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 회사 일로 얼굴을 붉히다가도 퇴근하면 훌훌 털어버리는 어른이 되고 싶다. 괴로운 마음이 드는 날이면 더욱더 그렇다. 고민과 분노와 울분을 집까지 들고 오지 않는 사람이고 싶은데 쉽지 않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모습은 내가 가진 가장 흉한 모습이다. 괴물이 된다. 사람이 미워지면 나는 또 좋은 어른을 떠올린다.
누군가 그런 말을 했다. 멋지게 늙는다는 것은 멋졌던 사람이 나이 드는 일처럼 자연스러운 거라고. 따로 방법이 있는 건 아니라고 말이다. 좋은 어른도 마찬가지다. 좋은 사람이 나이 먹고 어른 소리 들을 때가 되면 자연스레 좋은 어른이 되어있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좋은 어른이 되고 싶기에 생각해본다. 좋은 어른이 되면 지금의 괴로움은 나아지는 걸까? 아니지, 좋은 어른은 애초에 괴롭지 않을지도 몰라.
스포츠 선수들이 운동 능력을 끌어올려야 할 때 쓰는 방법 중 하나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 어려운 상대보다는 쉽게 이길 수 있는 상대와 연습하거나 간단한 게임으로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쉬운 동작을 여러 번 성공하고 나면 성취감이 빠르게 쌓여 시합에서 큰 에너지를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나에게도 필요한 일이다.
복잡하게 생각하기 싫다. 간단히 쉽고 빠르게 행복해지고 싶다.
편의점에 간다. 불 앞에 서서 찌개 끓일 기력도, 더 나은 것을 생각할 기운도 없었으므로. 그곳은 언제나처럼 밝고 경쾌하다. 형형색색의 컵라면 앞에서 기분 좋아지는 곳. 컵라면만 고르는 친구에게 소시지는? 삼각김밥은? 되물을 수 있는 곳. 뜨거운 물만 있으면 된다. 그거면 충분하다.
불닭 볶음 삼각김밥과 왕뚜껑, 죠스 떡볶이와 간장 게장맛 삼각김밥, 과자 몇 개를 집어 편의점 앞 테이블에 자리 잡는다. 행인들이 내 모습을 기웃거린다. 테이블은 수평이 맞지 않는지 삐걱 거리고 전임자의 흔적이 군데군데 남아있다. 아늑한 것과는 거리가 멀지만 먹는 것에만 집중하다 보면 나를 성가시게 했던 것들은 금방 휘발되어 버리는 곳. 여름밤, 편의점, 컵라면. 이 키워드만으로도 금세 기분이 나아진다.
왕뚜껑의 얇고 가벼운 면과 그 면이 끌어올린 국물이 입안으로 들어온다. 왕뚜껑이 원래 이렇게 맛있던가. 육개장과 신라면 사이에서 고민하며 왕뚜껑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던 시간이 떠오른다. 육개장처럼 달지는 않고 신라면처럼 과하게 맵지 않아 모든 것이 적당하다.
두어 번 먹으면 없겠는데 싶은 양이 아쉽지만 아무렴 어떠냐. 나에게는 삼각김밥이 있다. 한입 베어 문 면발이 목젖에 거의 도달했을 때쯤 삼각김밥을 한입 문다. 입속에서 잠시 라면과 김밥이 공존하고 불닭 볶음 삼각김밥의 매운 맛이 입을 감싼다. 인중에 땀이 슬 차오른다. 오물 오물 씹다 보면 편의점 쌀밥 특유의 찬 기운이 느껴지는 순간이 온다. 그럴 때 왕뚜껑 국물을 다시 한 모금. 뜨끈한 국물로 모자란 온기를 채운다. 은근한 것은 하나도 없다. 모든 것이 선명하고 즉각적이다. 애쓰지 않아도 얻어지는 경쾌하고 확실한 맛의 감각이 나를 흔들어 깨운다.
어른은 편의점 음식을 싫어한다. 좋은 어른이라면 어떨까? 왠지 좋은 어른은 무언가를 싫어하지도 않지만 격하게 좋아하지도 않을 것 같다. 컵라면과 삼각김밥으로 순식간에 치유되어버린 나의 마음은, 좋은 어른이 되는 데에 방해가 될지도 모르겠다. 이건 해결보다는 회피에 가까울 것이니까. 그렇지만 좋은 어른도 밥 먹을 때만큼은 내키는 대로 해도 된다는 데에는 동의할 것이다.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고 하지 않는가. 물론 그런 마음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다. 다시금 전장으로 나가야겠지. 일단 과자는 다 먹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