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 열풍에 고마운 점

by 박민아


국제 정세에 무지한 내가 (부끄럽다. 올해는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 빼놓지 않고 보는 뉴스가 있다면 그것은 홍콩발 소식이다. 나에게는 10년 지기 홍콩인 친구들이 있기 때문이다. 10년 전 쓸쓸한 유럽 땅에서 나를 구원해준 은인.


절절하게 후회했다. 캐리어 가득 참치 캔과 김치를 싸오지 않은 나의 오만함을. 80일 간 현지 음식만으로 버틸 수 있을 거라 과신한 것도 문제였으나 레스토랑은 겁이나 들어가지도 못하고 매일 만만한 샌드위치만 찾아나선 작은 배포도 죄라면 죄다.


당시 유럽은 끝내주게 추웠다. 5월 중순을 바라보는 날에도 매일 비가 왔고 바람이 불었고 하여간 엄청 추웠다. 아이슬란드 화산 폭발로 인해 유럽 전역이 이상 기후에 시달린 탓이었다. 이상 기온과 김치가 무슨 상관이냐고? 모르는 소리 마라. 김치는 만병 통치 약이다. 타국에서 샌드위치만 먹던 사람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사실 김치가 아니어도 상관없다. 적어도 매콤하기만 하다면. 조국의 맛과 향이 사무치게 그립던 어느 날 그들을 만났다.


로테르담의 한 호스텔이었다. 체크인할 때 동양 사람은 분명 나 혼자였는데 하루 종일 비바람을 맞고 돌아오니 흑발의 학생 두 명이 짐을 풀고 있었다. 반가움을 애써 숨긴 채 묵묵히 그러나 그들을 무척 의식하며 짐을 정리하고 있는데, 천사 같은 그들이 나를 부르는 것이 아닌가. 그들의 이름은 조안과 맨디.


“어디서 왔어? 우리는 홍콩에서 왔어.”

“오, 반가워. 나는 한국에서 왔어. South Korea” (다들 그걸 궁금해했다. 북인지 남인지)

“정말? 잘 됐다!”


뭐가 잘되었다는 걸까? 속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뒤이어 믿기지 않는 말을 하는 것 아닌가.


“이 근처에 한식당을 찾아 두었는데 같이 갈래? 어떤 음식이 맛있는지 모르니 네가 추천해줘.”

“????? 한식당을 간다고? 이 근처에 있다고?”


당시에는 그들을 따라가기 바빠 상호명이 무엇이었는지 몰랐으나 이 글을 쓰기 위해 다시 찾아보니 그곳의 이름은 가마솥. (Gamasot). 작명 한 번 기가 막히다. 그들은 이 상호를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혹시 우리가 그것을 소재로 대화를 나눴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여튼 나는 그들을 따라 걸으며 비현실적인 이 상황을 잊지 않으려 계속 되뇌었다. 잊지마. 이거 정말 극적인 상황이야. 이런 일이야 말로 여행의 낭만이야.


나는 엉망인 영어 실력으로 의기양양하게 메뉴를 설명 했고 식사가 나온 후엔 주로 한국 드라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들은 드라마를 통해 한식에 대해 관심이 생겼다고 했다. 이러니 내가 한류에 고맙지 않을 수가 있나. K-culture 만세! 한류가 없었더라면 그들은 한식당을 찾아보지도 않았을 거야. 그럼 난 혼자 또 샌드위치를 우적우적 씹으며 괴로워했겠지.


음식도 정말 맛있었다. 이렇게 간단히 표현하고 싶지 않지만 무엇을 더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흰 쌀밥 위에 고소하게 무친 나물과 반숙 계란 프라이가 올라가 있는 비빔밥. 새빨간 고추장을 잔뜩 넣고 쓱쓱 비빈 비빔밥. 한국에서 “비빔밥 하나 주세요.” 라고 하면 나오는 딱 그 상태. 쌀밥을 입에 넣는 순간 달큰함에 한 번, 감칠맛 잔뜩 품은 고추장 맛에 또 한 번 감탄했다. 한국에서 먹는 것보다 더 맛있을 필요도 없었다. 고추장만 퍼먹었더라도 난 행복했을 테니까. 그러나 애석하게도 더 맛있었다. 유럽에서 먹는 한식 형편없다고 한 사람 나와.


여행에서 만난 인연이 늘 그렇듯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는 법. 그들에게 작별 인사를 건네며 으레 이것이 마지막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시 만날 수 있겠어? 그냥 쿨하게 서로의 길을 가는 게 더 멋있는 거야. 우리는 홍콩과 한국으로 각각 돌아가야 할 테니까.


그러나 우리의 관계는 끊어질 듯 끊어질 듯 이어지고 있었다.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지 2년 정도 지나서 였을까? 한국으로 가족 여행을 오게 되었다는 조안의 연락을 시작으로 우리는 한국과 홍콩을 오가며 벌써 10년의 시간을 함께 하고 있다. 쿨하지 않을지 몰라도 소중한 건 분명하다.


대학생이던 조안, 맨디 그리고 나. 이제는 각자의 가족과 남자친구까지 함께다. 몇 년 전 봄에는 여섯이서 함께 홍콩 시내를 쏘다녔다. 기이하고 귀한 인연이 아마 한 동안은 계속될 것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실감했다. 홍콩의 밤을 보며 난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이것 참 이상하다고. 우리를 이토록 묶어두는 것은 무엇일까. 서로의 결혼과 생일과 새해와 나라의 안부를 묻는 이 마음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기념품으로 보내준 첫 책을, 구글 번역기로 한 줄 한 줄 읽었다는 조안의 메시지를 받았다. 이 아이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진짜로 나를 대하고 있다. 비빔밥과 식혜 한 번 같이 먹은 것치고 10년 간 받아온 것이 참 많다.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의 마음보다 강한 건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마음 앞에서는 쿨하고 멋있는 건 다 가짜가 된다.


영어가 서툰 나를 데리고 식당에 가는 것보다 둘이 가는 게 훨씬 편하고 좋았을 것이다. 효율적으로 따지자면 그렇다. 로테르담에서 한식당을 찾아낸 아이들이니 못할 게 없었을 테니까. 그럼에도 나에게 손 내밀어준 정다운 마음으로 인해 이 인연이 시작되었다. 모든 공을 그들에게 돌린다. 무엇보다 메뉴 고르는 센스가 탁월한 아이들의 재능에 박수를 보낸다.


홍콩 시위가 커진다는 뉴스를 보고서, 세계를 혼란에 빠트린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늘 조안과 맨디를 생각한다. 그들과 그들의 가족이 부디 안전하고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을 더해서. 자신이 홍콩인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하는 그들을 위해서. 지금 내가 보낼 수 있는 것은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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