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자몽

by 박민아



한수희 작가님의 책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에는 <맥시 팬티의 신세계>라는 글이 있다. 그 글은 이런 문장으로 시작한다.


경고: 이 글에는 ‘팬티’라는 단어가 지나치게 많이 등장합니다.


얼마나 팬티가 자주 나오기에 그런 것일까. 재미있게 읽은 그 글 속에는 실제로 아주 많은 팬티가 있었다. 나도 비슷한 안내문으로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이 글에는 자몽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합니다. 그러나 자몽이 아닌 다른 것을 넣어도 우리는 서로의 뜻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자몽을 넣어 읽어주세요.


제육 볶음과 닭강정, 삼겹살과 북엇국.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이 음식을 아주 사랑하는 이가 있다. 바로 남편이다. 식사 준비로 고민할 때 4가지 중 한 개만 포함해도 그의 함박웃음을 볼 수 있다. 이렇듯 둥글둥글한 입맛의 남편이지만 용납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자몽이다.


연애 시절부터 자몽 주스를 고르는 나더러 그건 도대체 무슨 맛으로 먹냐며 혀를 내두르던 사람. 그의 미각 체계에서 자몽은 과일에 속할 수 없을 정도로 썼다. 과일은 대체로 달콤한 맛으로 먹는 것인데 쓴맛뿐인 자몽을 어떤 즐거움으로 먹냐는 것이다. 자몽의 미덕은 그 적당한 쓴맛에 있다고 설명해보아도 소용없었다. 그가 자몽을 싫어하는 이유가 곧 내가 그것을 좋아하는 이유였으므로 설득은 불가능했다. 절대 타협할 수 없는 지점은 거기서 시작되는지도 모르겠다. 생각이 너무 똑같아도 문제다. 우리는 자몽에 있어서만큼은 평행선 같았다.


그런 이유로 우리는 함께 먹을 케이크나 빙수를 고를 때 자몽은 제외했다. 우리의 자몽이 아니라 각자의 자몽으로 둔 것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자몽은 무엇일까 문득 궁금해진다. 자몽 대신 무엇을 넣어 읽고 있을까.


그와 나 사이에는 자몽과 같은 몇 가지가 더 있다. 우리는 좋아하는 치약이 달라 두 개의 치약을 구비해 둔다. 나는 시린 이 치약을 쓰고, 그는 죽염 치약을 쓴다. 이가 시리지 않았더라도 죽염 치약은 쓰지 않을 것이다. 나는 죽염 치약이 싫기 때문이다. 남편이 끝내 자몽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처럼 나 역시 죽염 치약에서만큼은 절대로 양보할 수 없다.


서로 다름을 인정해야 성숙한 인간이라고 한다. 말은 참 쉽다. 우리가 왜 싸우겠는가. 옳다고 믿는 일이 상대에게 어림없다는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일은 정말로 어렵기 때문이다.



자몽이나 치약의 취향이 다른 것은 비교적 쉽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넉넉하지 않지만) 돈을 조금 더 쓰면 되니까. 두 종류의 치약을 사두면 되고 디저트는 1인 1 메뉴로 주문하면 된다. 그러나 만약 이사 갈 집을 고르는 문제에 있어서 우리의 의견이 다르다면? 자녀 계획이나 돈 문제에 대한 의견은? 어쩌면 치약 따로 쓰는 정도는 감사하게 여겨야 할 것이다.


결혼 3년 차. 아직 경험해야 할 삶의 고단함이 많이 남아있는 지금의 우리는 ‘하지 않을 권리’를 나눠 갖기로 한다. 같은 것을 좋아하고 나누는 것의 연대 만큼이나 각자가 싫어하는 것을 존중받는다는 안온함이 우리 사이를 더욱더 끈끈하게 만들어줄 테니까.


여전히 함께하고픈 것이 많다. 그러나 함께는 둘째치고 절대 하고 싶지 않은 일도 있다. 그런 일을 몇 가지 가지고 사는 게 나 혼자가 아니기에 외롭지 않다. 나만의 세계가 아주 적당히 당신의 세계와 교집합을 이루고 있다. 그 교집합이 있기에 우리는 우리가 완벽히 포개어지는 것보다 더 넓은 세계를 갖는다. 하나처럼 똑같을 필요가 없는 이유일 것이다.


근데 자몽은 진짜 한 번 제대로 먹어봤으면 좋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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