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 남자 네 분 테이블에 편육 떨어졌네요?”
“세 분, 두 분, 네 분 각각 상 차려 주세요.”
손님의 요구를 누구보다 빠르게 파악하는 이분들은 나의 고모들이다. 우리 큰 고모로 말할 것 같으면 30년 넘게 큰 갈빗집을 운영하신 자영업의 대모 같은 분이다. 할머니 생각에 눈시울을 붉히시면서도 손님상에 술 떨어진 것은 금세 알아채는 눈썰미, 밀려드는 손님에도 당황하지 않는 배포는 다 그 세월에서 나온 것이다. 나는 그런 고모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이따금 웃음이 나왔다. 어쩌면 이런 모습이야말로 영정 너머 할머니가 가장 바라는 모습일 것만 같아서.
초상집 안에 있으면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가늠하기 어렵다. 모두가 현재에 있는듯 해도 고인이 살아 있던 시절로 자주 다녀오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기이하게 흐르는 사이에도 밥때는 어김없이 찾아온다.
입맛이 없는 아이도 잠에서 덜 깬 아이도 밥은 반드시 먹어야 한다. 마치 아이들의 끼니가 어른들의 숙명처럼 느껴진다. 혹은 돌아가신 할머니의 지령이라도 받으신 것일까. 내 손주들 굶길 생각 마라! 이런 목소리라도 듣고 계신 건가. 어떤 이유에서건 제때 먹지 않으면 다음 끼니때까지 밥 먹으라는 어른들의 채근을 들어야 한다. 나 역시 엄마의 등쌀에 밥상에 앉는다. 수육이나 꿀떡, 진미채처럼 맛있는 반찬만 차려 둔다. 밥 생각이 전혀 없던 아이들도 배부를 때까지 밥을 먹는다.
내가 기억하는 할머니 장례식장은 시종일관 그랬다. 슬픔이 발목까지 찰랑하게 채워져 있으나 우리는 그 위를 저벅저벅 잘도 걸어 다녔다. 때로 뛰기도 했다. 그러나 누구도 슬퍼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양말은 항상 젖어있다.
장례를 치르고 출근해서는 밀린 일을 하느라 밤을 새웠다. 며칠 간의 기이한 날들이 무색하게 현실로 돌아온 나는 바쁘고 바빴다. 여러 이유로 할머니를 다시 뵐 수 없다는 슬픔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나는 할머니 없이도 서른 살이 되었고 결혼도 했다. 이따금 궁금해졌다. 할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은 무엇일까. 내가 느낄 수 있는 감정일까. 어쩌면 내가 영영 느끼지 못할 마음은 아닐까. 그런 건 갖고 싶다고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이런 기억도 그리움이 될 수 있을까. 새벽까지 놀다가 잠들었는데 아침 9시면 어김없이 방문을 두드리셨던 할머니. 아침을 거르면 하루종일 속을 끓이시고는 다음 날도 꼭 같은 시간에 깨우러 오셨던 할머니. 끼니를 거를 때마다 나의 작은 키를 늘 아쉬워하셨던 할머니. 문밖에서 들리는 할머니의 목소리를 모른 척한 날이 있었다. 철없는 손주였지만, 이런 마음도 그리움이라고 할 수 있을지 고민하던 무렵.
부모님을 모시고 남편과 삼계탕을 먹으러 갔다. 뭐든 야무지게 먹는 남편은 닭 뼈를 공룡 발굴하듯 발라 먹었다. 엄마는 엄마 몫의 닭고기를 남편 앞 접시에 옮겼다. 맛있게 잘 먹는 남편을 좋아하는 우리 엄마. 나는 그 모습을 보다가 문득 할머니를 떠올렸다. 정말 뜬금없는 타이밍이었다. 그러다가 할머니가 그리워졌다. 눈물이 자꾸 차올랐다.
지금은 살이 올라 다이어트를 해야 할 지경인 손주와 닭 뼈에 붙은 살 한 점 남기지 않고 발라 먹는 손주 사위를 보시면 얼마나 좋아 하실까. 뭐든 잘 먹고 잘 웃는 손주 내외를 보셨더라면. 딱 5년만 더 살아계셨더라면. 그랬더라면. 그때 알았다. 이 마음으로 아빠가 종종 우시는 구나. 그런 마음이셨구나.
이제야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슬프다. 못된 손주로 보일지 모르겠지만 이제야 제대로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할머니가 살아 계시면 좋겠다.
늦어서 죄송해요. 할머니 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