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킹 없는 쿠킹 클래스

by 박민아

아파트 1층 게시판에서 본 광고. 노오븐 베이킹과 저칼로리 식단을 배울 수 있다는 강좌. 6주 간 수강료가 7만원인데 재료비가 포함 되어있다. 정말 저렴했다. 그 광고를 본지 1분 만에 쿠킹클래스 수강생이 되었다.


수업이 있는 날은 크리스마스 이브. 남편에게 수업 때 만든 음식으로 간단히 요기하고 저녁에는 외식을 하자고 이야기 해두었다. 준비물은 필요 없다는 강사님의 말이 있었지만 혹시 모르니 주머니에 앞치마를 하나 챙겼다.


수업 장소는 우리집 근처에 있는 아파트. 선생님을 포함한 5명의 인원이 조리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을지 생각하지 않은 것이 문제였을까. 아님 수강료 7만원으로 재료비까지 충당할 수 있는 것인지 의심하지 않았던 내 실수였을까. 아님 앞치마도 필요 없다, 조리한 음식을 담아갈 반찬 통도 필요 없다고 한 강사님의 말에 힌트가 있었던 걸까.


무엇이 시그널이었건 나는 읽지 못했다.

내가 도착한 곳은, 실은 쿠킹 없는 쿠킹클래스.


수강생의 자리에는 레시피가 쓰여진 종이가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재료도 없었고, 조리 기구도 없었다. 그리곤 강사님이 조리대에서 요리하는 모습을 지켜 보았다. 이러니 앞치마가 필요 없지. 만약 내가 앞치마를 꺼냈다면? 강사님과 내가 마주했을 그 당혹감이 온몸을 타고 소름으로 흘렀다. 으으.


그래 7만원이잖아. 재료 값도 포함인데 그럴만한 여력이 없는 게 당연해. 침착하게 상황 판단에 나선 내 앞에서 강사님은 7중 팬 소개를 시작했다. 이 7중 팬으로 말할 것 같으면요. 3중 팬과 5중 팬과 어떤 차이가 있냐면요. 드라마의 작위적인 PPL로 웃기는 개그 프로그램이 있지 않았나. 이별을 앞둔 연인이 슬픔 속에서도 최신 휴대폰의 셀카 기능을 사용하여 오늘을 기록하는 그런 장면.


나는 장난인 줄 알았다. 그러나 강사님의 표정은 진지했다. 딸기 타르트의 파이지를 반죽하던 강사님이 7중 팬의 위력과 효과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하는데 이거다 싶었다. 응 그렇구나. 이건 쿠킹 클래스가 아닐 뿐만 아니라 저 브랜드 판촉 행사였구나. 나는 지금 그런 곳에 와있는 거구나.


강사님은 멈추지 않았다. 아니, 더 거세게 몰아쳤다. 그는 파이지가 구워지는 40분 동안 토마토와 브로콜리를 들고 나와 세제 세정력 실험을 보여주었다. 깨끗해 보이는 방울 토마토를 플라스틱 통 안에 넣고 세제를 넣은 후 흔들어주면 구정물이 줄줄 나오는 것을, 나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는 동안에도 파이지는 7중 팬에서 잘 익고 있었다.


세제는 대단했고 나는 황망했다. 그제야 보였다. 거실부터 화장실까지 그곳은 매장이나 다름 없었다는 것을. 새 제품으로 보이는 물건들이 매장처럼 디스플레이 되어있었던 것 말이다. 강사님은 보았을까. 끊임없이 흔들리는 내 눈을. 우리 엄마보다 나이 많은 중년 여성들 사이에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앉아있는 나를?


밥 드실 분 있나요? 강사님은 밥통을 열어 쌀밥을 푸며 그렇게 말했다. 다른 수강생들은 손을 번쩍 들었다. “주세요. 오늘 아침도 못 먹고 왔네.” 나는 순식간에 분노했다. 내가 낸 7만원은 밥값이었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갑작스러운, 그러나 몹시 이상한 사건. 나는 얼떨결에 인생까지 되돌아보았다. 그간 너무 평온하게 살아온 걸까. 그래서 7만 원짜리 쿠킹 클래스 앞에 아무런 의심도 없었던 걸까. 수강료도 돌려받은 마당에 이런 회의가 과할지 몰라도 충격은 꽤 오래 이어졌다. 내 인생에 뭔가 경고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생각하면서.


수강료를 돌려 받은 건 다행인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요리를 배우고 싶었던 나도 있다. 진짜로 열심히 배워볼 생각이었던 마음이 누군가에게 놀림 당한 듯해 살짝 속이 쓰린 나도. 너무도 순진하게 꿈에 부풀었던 자신을 떠올리며 무안해 하는 나 역시. 그러나 별 수 없었지 않나. 요리는 배우고 싶은데 돈은 벌고 있지 않으니 선택의 기준은 가격이 될 수 밖에. 내 처지를 비관하지 않으려 노력하지 않는 나도 있다. 이런 문제에 까지 그런 걸 들먹이며 사는 게 피곤하니까.



그렇지만 이미 충분히 그래버렸네. 역시 피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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