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생일이었다. 먹고 싶은 걸 물으니 집에서 한 제육볶음이면 충분 하단다. 다이어트를 했던 터라 집밥다운 집밥을 먹은 지가 오래되어 그립다고 했다. 나는 (아무하고도 싸우지 않았는데) 뭔가 의기 양양해진다. 어머님이 해주신 멸치 볶음이나 갈비찜처럼 나의 제육 볶음도 오빠에게 익숙하고 다정스러운 음식이 되었다는 것이 많이 기뻤다.
딱 나 정도의 요리 실력이면 먹을 수 있는 것은 정해져 있다. 냉장고에 있는 재료는 늘 고만고만하고 할 수 있는 음식은 몇 가지 되지 않으니까. 다양하게 먹고 싶다면 외식이 나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부엌에 서는 것을 좋아한다. 요리책을 사두었는데 그마저도 잘 보지 않는다. 더 많은 요리를 할 수 있게 되는 것보다 하나라도 할 줄 아는 것에 만족하며 사는 것 같다. 하여튼 그런 이유로 할 줄 아는 음식이 빤하다.
엄마가 감자를 잔뜩 주시는 여름이면 (엄마들은 도매상과 직접 거래하는 것 같다. 양이 어마 어마해) 감자 샐러드를 넣은 샌드위치나 채 썬 감자로 감자전을 해먹는다. 이후에는 카레 몇 번 해보다 싹이 난 감자 몇 알은 결국 버리게 된다. 할 줄 아는 감자 요리가 많으면 감자 버리는 일은 없었을까?
언젠가는 검은 콩이 잔뜩 생겨서 일단 콩밥을 했다. 그러다 콩국수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콩국수를 해먹을 날이 오리라 생각 못한 탓에 힘이 약한 믹서기를 사버렸네? 나는 달달 거리는 믹서기를 어르고 달래야 했다. 그리고 내 체력과 영혼도 함께 갈아 넣었다. 고생한 덕분인지 정말 맛있는 콩국수를 먹게 되었으나 앞으로 콩물은 사 오기로 했다. 콩을 직접 가는 것만 집밥은 아닐 테니까. 국수를 삶고 토마토, 오이를 다듬어 올리는 것으로도 집밥이 되지 않을까.
때로는 부엌 근처에 얼씬도 않고 싶다. 그런 날은 나도 외식을 한다. 치킨이나 피자, 닭볶음탕 같은 것을 시켜 먹기도 하고 집 앞 국숫집이나 분식집에 가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날이 너무 오래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나의 소박한 룰. 미천한 실력과 빈약한 레퍼토리를 안고 또 다시 부엌으로 향한다.
잘 살고 싶다. 집밥 얘기하다가 생 전체를 운운하는 것은 우스운 일일지도 모르겠지만. 건강하게 살고 싶다. 일찍 일어나 삼시 세 끼를 챙겨 먹으며 가끔은 운동도 하는 사람. 혹은 운동하지 않아도 적당한 체중과 혈색을 유지할 수 있을 만큼의 관리가 된 사람. 자신이 무얼 먹는 지 기억하는 날이, 그러지 못한 날들 보다 많으면 좋겠다. 때로 엉망으로 먹고 마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손으로 지은 밥을, 나의 가족과 나눠 먹을 수 있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정답도 아니고 옳은 일도 아니지만.
요리를 전혀 하지 않는 사람도 잘 살 수 있다. 태어나 운동 한 번 해본 적 없어도 마찬 가지다. 그렇지만 자신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온 몸, 손 끝으로 느끼는 사람과 아무런 감각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다를 것이다. 무얼 바라며 사는지, 무엇이 나를 괴롭게 하는지 떠올릴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나는 전자이고 싶은 것이다. 요리를 한다는 건, 김치를 썰어 찌개를 끓이고 나물을 조물조물 무치는 일은 (적어도 나에게 있어) 그런 일과 닮아있다. 하루하루를 체감하며 살아가는 일 말이다.
요리를 나 정도로만 할 줄 알아도 하루 세 끼를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 내가 한 음식이 다른 사람 입에도 꽤 먹을 만 하다는 사실이 여전히 놀랍고 어리둥절하다. 익숙해지기 까지는 얼마 간의 시간이 필요할까. 혹은 끝까지 낯선 채로 살아가게 될까.
그러나 생각한다. 매번 새삼스러운 일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닐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