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Parkjudan
Sep 26. 2024
3. (1) 갈리비아 해조류
3. (1) 갈리비아 해조류
"여기 뭐가 있을까?"
제로가 조심스레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와 함께 창고 문을 열었다. 안쪽은 어둡고, 눅눅한 공기가 감돌았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 안에는 우리가 간절히 필요로 하던 것이 있었다. 남아 있던 통조림 몇 개와 약간의 생수. 그것은 분명 오래된 것들이었지만, 지금 이 순간 우리에게는 생명을 연장해 줄 수 있는 귀중한 것들이었다.
"살았다…"
제로가 무릎을 꿇고 통조림을 들어 올리며 중얼거렸다. 나 역시 긴 한숨을 내쉬었다. 작은 마을이 우리에게 가져다준 이 작디작은 기적이 우리의 목숨을 이어주고 있었다.
우리는 창고 바닥에 주저앉아 그 오래된 음식들을 서둘러 먹기 시작했다. 굶주림에 지친 몸이 조금씩 힘을 되찾았고, 숨결이 조금 더 길어졌다. 나는 제로를 바라보며 안도감을 느꼈다. 이 작은 마을은, 우리가 절망 속에서 발견한 새로운 희망의 불씨였다.
"우린 아직 끝이 아니야."
제로가 말했다. 그의 눈에 빛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나도 그의 말을 되새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구가 우리를 버린 것 같았지만, 이 마을은 우리가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을 증명해 주었다. 우리 둘은 창고 밖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마을은 고요하고 폐허처럼 보였지만, 그곳에는 우리가 다음으로 나아갈 힘이 숨겨져 있었다.
통조림 몇 개로 우리는 겨우 살아날 수 있었다. 마을은 버려진 듯했지만, 사람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었다. 나는 제로를 바라보며 결심을 굳혔다. 죽느니 차라리 마지막 희망인 갈리비아 해조류를 찾는 게 나았다. 이대로 굶주려 죽거나, 잿더미가 된 온실처럼 아무 의미 없이 사라지는 건 싫었다.
"주단… 이대로는 안 돼."
제로가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얼굴은 창백했고, 눈은 깊이 들어가 있었다. 나는 입술을 꾹 다물고 생각에 잠겼다.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
"그래, 갈리비아 해조류를 찾자, "
나는 결단을 내렸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이렇게 천천히 굶어 죽는 것보다는 나아."
제로는 잠시 내 눈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내가 한 말을 완전히 이해하고 있었다. 이제 우리는 어떤 위험이라도 감수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다. 갈리비아 해조류가 있다는 소문만 들었지, 그 위치조차 우리는 알지 못했다. 그때였다. 마을 안쪽에서 누군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듯한 시선이 느껴졌다. 나는 그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너희들… 갈리비아 해조류를 찾고 있어?"
낡은 옷을 입은 한 남자가 그림자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마을에서 오래 혼자 지낸 듯 보였다. 피부는 햇빛에 그을렸고, 얼굴엔 깊은 주름이 파여 있었다. 눈빛은 날카로웠다.
며칠 전부터 우리를 살피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냥 상대하기 귀찮았을 뿐이다.
"네"
내가 대답했다.
"그게 우리 마지막 희망이에요. 그런데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찾기 어렵다는 말만 들었어요."
남자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렇지. 갈리비아 해조류는 아무나 찾을 수 있는 게 아니야. 그곳에 간 사람 중에 살아 돌아온 이는 거의 없거든."
그의 말에 제로가 조심스레 물었다.
"하지만 그곳이 어디인지 아시나요?"
남자는 잠시 우리를 바라보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안다. 하지만 너희가 그걸 들을 준비가 됐는지는 잘 모르겠구나. 그 해조류는 단순히 찾기 어려운 게 아니야. 그 해역은 ‘죽음의 바다’로 불려. 독성 가스가 물 위로 솟아오르고, 그것을 지키는 생명체들이 그곳을 감시하고 있지. 생명체에게서 살아남는 것도 쉽지 않지만, 그 독성은 사람의 몸을 금세 망가뜨릴 거야."
제로가 말했다.
"어떻게 알고 있죠?"
"난 들어갔다 실패했거든... 지옥 같은 곳이었어 다시는 가고 싶지 않아. 생명체는 둘째치고 가스 때문에 죽을 뻔했어"
'나와 제로는 이미 농장일을 하며 가스는 마실대로 마셔봤고 폐에 보조장치 또한 이식되어 있다'
제로는 그의 말에 눈을 깜빡이며 잠시 고민하는 듯했다. 나는 남자의 말이 두렵기는 했지만, 굶어 죽느니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았다.
"그래도 우린 시도해야 해요, "
내가 단호하게 말했다.
"우리가 시도하겠어요"
남자는 잠시 나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러더니 입을 열었다.
