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구하기의 시작(1)
도착한지 보름이 채 되지 않았지만 언제 돈벌이를 시작할 지 모르고 앞으로 돈이 나갈 일만 남았다는 기약없는 생활에 나에게는 다운타운에서 2.75달러에 파는 피자 조각도 사치였다. 최대한 돈을 아끼고 아껴야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보금자리를 구했다는 것에 자축하며 사치를 부리려 Red fish Blue fish라는 유명한 피시앤칩스 맛집을 찾았다. 내가 여기서 일하면서 살려고 왔지만 여행자의 마인드를 잃지 않겠다며! 아침부터 뷰잉하며 되지도 않는 영어를 씨부리고 와서 피곤한 몸을 이끌고 기어코 피시앤칩스를 사먹었다.
갓 튀겨져 나온 포슬한 생서 튀김이 먼저 식욕을 자극했다.
'겉은 바삭한데 속은 부드럽다'라는 수식어가 딱 어울린다 생각이 들 정도로 맛이 좋았다. 이런 맛을 요즘은 존맛탱(JMT)이라고 표현한다지. 그 옆에 딸려 나온 코울슬로가 곁들어 느끼함을 싹 잡아준 덕분에 더더욱 나의 허기를 만족시켰다. 기분 좋게 그리고 음미하며 그 시간을 즐겼다. 바삭바삭했던 피시앤칩스와 짭짤하니 맛있었던 감자튀김의 맛, 중독성 강한 이 맛을 못 잊어 빅토리아에서 지내는 마지막 날까지도 나는 이곳을 찾았다고 한다.
주말을 즐기고 고난의 이사를 시작했다. 처음 캐나다에 도착한 그 날처럼 양손에 각각 무거운 캐리어와 쇼핑백을 하나씩 들고, 무거운 백팩을 매고 호스텔 체크아웃을 가까스레 끝내고 다시 다운타운 길 위에 섰다.
정말 다행히도 집주인 Kal이 숙소 근처로 픽업을 와줬다. 그리고 운적석 옆에는 그의 아내 Jiseon이 탑승해 있었다. 다소 왜소해 보이는 체구의 그녀, 검은색 머리와 검은색 눈동자, 동양인 외모가 눈에 가장 먼저 들어왔다. 너무나 유창한 영어 발음에 긴가민가했는데 역시나 한국인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아무리 한국어를 할줄 아는 자신이지만, 캐나다에 온 만큼 소통은 영어로만 하는 게 좋겠다고 딱 선을 그었다. 무언가 싸함을 감지했지만, 그저 좋은 게 좋은거겠지 싶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넘겼다. 그래, 그때는..그랬지.
처음 레쥬메를 뽑았던 날이 기억난다.
캐나다에서는 한글 프로그램이 열리지 않으니까 워드 프로그램으로 작성한 레쥬메. 그 레쥬메를 인쇄하러 Work BC 라는, 우리나라로 치면 직업소개소? 청년지원센터? 개념의 센터 도움을 받았다. 인쇄만 무료인줄 알았는데 뉴커머들을 대상으로 레쥬메 첨삭도 무료로 받아볼 수 있다고 해서 냅다 첨삭까지 받고 피드백 준대로 수정하고 덧붙이다 보니 나름 봐줄 만한 이력서가 하나 만들어졌다.
구인 공고를 보며, 구직활동을 시작하며 느낀 점은 캐나다는 캐나다에서의 경력을 많이 본다는 거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지만, 식음료업이나 의류매장 등의 서비스직의 경우 대부분 여기서의 경력을 우대한다는 멘트가 빠짐없이 나왔다. 이 말은 즉슨, 경력이 없는 워홀러라는 신분의 외국인 노동자는 영어능력이나 다른 외적인 걸 어필해야 하는데, 서류상으로 평가되는 온라인 지원으로는 한계점이 분명했다.
