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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제시 Oct 10. 2022

1년만 살다올게요




나는 대도시보다는 소도시에 끌렸다. 


밴쿠버나 토론토를 가면 서울처럼 높은 빌딩들이 줄지어져 있는 반면에, 빅토리아는 높은 건물은 전혀 찾아보기 힘들 정도라는 이야기를 듣고, 빅토리아에 가고 싶어졌다. 빅토리아(Victoria) - 이름에서도 느껴지듯이 영국의 분위기가 짙은 도시라고 했다. 나는 원래 큰 것보다는 작은 것, 거창함보다는 소박함이 더 좋았고, 세련스러움보다는 인간다움이 좋았다. 또 흔함보다는 독특함이 좋다. 이런 이유로 내 캐나다 워킹홀리데이라는 긴 여정의 시작은 빅토리아에서 시작된다. 


빅토리아에 도착하기 전에는 도시를 여유롭게 구경하며 천천히 살 집이나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웬걸? 다운타운 자체가 작아도 너무 작아서 하루 만에 구경이 끝나버렸다. 애초 계획했던 것보다 훨씬 더 타이트한 초기 정착생활이 의도치 않게 시작돼버린 이유다. SIN넘버를 발급받고, bank acount은행계좌도 개설하고 핸드폰 통신사를 개설하는 데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 과정이었고, 둘째 날부터는 노트북을 챙겨 들고 숙소 근처 스타벅스에서 죽치고 앉아 장기간 거주할만한 집 정보들을 계속 살피고 다녔다.


Craigslist, Kijiji, homestayfinder 등 나름 믿을만한 사이트들을 위주로 올라오는 게시글을 틈틈이 보다가, 하루 이틀 뒤쯤부터는 홈스테이 매물만 집중적으로 팠다. 자취 경험도 전무한 나인지라 집을 알아볼 때 뭘 중요시 생각해야 하고 주의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잘 몰랐지만, 그냥 대충 한 달에 800불 정도에 아침부터 저녁까지 3끼 모두 제공되는 곳, 다운타운과 가깝고 이왕이면 가족들이 담배를 피우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도로 생각하고, 이 조건들이 맞는다 싶으면 죄다 메일을 뿌렸다. 





문제는 10통 이상의 메일을 뿌려도 어느 곳에서도 답변이 오지 않았다는 거다. 이와 관련해 각종 커뮤니티 카페를 통해 조언을 구했지만, 캐네디언 특유의 느긋하고 여유로운 생활 패턴 상 답이 늦게 오는 경우가 많으니 '기다려라'라는 답변이 대다수였다. 근데 아무리 여유를 가지고 기다리라 하지만, 정작 내가 그 상황이 되니, 슬슬 애가 타기 시작했다.


이대로 집을 구하지 못해 임시숙소로 연연하다 가져온 자금이 다 떨어져 한국에도 돌아가지 못하고 국제미아가 되면 어쩌지..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로 갖은 망상의 나래를 펼쳐나갈 때쯤, 다행히 한 곳의 집주인으로부터 연락을 받게 된다.


업타운 방향 N14 버스를 타고 도착한 주택가, 단 며칠이지만 다운타운 부근만 왔다 갔다 하던 나로서는 주택가 밀집 거주지의 풍경이 사뭇 다르게 다가왔다. 항상 관관객들과 현지인들로 가득 활기를 띠는 다운타운과 달리 Johnson street bridge 너머의 업타운은 비교적 한산하고 조용했다. 무성한 나무들 사이로 자전거를 타거나 조깅을 하는 사람들도 보이고, 개성 뚜렷한 주택가들이 양쪽에 쭉 들어서 있었다. 그 사이로 보이는 하늘색 페인트의 2층 집이 오늘의 목적지였다.



내가 두 달 반 동안 홈스테이 했던 방                                                                               



마치 미드의 한 세트장을 방불케 하는 넓은 거실과 적당한 크기의 부엌과 다이닝 테이블, 무엇보다 내 방 창문 너머로 보이는 뒷마당의 커다란 나무들과 미니 텃밭까지 모든 게 마음에 쏙 들었다. 그렇다, 나는 한번 이거다 싶으면 다른 건 눈에 안 들어오는 사람이었다. (금사빠 기질이 있는 게 틀림없다)


먼지 하나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청결하고, 과일과 신선한 야채들이 가득해 보였던 냉장고를 바라보며.. 그저 이게 외국이구나라고만 생각했고, 달에 800불이라는 비용이 조금 빡세다 느껴지긴 했지만 열심히 돈 벌어 살면 되지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제 호스텔 숙박 기간도 끝나가니 여러 조건이 맞아서 다른 집은 더 둘러보지 않고 바로 그 집과 계약을 했다. 2016년 4월 말의 어떤 날로 돌아간다면 저 홈스테이와 계약하려는 나를 뜯어말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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