"좋아, 그럼 내가 너희에게 길을 알려주겠다."
그는 벽에 걸린 낡은 지도를 펼쳐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여기가 너희가 찾아야 할 곳이다. 이 근처의 바다에 갈리비아 해조류가 자라지. 하지만 그곳에 가려면 목숨을 걸어야 할 거야. 준비가 돼 있으면 가보거라. 내 조언을 따르라면 낮에 가는 것이 좋아. 밤에는 그 생명체들이 더 활발해진다.”
나는 지도에 표시된 위치를 유심히 들여다봤다. 그것은 우리가 걸어온 길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곳이 독성 물질과 생명체들이 지키고 있는 위험 지대라는 것이었다.
"우린 준비됐어요, "
제로가 작게 중얼거렸다. 우리가 갈리비아 해조류를 찾는 것만이 우리를 살릴 마지막 희망이었다. 남자는 손을 내밀어 우리를 바라봤다.
“그럼 조심해라. ”
우린 마지막으로 남자의 도움을 받으며 길을 떠났다. 배고픔과 두려움이 우리를 옥죄었지만, 이번엔 후퇴할 수 없었다. 우리의 목숨이 달린 마지막 여정이 시작된 것이다.
갈리비아 해조류를 찾는 여정은 지옥과 같았다. 우리는 남자가 알려준 지도를 따라 죽음의 바다로 향했다. 날은 밝았지만, 햇빛조차 그곳의 위험을 완전히 가려주진 못했다. 길을 걷는 내내 우리는 두려움 속에서 서로에게 의지했다. 갈리비아 해조류를 얻지 못하면 죽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굶주림이 이미 우리 몸을 망가뜨리고 있었다.
"저기다, "
내가 속삭이듯 말했다. 눈앞에 드넓게 펼쳐진 바다, 잿빛 물결이 일렁이고 있었다. 그곳에서 해조류의 흔적을 볼 수 있었다. 녹색과 푸른빛을 띠는 해조류가 바닷속에서 미묘하게 빛나고 있었다. 남자의 말대로 그곳은 독성이 가득했고, 공기마저 불안하게 떨렸다.
제로는 입술을 깨물고 나를 바라봤다.
“가야 해, 주단! 시간이 없어.”
그의 목소리에는 굳은 결심이 묻어 있었다.
나는 손에 쥔 도구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남자가 주었던 채취 도구는 우리에게 생명을 구할 유일한 방법이었다. 독성 해조류를 직접 만질 수는 없었기에, 이 도구만이 해조류를 안전하게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채취하는 순간까지 살아남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준비됐어, "
내가 답했다.
"서둘러서 끝내자."
우리는 숨을 가다듬고 바다로 천천히 다가갔다. 갈리비아 해조류는 물속에서 아름답게 빛났지만, 그 주변은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바다의 독성 가스가 희미하게 솟아오르고 있었고, 그곳을 지키는 생명체들이 수면 아래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나는 도구를 들고 조심스럽게 바닷가로 다가가서 물에 손을 뻗었다. 순간, 물속에서 무언가 거대한 그림자가 느껴졌다. 생명체들이 움직이는 소리가 귀를 찌를 듯 울렸다.
"조심해!"
제로가 경고했다.
순간, 바닷속에서 뭔가 빠르게 다가왔다. 검고 거대한 물고기 같은 생물이었다. 나는 재빨리 몸을 피했다. 그들은 우리가 바다로 들어오는 순간부터 우리를 주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생명체들이 공격하기 전에 우리는 해조류를 채취해야 했다. 나는 도구를 바닷속으로 뻗어, 갈리비아 해조류를 향해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손끝이 떨리고, 긴장이 온몸을 감싸고 있었다. 생명체들이 우리 주위를 감싸기 시작했다. 그들의 움직임은 점점 빨라졌고, 숨소리마저 거칠어졌다.
나는 손에 힘을 주어 도구를 사용해 해조류를 끌어당겼다. 도구가 해조류에 닿자, 그것은 아름답게 휘감기며 도구에 걸렸다. 나는 서둘러 그것을 꺼냈다. 해조류는 이상할 만큼 무겁고, 그 안에 무언가 생명력이 느껴졌다. 그 순간, 더 가까이 다가온 생명체들이 우리를 향해 돌진했다.
나는 제로의 손을 붙잡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뒤에서 물소리와 생명체들의 포효가 들렸다. 그들은 갈리비아 해조류를 지키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 필사적인 상황에서 겨우 벗어날 수 있었다.
우리는 무사히 바다에서 빠져나와 그곳에서 멀어졌다. 숨을 고르며 한참을 달린 후에야 멈춰 섰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도구를 내려다보았다. 도구에 걸린 푸른 해조류는 작은 승리처럼 보였다. 그 해조류가 우리의 목숨을 구해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우리는 지친 몸을 바닥에 주저앉히며 웃음을 터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