경력이나 영어실력과는 반비례적으로 뛰어난 나의 적극성과 성실성을 서류 쪼가리만으로도 알아채고 연락을 줄 신통력 있는(?) 사장님의 연락만 마냥 기다릴 수는 없었다.
차라리 직접 발품 팔러 다니는 게 더 빠르겠다는 게 내 나름대로의 결론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발품 팔기. 말 그대로 이력서를 뽑아 들고 무작정 다운타운을 뛰어다녔다. 처음에는 구인광고가 붙어있는 곳만 찾았지만 그런 곳은 극히 드물었다. 캐나다 오기 전에 들었던 수많은 워홀 경험담이 떠올랐다.
'무작정 두드려야 한다.'
심호흡을 크게 한번 하고는 구인광고도 붙어 있지 않던 첫 상점 문을 두드렸다.
- 안녕하세요. 저 일자리 찾고 있는데요...
- 아, 우리 지금은 사람을 구하지 않아요.
- 괜찮아요. 이력서만 나두고 가도 될까요?
- 네. 두고가세요.
막상 첫 레쥬메를 두고 나오니 별 거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이미 이곳엔 나와 같은 워홀러들이 수 백명, 아니 수 천명 들렀다 갔을 거다. 그러니 이건 민망한 일도 아니고, 용기냈다고 대단한 일도 아니다.
하지만 맘처럼 되지 않는게 현실이다.
손님인 것 마냥 매장 문을 열고 들어갔다가 쭈뼛쭈뼛대며 이력서를 내미는 것 자체가 굉장히 민망하고 손발 오그라드는 일이었다. 내가 표정 관리를 제대로 하고 있는 건지 갖가지 걱정들이 먼저 앞섰다. 두 번째, 세 번째 횟수가 늘어날수록 자신감이 붙긴 했지만, 대화가 길어질 수록 영어 실력의 한계가 느껴졌다.
이런 허술한 나에게 기회란 건 준 매장도 있었다.
David's tea라는 캐나다 대표 프리미엄 티 브랜드 매장인데, 사실 공식적인 인터뷰였기 보다는 그냥 관심을 보이며 스몰토크로 이어진 케이스였고, 나름 그 조차도 처음이었기에 긴장도 많이 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래도 첫날부터 얼마나 물어보겠냐며, 간단하게 자기소개 정도만 준비해 갔던 내게, 영어로 무언가 속사포처럼 질문을 쏟아내는 매니저에 1차 당황. 예상치 못한 관심에 뭐라 대꾸해야 할지 몰라 허둥거렸고, Thank you, sorry 따위의 말만 머릿속에 맴돌았다. 결정타로 '티 향에 대해 설명해라'는 말에 항복 선언. 나도 참. 평소 티를 즐겨 마시지도 않으면서 티 전문 매장에 들어왔으니.. 그 쉬운 질문에도 답하지 못하는 나를 보며 그들은 얼마나 어이없었을까. 하여튼 첫 스타트는 그렇게 아쉬움만 남은 채로 끝나버렸다.
처음에는 단순히 로컬카페나 레스토랑 위주로 이력서를 돌리다가, 어느 순간에는 이것저것 따질 때가 아닌 것 같아, 곧바로 다시 기념품 가게, 아이스크림 가게, 신발 가게, 옷 가게 등 가리지 않고 돌렸다. 누군 하루에 100장도 돌리고 그런다는 데, 나는 오늘 가져온 이력서 10개 돌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벅찼다. 처음 해보는 경험이라 몸이 많이 긴장했나 보다. 그래도 소득은 분명 있었다. 오늘의 경험을 통해 내일은 더 자신감 있는 모습으로 발품을 팔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
역시 새로운 것을 도전해보기까지가 어렵지,
일단 해보면 별거 아님을 알게 된다.
일단 시도해보면 내가 여태껏 보지 못했던
새로운 길이 보이는데 왜 매번 그 시작이 무서운 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