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아리에 누룽지 백숙이 나왔다. 태어나 처음 뵙는 두 분을 마주한 자리. 시부모님께 처음 인사드리기로 한 날이었고, 두 분과 가족이 되리라는 것을 확인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앞에 놓인 내 몫의 항아리를 본다. 노릇 노릇한 누룽지를 덮은, 거대한 백숙. 평소 같으면 깍두기와 겉절이를 곁들여 순식간에 해치웠을 양이지만 차마 그럴 수 없었다. 먹는 것 말고도 할 일이 참 많았으므로. 잘 웃고 싶었고, 잘 듣고 또박또박 대답하고 싶었다. 바르게 앉아 깔끔하게 먹는 것도 잊지 말아야지. 어설픈 젓가락질로 살을 발라내는 것도, 때마다 호호 불며 식히는 일도 잊지 않아야 했다.
식욕이 생길 틈이 있었겠는가. 나는 그저 누룽지만 떠 올려 입으로 가져갈 뿐이었다. 반찬이 담긴 접시는 왜 이렇게 멀게 느껴지는지. 깍두기를 먹고 싶어 팔을 뻗었을 뿐인데 테이블 위에서 춤이라도 추는 기분이다. 결국 누룽지도, 닭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식사가 끝났다.
지금 생각하면 시종일관 따뜻하게 봐주셨던 시부모님의 배려에 비해 나의 긴장은 과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어쩌랴. 예쁘게 보이고 싶고 잘 보이고 싶은 나는, 두 분의 배려를 알아차릴 만큼 침착하지 못했던 것을.
그 이후로도 두 분 앞에서 밥 먹는 일이 쉽지 않았다. 내어주신 반찬이 맛있어도 평소 습관대로 뒤적거리게 될까 금방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더 먹겠다고 말씀드렸다가 남기는 실수를 범할까 봐 모자란 듯 먹기를 여러 번. 아무도 모른 채 나 혼자만 어려웠던 몇 번의 식사 자리가 지나고 바야흐로 첫 명절이 다가왔다. 결혼하고 처음으로 맞이하는 명절, 설날이었다.
나는 떡국을 좋아한다.
1월 1일, 설날 말고도 떡국 먹을 날은 많다는 주의다. 점심 메뉴로 굳이 떡국을 먹기도 한다. 만두는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된다. 대신 소고기와 김 가루는 언제나 듬뿍. 떡국 한 숟가락에 김치 한 젓가락을 원칙으로 한다. 나트륨과 탄수화물의 환상적인 콜라보레이션.
다 먹고 난 국물에 밥을 마는 사람도 있지만 난 즐기지 않는다. 국물과 함께 끓인 떡은 고깃 국물의 감칠맛을 적당히 머금고 있지만 밥을 말면 좀 싱거워진다. 한 30분 정도는 이런 궤변을 늘어놓을 수 있을 정도로 떡국을 좋아하니 설날 먹거리 중 가장 기대되는 것은 언제나 떡국인데.
첫 명절의 나는 그럴 여유가 없다.
시댁에서 하룻밤 자야 하는데 화장품 몇 개를 두고 왔다. 멀끔하게 인사드리고 싶은 내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게다가 늦지 않게 일어나 준비하려면 한 치의 오차 없이 움직여야 한다. 묘하게 비장한 마음으로 잠들고 일어난 아침, 입맛이 없어도 이렇게 없을 수 있나 싶게 입이 텁텁했다.
혼자 조용히 이렇게 읊조렸다. 아, 오늘 컨디션 망했다.
그때 내 코를 휘감던 행복의 냄새. 그것은 구수하고 달큰한 소고기 육수 냄새가 틀림없다. 고명으로 올릴 고기와 계란 지단도 정갈하게 담겨있었다. 어머님 스타일의 깔끔한 떡국. 물 한 모금도 못 마실 것 같더니 금세 군침이 돌았다. 나는 배가 고팠다.
누룽지 백숙을 앞에 두고 우왕좌왕하던 예전의 내가 아니다. 멀리 있는 김치도 과감하게 턱턱 집었고, 손바닥만 한 만두도 입에 왕- 넣는다. 숟가락에 떡을 두 개씩 올려 한입 가득 먹었고, 따로 만들어주신 지단과 고기 고명도 싹싹 긁어먹는다. 그리고 용기 있게 목소리를 낸다.
어머님 떡국 더 먹을 수 있을까요?
나는 엄마의 음식을 33년 동안 먹고 마시며 자랐다. 그때마다 다른 맛이긴 했으나 항상 맛있는 김치찌개와 닭볶음탕, 제육볶음을 수천 번 먹었다. 내년 김장철에도 언제나처럼 굴이 잔뜩 들어간 엄마표 보쌈을 먹게 될 것이다. 엄마는 영 번거롭다고 해도 나는 모른척할 생각이다. 엄마 보쌈 없이 어떻게 김장철을 난단 말인가.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 내 아이에게 엄마의 레시피대로 음식을 해주게 되겠지. 그런 게 가족이니까.
이제 나는 어머님의 떡국을 먹으며 나이를 먹어갈 것이다. 2017년 12월 2일을 기점으로 어머님과 나의 역사는 시작되었으므로. 어머님의 떡국은 새해가 왔다는 것을 알리는 또 하나의 신호가 될 것이다. 내년 설에도 일어나자마자 부엌으로 뛰어가면 어머님 스타일로 재운 고기 고명과 뽀얗게 우러난 육수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 역시 국물까지 싹싹 비울 자신이 있다.
가족이 무엇일까 생각한 적이 있다. 남편이 평생을 함께해온 가족과 빨리 살가운 사이가 되고 싶었던 마음에 조급했던 날도 있었다. 2년이 조금 넘는 시간을 보낸 지금에야 어렴풋하게 알 것 같다. 어머님 머릿속에 아버님과 두 아들의 음식 취향이 저장되어 있듯, 내가 어머님의 떡국을 좋아한다는 사실도 기억되리라는 것. 나와 어머님 사이에는 함께 보낼 수많은 설날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사실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 된다는 것. 이것이 내가 어머님과 가족이 되었다는 뜻일 거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