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한 숟가락을 남기는 습관

by 박민아


다이어트를 시작하고 제일 먼저 구매한 의외의 물건은, 저울이었다. 대충 적게 먹으면 될 일이라고 생각했으나 PT 선생님의 주문은 꽤 디테일 했기 때문이다.


"고구마, 닭가슴살 각각 100g만 드세요."

"사과는 몇 g 정도 되는 것 같나요?"


오직 감으로 정량의 초밥을 쥐어 내는 사장님들이 왜 달인이겠는가. 100g이 어느 정도 되는지 알 리 없으니 선생님의 요구에 응답하기 위해서는 저울이 필요했다. 실제로 100g은 정말 적은 양이었다. 배가 부르려면 한참 모자랐다. 그런데도 꼭 남기고 싶은 날이 있었단 말이지. 그건 양의 문제가 아니라 정신머리에 가까운 문제였다.


“다 마신 거야?”


카페에서 자리를 정리할 때쯤이면 내가 늘 듣는 말이다. 나는 커피를 잘 남기는 사람이다. 그냥 매번 딱 한 모금 정도 남긴다고 보면 된다. 커피는 (개인적으로) 한 다섯 모금째가 제일 맛있는 것 같다. 아마 마시기에 적당히 따뜻해서 일 것이다. 그렇담 커피는 언제가 제일 맛없을까. 모두 예상하겠지만 그것은 언제나 마지막 한 모금. 쓴 커피는 약만큼 쓰고, 신 커피는 유난히 더 신 한 모금. 때로는 아이스 커피보다 차게 느껴지는 그 온도. 그렇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그런 황당한 이유로 커피를 남기며 살아왔다.


그나마 커피는 좀 나을 것이다. 나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커피를 남기며 살고 있으니까. 문제는 밥 먹을 때다. 매번 한 숟가락을 남기냐는 엄마의 타박을 들으며 식사를 마친다. 나도 잘못되었다고 생각은 한다. 그런데 어쩌랴. 마지막 한 숟가락의 밥은 꼭 바싹 말라 있거나 콩이 잔뜩 남아있는 것을. 김치 양념 같은 게 묻어있는 것을.


남긴 것은 어디 음식뿐일까.


피아노 학원 다닐 때, 선생님이 “열 번 치고 나오렴.” 하시면 늘 마지막 사과를 선생님 몰래 색칠하던 나. 영어 단어 10번씩 써오라는 숙제를 앞에 두면 아홉 번 쓰고 나머지 한 번이 쓰기 싫어 미친 듯이 저항했던 기억. 집에서 혼자 운동하겠다고 스쾃을 하면 꼭 한두 개는 하기 싫어 멈춰 버린다.


어릴 적 누구나 다니던 토익 학원도 홀랑 자체 종강해 버리고 나가지 않던 기억까지. 런닝머신은 또 어떻고. 30분을 걷자고 마음먹어도 28분부터는 미쳐버릴 것 같다. 2분의 시간이 억겁처럼 느껴지고 심장이 두근거려 참을 수 없다. 어서 끝내고 싶은 조바심으로 터질 지경. 그렇게 남긴 2분들만 모아도 체력이 지금보다 10배는 더 좋았으리라.


열심히 해놓고는 마지막 하나가 하기 싫어 미완으로 남겨둔 것들. 남들 보기에 티 나지 않지만 나는 명백히 알고 있는 지난날의 나. 사실 내가 지금까지 남겨온 것은 그런 것이었다. 어쩌면 나를 완성할 수 있었을지 모를, 나의 조각들.


가수 이적의 책 [지문 사냥꾼]에는 <잃어버린 우산들의 도시>라는 글이 있다. 잃어버린 우산들이 그들만의 도시에 모여 산다는 이야기. 내가 남긴 것들을 생각하면 그 책이 떠오른다. 그 아이들도 어딘가에 다 모여 있을 것이다. 어쩌면 내 발목에 묶여 있는지도 모르겠다. 빨리 뛰고 싶어도, 더 나아가고 싶어도 자꾸만 제자리걸음을 하게 만드는 모래주머니처럼.


무엇이든 끝까지 해본 사람은 다음번에도 남기지 않고 할 수 있다. 내가 그런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의 사람이기에 안다. 한 번도 완전히 끝마쳐 본 적 없는 사람은 그 기쁨을 알지 못한다. 그러니 자꾸 남기는 것이다. 그 끝에 꿀이 있는지도 모른 채. 한 번이라도 완성의 쾌감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오히려 멈추는 것이 힘들지도 모를 일이다.


다이어트의 여정이 끝났을 때 내가 기뻤던 것은 감량에 성공했다는 사실만은 아니었다. 약속된 횟수를 포기하지 않고 다 채웠다는 것을 실감한 기쁨이었다. 힘들고 하기 싫어도 끝까지 다 하는 것. 그것도 힘들다면 때로는 목표 따위 잊고 그저 막연히 달리는 것도 방법이 된다. 그러다 문득 고개를 들어보면 어딘가에 도착해 있을 테니까. 방법은 조금 달라 보여도 결과는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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