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36년 동안 소방관으로 살아왔다. 불과 연기 한가운데서 사람을 꺼내고, 누군가의 마지막 1초를 붙잡는 일 앞에 서 있었다. 그곳에서 배운 삶의 진실은 단 하나였다. “내가 오늘 여기에 있다면, 그것은 누군가의 내일을 지키기 위함이다.”
하지만 정년이 가까워졌을 때 문득, 이런 질문이 내 안을 울렸다. “남을 지키느라 나는 나를 잊고 산 것은 아닐까.” 남들의 상처는 들여다보며 살았지만 정작 내 안의 목소리는 한 번도 꺼내지 못한 채 흘려보내고 있었다. 그 질문이 내 안에서 나지막이 울릴 때, 나는 처음으로 스스로에게 자리를 내어주었다.
그것이 ‘하루 한 줄 글쓰기’의 시작이었다. 하루 한 줄, 나를 되찾는 첫 걸음이었다. 무언가 거창한 목표가 있어서 글을 쓴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 오랜 시간 거대한 책임 속에서 살았기에 나는 가볍고 조용한 어떤 것으로 나에게 말을 걸고 싶었다. 그래서 아주 작게 시작했다. 정말, 한 줄만. “오늘 하루도 잘 버틴 나, 수고했다.” “걱정보다 삶이 더 단단하다.” “비가 와도 괜찮다. 꽃은 비를 먹고 핀다.” 소방서에서는 누구에게도 보일 수 없던 내 마음이 짧은 문장 위에서 조용히 숨을 쉬기 시작했다. 나는 내 안에 이런 따뜻함이 남아 있었다는 사실이 낯설 정도였다.
작은 글이 쌓이자, 마음에 질서가 생기기 시작했다. 글을 쓴다는 것은 단순히 기록이 아니었다. 감정을 정돈하는 일이었고 흩어진 마음을 다시 제자리에 놓는 과정이었다. 어느 날은 아들의 말 한마디에서, 어느 날은 농장에서 본 햇살의 빛깔에서, 또 어떤 날은 아내가 건넨 눈빛 속에서 나는 ‘살아 있는 나의 목소리’를 발견했다. 인생을 바꾸는 건 거창한 결심이 아니었다. 수십 년 쌓인 피로를 녹인 것도, 내 마음의 방향을 다시 세운 것도, 결국 이 단 한 줄의 글쓰기였다.
글쓰기는 나를 구하러 온 또 하나의 ‘작은 소방서’였다. 누군가는 묻는다. “정말 글이 삶을 바꿀 수 있나요?” 나는 흔들림 없이 대답한다. “그렇다.” 글은 나를 다시 붙들어준 손이었다.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었고 내가 나를 놓치지 않게 해 준 다정한 등대였다. 그리고 어느새 나는 깨달았다. 매일 한 줄을 쓰는 일은 생존이 아니라 회복이었다. 누군가를 구하기 전에, 먼저 나를 구하는 시간이었다.
하루 한 줄이 쌓여, 내 인생의 방향이 바뀌었다. 사람의 마음은 생각보다 연약하다. 그래서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흔들린다. 하지만 한 줄의 글은 그 흔들림에 균형추가 되어 준다. 글이 쌓이면 마음이 단단해지고, 마음이 단단해지면 선택이 바뀌고, 선택이 바뀌면 삶 전체가 달라진다. 나는 지금도 새벽마다 커피 한 잔 옆에 한 줄을 놓는다. 그 한 줄이 하나의 등불이 되어 오늘 하루의 길을 비추기 때문이다.
<독자에게 전하는 희망의 메시지>
혹시 아직 시작하지 못했는가. 괜찮다. 인생을 바꾸는 일은 ‘거대한 결심’이 아니라, 그저 오늘의 작은 한 문장에서 시작된다. 당신 역시 할 수 있다. 오늘 하루, 마음에서 올라오는 단 한 줄만 써 보라. 그 문장이 내일의 당신을 구할 것이다. 그 문장이 바로 당신의 첫 번째 빛이다. 하루 한 줄, 그 작은 등불이 결국 삶을 바꾼다.
<블로그 이웃의 공감 댓글>
저는 작가님, 지난 36년의 긴 고난의 시간을 보내고 비로소 자신만의 삶을 찾으신 것에 놀라움도 크지만, 매일 화마 속에서 자신을 태우며 다른 생명을 구해낸 지난 36년은, 그무엇과도, 그 어떤 유명인의 역할보다도 위대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때가 있어 오늘이 행복한 것이 아니라 그때가 무엇과도 비교될 수 없는 가치있는 삶이라 믿습니다. 저는 그렇게 단정합니다.
<작가의 답글>
진심이 담긴 말씀에 마음 깊이 감동받았습니다. “그때가 있어 오늘이 행복한 것이 아니라, 그때 그 시간이 이미 가치 있는 삶이었다”는 말씀이 가슴 깊이 와닿습니다. 지난 36년, 제 삶을 그렇게 봐주시니 참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그 따뜻한 시선 덕분에 어제도 더 단단히 살아갈 힘을 얻었습니다. 진심으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