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뎅의 행복

by 박민아


나는 그나마 나은 편에 속했다. 막내 작가로 살아가는 많은 동료에 비해서 말이다. 부모님 집에 살았고 내 돈으로 생필품을 살 필요 없었으며 그나마 집도 가까웠다. 약 7년 전 내 월급은 80만 원 정도. 어떤 이는 그 월급으로 월세를 내기도 했다.


아침 해가 뜨면 출근해 내일이 다가오는 것을 보며 집에 갔다. 그런데도 왜 이렇게 할 일이 많았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온종일 해도 일은 줄어들지 않고 심지어 다음 날이 되면 2배씩 늘어 있었다.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재미있는 일이란 돈 쓰는 것뿐. 밤새워 일하다 졸리면 인터넷 쇼핑. 그것도 지겨우면 편의점 쇼핑. 할증 요금을 내고 택시를 탔고 어쩌다 하루 쉬는 날이면 흥청망청 먹고 마셨다. 그렇게 해서 다가올 내일이 두렵지 않으면 좋으련만 그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초심자인 나는 서툴렀고 일은 많았고 하루는 24시간뿐이었다. 10년 뒤를 생각해 저금은커녕 내일조차 상상하기 어려웠던 날이 훨씬 많았다.


그날도 여느 날과 똑같았다. 옆 팀 동료가 방송 아이템을 턱턱 물어왔다. 그 옆의 나는 며칠째 아이템을 찾지 못해 대역 죄인 취급을 받고 있었다. 우스갯소리가 아니라 정말로 방송을 내보내지 못할 위기였다. 사람들은 매일 아침, 내게 인사 대신 이렇게 물었다. “아이템은?”


왜 같은 곳에 문의하고 열심히 찾고 있는데 나만 아이템이 없는 거야. 뭐가 문제인 거야. 나는 운이 없는 건가, 실력이 없는 건가. 둘 다 없으면 최악인데 지나고 보니 나는 둘 다 없었던 모양이다. 아이템 잘 찾던 옆 팀 동료는 아직 방송 작가로 일하고 있다. 그는 운도 있었지만, 실력도 있었다. 그런 그가 아직 방송 작가라 다행이다. 아님 다 없는 내가 진즉 그만둔 것이 다행인 걸까.


뻥 뚫린 가슴을 안고 텅 빈 여의도를 걸었다. 찬 바람에 코가 빨갛게 얼고 있을 때 김이 서린 포장마차가 보였다. 포장마차 안쪽에는 훈훈한 기운이 물방울이 되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늦은 시간까지 일하다 나와 몹시 배가 고팠다. 따끈한 어묵 하나 먹으면 딱 좋겠는데 싶어서.


“언니, 어묵 하나 먹을래요?”

“너 현금 있어? 나 없어.”


그렇지. 어묵은 현금으로 사 먹어야지. 그런데 나 현금이 없지. 이 언니는 PD고 나보다 월급도 많은 줄 알았더니 우리 똑같구나. 매달 들어온 월급은 카드 회사가 득달같이 가져가고 우리에게는 또다시 신용카드의 굴레만 남은 거구나. 우리는 여의도가 떠나가라 웃었다. 공교롭게도 한 달 뒤 나는 다른 프로그램으로 옮겼고 그러다 몇 개월 뒤에는 방송 일을 아예 그만뒀다. 오뎅 때문은 아니었지만.




어떤 예감이 들 때가 있다. 선명한 것이 늘 그렇듯 그것은 고약하게도 불편하다. 특히 뭔가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생각은 더더욱 그렇다. 얼마 전 직장을 그만둔 후, 어묵 하나 사 먹을 돈이 없었던 그해 겨울을 자주 생각했다. 그 겨울, 내가 느낀 예감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무엇이 두려워 방송 일을 그만둔 것일까. 그때의 이유를 알게 되면 지금 선택의 이유도 알 수 있을까?


지금에 와 떠올려보면, 나는 호흡이 자꾸만 짧아지는 것을 느꼈던 건 아닐까 싶다. 큰돈을 벌고 싶었던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놀고 싶었던 것도 아니었다. 나를 무섭게 만들었던 건 나의 짧은 숨. 긴 호흡으로 후후 – 걸어 나가고 싶은데 내 숨은 한 치도 못 가 금세 할딱거렸다. 월급날이 되어도 늘 텅 빈 지갑이나, 그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바로 잡을 기력조차 없는 정신 머리나 모두 그랬다. 나는 무언가에 쓸려가듯 살았다. 막 살았던 것이다.


언젠가 엄마가 그런 말을 해주신 적이 있다.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할 수 없을 때 쓸 비상금 정도는 꼭 있어야 해. 그게 큰 돈이 아니어도 말이야.” 돈을 어떻게 쓰든, 얼마나 벌든, 심지어 한 푼 안 버는 백수였을 때도 아무 말 없으시던 엄마의 말이라 나는 직감적으로 마음에 받아 적었다. 돈이 모든 걸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때로 안전한 마음 정도는 줄 수 있었다.


어묵 정도야 안 사 먹으면 그만이다. 지금은 꼭 지갑에 만 원짜리 한 장을 넣어두지만 길 가다 어묵 하나 먹고 싶은 날이 없다. 중요한 건 어묵이 아닐 것이다. 내 호흡이 조금은 길어졌다는 것. 이전보다 더 멀리, 더 오래 걸어 나갈 수 있다는 것. 지금의 내가 기록하고 싶은 건 그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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