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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하 Dec 10. 2023

일곱 살, 육신을 넘어선 사랑을 배웠다.




♣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의 육신을 초월해서 더 먼 곳까지 간다는 것이다. 사랑은 영적인 존재, 내적인 자아 안에서 더욱 깊은 의미를 갖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이 실제로 존재하든 존재하지 않았든, 아직 살았든 죽었든 그런 것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중  






나는 어쩌면 어릴 때부터 육신을 초월한 사랑을 지니고 다녔는지 모른다.

  

비가 많이 오던 날이었다.  야근을 마치고 새벽 늦게 들어온 아빠는 배가 고프셨 나보다. 새벽에 자고 있는 엄마를 깨우며 밥을 달라고 하셨으니 말이다. “새벽에 무슨 밥이야. 일단 자.” 새벽에 밥을 달라는 게 평소 아빠 답지 않았지만 엄마는 그냥 아빠를 재우셨다고 한다.  



그날 엄마와 나, 오빠는 아빠를 응급차에 실은 채 근처 병원으로 향했다. 그 후로 아빠의 육체는 일반 실, 중환자 실, 그리고 대학병원을 돌고 돌아 영영 우리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아빠의 육체를 담은 관이 불구덩이 속으로 들어가던 순간이 눈에 선하다. 오빠와 나는 친가 그리고 외가 식구들에게 반원으로 둘러 쌓였고, 가장 가까이 서서 그 장면을 지켜봤다. ‘어… 아빠, 거기 들어가면 뜨거울 거 같은데…….’라고 생각했다. 오빠와 나는 죽음이 뭔 지 몰랐기에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했다. 



우리에게 쓰러지듯 달려온 이모께서 울부짖으셨다. “지금 아빠한테 돌아오라고 소리 안치면 너희 아빠 영영 못 보는 거야.” 어린 나의 가슴팍에 퍽하고 달라붙은 말이었다. 그럼에도, 부끄러움이 많고 감정 표현하는 법을 몰랐던 나는 소리치지 못했다. 먹먹한 울부짖음이 내 마음속을 맴돌고 있을 뿐이었다. 



어린 내가 소리쳐 부르지 않아서였을까? 아빠는 정말 돌아오지 않으셨다. 우리 집 뒷산에 아빠로 이름 붙여진 한 줌의 뼛가루들이 소리 없이 흩날렸다. 아빠는 하늘의 별이, 그리고 내 마음속 별이 되셨다. 



아빠께서 돌아가신 뒤,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던 엄마께서 나에게 말했다. “재희야, 아빠는 이제 재희 마음속에서 사실 거야. 언제나 아빠랑 함께 있는 거야.”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머릿속엔 요술 램프 지니가 떠올랐다. 내가 부르면 언제든 아빠가 내 마음속에서 나오겠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내 마음속 지니는 절대 나오지 못한다는 것을 자연스레 알게 됐다. 



아빠께서 살아 계셨을 때, 나는 아빠의 양복에서 나는 향수 냄새보다, 엄마의 잠옷에서 나는 살 냄새가 더 좋았다. 그렇게, 아빠는 그 어떤 향수도 흉내 낼 수 없는 묵묵한 향으로 내 마음속 깊이 물들셨다.



그리움보다 더 오래도록 묵묵한 향을 자아내는 말이 있을까? 



내가 초등학교를 입학하던 날, 학교에서 상을 받은 날, 처음 교복을 입던 날, 처음 누군가와 사랑을 시작한 날, 그리고 세상이 너무 무서웠던 나날…… 아무리 많은 세월이 흘렀어도 아빠는 묵묵한 정취를 오래도록 자아내며 내 마음속을 떠나지 않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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