초조해하고 감정조절을 못 할 때가 많았다. 나는 스튜디오 한쪽에서 소피아가 작업 지시를 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소피아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고, 그녀의 얼굴에는 짜증과 불안이 서려 있었다.
"이게 뭐야? 내가 말한 대로 안 했잖아! “
소피아가 부하직원에게 소리치며, 서류를 탁자에 던졌다. 직원은 당황한 표정으로 서류를 주워 들고, 뭐라고 변명하려 했지만, 소피아는 말을 끊어버렸다.
"변명하지 마! 이번 컬렉션은 중요한 거라고 했잖아! 이런 실수를 하면 다 망친다고!"
그녀의 목소리는 더욱 격앙되어 갔다. 옆에 서 있던 다른 직원들도 눈치를 보며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속으로 씁쓸한 감정을 느꼈다.
“소피아, 진정해.”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 부드럽게 말했다. 소피아는 나를 바라보더니, 순간적으로 눈빛이 흔들렸다. 하지만 곧 다시 직원에게 시선을 돌리며 고개를 젓더니, 목소리를 낮췄다.
"알겠어... 미안해, "
소피아가 직원에게 힘겹게 사과했다.
"내가 좀 예민했어. 다시 한번 확인하고, 이번에는 실수하지 않게 조정해 줘."
직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자리를 떠났다.
나는 소피아의 옆에 서서 잠시 그녀의 어깨를 바라봤다. 완벽함에 대한 집착이 그녀를 이렇게까지 몰아세우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 상황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됐다.
“소피아, 너무 무리하지 마. 네가 잘 해낼 거라는 걸 나도, 다른 사람들도 알아.”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녀는 나를 쳐다보며 작은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 주단... 하지만 너도 알잖아. 이번 컬렉션이 얼마나 중요한지. 난 실수를 용납할 수 없어.”
소피아의 강한 집념은 여전히 그녀를 지배하고 있었다.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고, 그녀에게 더 이상의 말은 하지 않았다.
이유 없이 나를 좋아해 주는 친구를 잃는다는 건 정말 슬픈 일이다. 제로가 결혼생활로 관계가 소원해지고 우린 점점 연락이 뜸해졌다. 소피아는 그 옆자리를 채울 수 없었다. 사회는 서로가 서로를 치고받아 밟고 올라가라고 우리에게 교육하고 있었고 선택되지 않는다면 패배자라는 오락프로그램이 우릴 항상 자극하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욕망에 미친 광기의 눈빛이 있다, 그 자릴 누구한테도 뺏기지 않으려 동료를 배신하고 잠 못 들고 노력한다. 어떤 이들은 그것을 카리스마라 부르며 추앙한다. 하지만 난 그것을 극한 상황에서 인격을 뚫고 나오는 짐승적인 무자비함이라 생각한다. 안타깝게도 그 눈빛이 소피아에겐 있다. 서로가 서로를 질투하고 인정해주지 못하는 눈이다. 짐승이 먹을 것을 빼앗겼을 때 하는 그 눈... 난 그 눈이 혐오스럽다. 안쓰럽게는 생각하지만 혐오스러운 건 어쩔 수 없다. 지구에서 배운 건 그런 눈빛을 가진 인간들은 배신하거나 힘들어하는 날 조롱하거나 나보다 더 좋은 것을 독차치하게 위해 웃으며 내 눈치를 본다는 것이다. 내가 선하게 대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건강하지 못한 인간관계보다는 외로움을 선택하는 것이 현명하다. 어릴 때부터 이런 교육 시스템에서 자란 대부분의 인간들은 자신을 위해 살지 못하고 남을 만족시켜 인정욕구를 채우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하지만 그들과 다르게 맑고 선한 눈을 갖고 있는 제로. 난 그래서 제로가 좋았다. 다른 사람들에게 그 눈을 찾는다는 게 어쩌면 처음부터 무리였을지 모른다. 그래서 제로가 제로인가? 제로아내의 눈치를 보느라 자주 볼 수 없지만 엄한 오해로 제로가 곤란스러운 상황에 처하게 하고 싶지 않다. 정말 좋은 사람이라 좋은 일만 생기면 하는 마음뿐이다. 나는 이번 시즌이 끝나면 소피아에게 독립활동을 하겠다고 말할 것이다. 그녀가 화를 내거나 슬퍼해도 소용없다. 이런 식으로 내 삶을 그녀와 같이 진흙 구덩이로 몰고 갈 수는 없었다. 그 눈을 보기 전까진 나 또한 그녀를 좋아했다. 하지만 더 이상은 아니다.
고민하던 중 소피아와 단둘이 남아 대화를 나누는 순간이 찾아왔다. 나는 마음속에서 결심한 이야기를 꺼낼 준비를 했다. 이제는 내 길을 가야 할 때였다.
“소피아,”
내가 조용히 말을 꺼내자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내 눈을 바라봤다.
“이번 시즌이 끝나면, 나는 독립할 거야. 나만의 것을 꾸리려고 해.”
그녀의 얼굴에 순간적으로 어색한 미소가 떠올랐다. 당황한 듯한 눈빛을 감추지 못한 소피아는 입을 열어 말했다.
“주단, 왜 그렇게 서두르는 거야? 우린 함께 성공할 수 있어. 너도 알잖아, 우리 둘이 힘을 합치면 더 큰 성과를 낼 수 있어.”
그녀는 나를 달래려는 듯 목소리를 낮추고 부드럽게 말했다.
“생각해 봐. 우리가 해낸 일들, 얼마나 많은 성과를 이뤘는지. 아직 더 많은 것을 함께 할 수 있어. 지금은 독립할 때가 아니야, 주단.”
하지만 나는 이미 결심한 상태였다.
“아니, 소피아. 나는 내 길을 가고 싶어. 이번 시즌이 끝나면, 나만의 브랜드를 만들 거야.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소피아는 내 말에 충격을 받은 듯 잠시 말이 없었다. 그녀의 표정이 흔들렸고, 나를 잡아두려는 마음이 명확히 느껴졌다.
“주단, 넌 나 없이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니? 난 널 도울 수 있어. 같이 하면 훨씬 더 쉬워질 거야.”
하지만 나는 단호했다. 지금이 아니면 절대 독립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확고했다.
“미안해, 소피아. 나는 내 꿈을 이루고 싶어. 너도 네 방식대로 잘 해낼 수 있을 거야. 이번 시즌이 끝나면, 나는 나만의 길을 갈 거야.”
소피아는 눈을 감고 한숨을 쉬었다. 그녀도 결국 나의 결심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는 듯했다.
“그래, 주단.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어쩔 수 없겠지.”
그녀는 억지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시즌 후엔 각자의 길을 걷기로 하자. 다만, 나는 네가 성공하길 진심으로 바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