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추와 칼라만시

by 박민아

상추를 키우고 있다. 얼마 전 부모님 댁에서 받아온 것이다. 상추 심는 일을 도와주면 삼계탕을 사주신다는 말에 쪼르르 다녀왔다. 물론 나는 다 알고 있다. 그건 그냥 핑계고 내 얼굴 한 번 더 보려고 그러신 것을 말이다. 집에 화분 하나 두신 적 없는 부모님께서 무슨 바람이 불어 상추를 키우시기로 한 걸까. 나는 알쏭달쏭한 마음으로 상추 모종 3개와 삼계탕을 얻어왔다.


직접 키운 상추는 가끔 똑똑 떼다가 밥상에 올린다. 고기가 있다면 제일 좋겠지만 쌈장만으로도 상추를 맛있게 먹을 수 있다. 크지 않고 연해 샌드위치에 넣기도 좋다. 그렇다. 상추는 키우기 쉬울 뿐 아니라 먹기도 쉽다. 심지어 3일에 한 번꼴로 뜯어 먹을 수 있다. 나중에는 먹는 속도보다 자라는 속도가 훨씬 빨라 넘쳐나는 것이 바로 상추라고 한다. 나처럼 성격이 급하고 서툰 농부에게 적합한 작물이다.


상추가 처음은 아니다. 우리 집에는 1년 된 칼라만시 나무도 있다. (나무라고 하기엔 아직 많이 작지만) 맞다. 소주에 타 먹으면 숙취는 없고 맛은 끝내준다는 그 열대과일. 그러나 한 번도 수확하지 못했다. 찾아보니 1년에서 2년 정도는 키워야 열매를 맺는다고 한다. 2년 정도는 걸린다는 이야기를 들어서일까? 어서 빨리 뜯어가 달라고 외치는 듯한 상추에 비하면 칼라만시는 좀 더딘 것처럼 느껴진다.


주인의 애타는 마음을 다독거리기라도 하는 듯 칼라만시는 묵묵히 새잎을 올리고 몸을 키운다.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외치고 있는 것만 같다. 주인 맘 같지 않아도 그런 것쯤은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자신만의 속도로, 자신이 원하는 만큼 자라고 있다. 이미 다 커버린 나로서는 경험하기 힘든 생명력이 우리집 베란다에 있다.


나이가 지긋하신 어르신께서 지나가는 아이에게 눈을 떼지 못하는 것. 자녀를 모두 독립시킨 엄마 아빠에게 열대어와 상추가 주는 기쁨. 소리 없이, 그러나 분명히 싹을 올리는 상추를 보는 내 마음과 내가 키운 작물을 먹는 성취감. 그것은 그리움과 비슷한 게 아닐까. 자신에게도 분명히 있었던 생명력에 대한 그리움. 마냥 먹고 싸고 자도 조금씩 몸을 불리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애정 어린 찬사를 받던 시절. 존재 자체가 기쁨이던 시절. 우리 모두에게 그런 시절이 있었지 하면서 말이다.


그리움을 뒤로하고 상추와 칼라만시로부터 배우고 싶은 것을 실은 따로 있다. 주인의 잔소리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만의 속도로 자라고 있다는 사실. 자신의 속도를 타인의 속도와 비교해 주눅 들거나 우쭐하지 않는 것. 자신이 성장하고 있다는 실감만 있다면 얼마나 빠르고 느린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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