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못 끓이는 남자

by 박민아


“라면 먹을 래요?”


대사 한 번 정말 좋다. 우동 먹을 래요? 김치볶음밥 먹을 래요? 고등어 김치찜 먹을 래요? 김밥 먹을 래요? 미역국 먹을 래요? 갈비찜 먹을 래요? 족발 먹을 래요? 짜파게티 먹을 래요? 뭐 하여간 먹고 갈 수 있는 게 세상에 이렇게나 많은데 라면이라니. 어떻게 이런 대사를 생각해냈지 싶어 허진호 감독의 인터뷰를 찾아보니 원래 그 대사는 “커피 마실 래요?” 였다고 한다.


남자가 카페인에 약하다면 어땠을까? 그런 이유로 “어우 내일 일찍 일어나야 해서 커피는 좀 그런데요.” 라고 대답했을 수도 있다. 그는 조금 싱거운 남자니까. 게다가 야심한 밤에 운전까지 한 남자가 아닌가. 배가 많이 고플 것이다. 그가 다이어트 중인 사람이 아닌 것도 참 다행이지. “저 원래 6시 이후에는 금식해요. 간헐적 단식이라고 아세요?”라고 했어 봐. 정나미 떨어진다. 다이어트는 하여간 로맨틱한 구석이 하나도 없다.


그러다 문득 생각해보았다. 남편이 나에게 “라면 먹고 갈래?” 라고 물어봤다면? 그리고 내가 그 라면을 먹었다면? 사랑도 사랑이지만 라면은 라면이다. 사랑이 모든 걸 해결해 줄 수는 없지. 사랑하지만 라면은 맛있게 먹고 싶다. 그런 이유로 다시는 그 집에 가지 않았을 것이다. 남편은 라면을 참, 못 끓인다.


나에게도 라면을 맛있게 끓이는 비법이 있는 건 아니다. 라면은 기본만 잘 지키면 얼마든지 맛있다. 필요한 게 있다면 맛있는 라면을 먹고 싶다는 마음 정도. 야채 스프는 꼭 넣고 때로 파나 고춧가루를 넣기도 한다. 면은 꼬들꼬들 하지도 않지만 퍼지지 않도록 적당히 익혀 먹는 것이 좋다. 계란은 넣되 가급적 풀지 않는다. 국물은 국물 대로, 계란은 계란 대로 먹고 싶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라면에서 제일 중요한 건 물의 양과 면발을 넣는 타이밍. 물이 끓기 전 면발을 넣는 것은 죄악이다. 한강물 같은 국물 역시 참을 수 없다. 그런데 그런 죄악을 일삼는 사람이 슬프게도 내 남편이다. 내가 그의 라면 제안에 응할 수 없는 이유다.


남편의 문제는 물 조절이다. 야채 스프를 넣지 않는 것까지는 용납할 수 있지만 물의 양은 정말 받아 들이기 힘들다. 남편은 넣어야 하는 양의 반만 넣고 라면을 끓이기 시작한다. 면이 다 익을 때쯤이면 물은 더 줄어 있다. (당연히 그렇지) 그러면 불을 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부분은 이 다음부터. 그는 다 된 라면에 물을 흥건하게 붓는다. 조금만 신경 써서 따뜻한 물을 부으면 다행이지만 그럴 리 없다. 그야말로 장마철 잠수교를 뒤덮는 한강물이 딱 이럴 것이다.


저렇게 넣을 물을 애초에 냄비에 넣고 끓였다면 어땠을까? 남편의 주장은 늘 같다. 라면 물 맞추는 건 애초에 힘든 일이니 적게 넣고 끓인 후 물을 더 넣으면 된다는 주의. 내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사고방식이다. 왜 저렇게 끓일 수 밖에 없는 걸까? 물을 맞추는 방법을 조금 더 고민해보는 건 왜 안될까? 게임할 때나 서랍장 조립할 때는 누구보다 똑똑한 사람이잖아. 게다가 이건 라면이잖아. 어서 힘을 내! 제발!


무라카미 하루키가 그랬다고 한다. 단순한 차원의 얘기를 새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좋지 않다고. 장미를 좋아하는 사람은 정열적이라거나 개를 좋아하는 사람은 성격이 밝다거나 하는 식의 생각. 그냥 장미를 좋아하고 개를 좋아하는 것뿐이라고. 어제까지는 이 말에 동의했으나 오늘 만큼은 저항하고 싶다.


정말 그게 다 인가요? 맛없는 라면을 고집하는 일만큼은 다른 속뜻이 있는 건 아닐까요? 금방 고칠 수 있는 문제를 무슨 이유에서인지 고치지 않고 고수하는 것 말이에요. 반골 기질인 건가. 문제라고 생각하지도 않는 것일까? 무엇이든 지금 내 눈에 그는, 아무리 알려줘도 수용하려 하지 않는 라면 계의 흥선대원군이다.



영화 속 여자가 라면을 잘 끓이던가? 남자가 라면 먹는 장면이 나오던가? 기억이 나지 않아 영화를 다시 찾아보았다. 여자는 면발을 반으로 쪼개는 구나. 냄비에 면을 넣다 말고 생라면을 바삭 하고 씹네. 라면에 대해서는 이것이 영화에 나온 전부다. 하긴 다 끓여진 라면이 어떤지 궁금해하는 사람도 별로 없을 거야. 둘이 어떻게 된 건지 그게 더 중요한 거니까. 라면 맛이 어떻든 그는 잠까지 자고 갔다.


그를 이해하고 싶다. 이 노력이 어디에 쓸모 있을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는 자신의 라면이 형편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개선 의지가 없는 것을 보면 맛없는 라면이라도 상관없는 모양이다. 아님 라면 정도는 대충 어떻게 되든 신경 쓰고 싶지 않은 것일까?


남편의 문제는 물 조절이라고 했었다. 정정한다. 그의 문제는, 맛있는 라면을 먹고 싶다는 마음이 없다는 것에 있다. 그랬다. 꼭 맛있게 먹고 싶다는 생각이 필요한 건 아닐지도 모르겠다. 라면보다 다른 게 더 중요한 사람에게는 더더욱. 잘 끓인 라면만이 맛있는 라면의 유일한 방법은 아닐 것이다. 이거면 그를 이해할 수 있겠다 싶다. 앞으로도 내 라면은 내가 끓여 먹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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