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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제시 Oct 18. 2022

정류장 앞 삼성맨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혼잣말도 많아졌다. 아침잠이 많아지고, 남아도는 시간도 많아졌다. 여백이 더 많아진 느낌. 이 잠잠하고 심심한 여백을 어떻게 채워나갈지 생각하다, 갑자기 몹시 억울해졌다. 휴무 날 연락해서 놀만 한 외국인 친구가 하나도 없다니! 왜 굳이 '왜국인' 친구냐 한다면 '기껏 캐나다까지 왔는데'라는 생각이 컸던 것 같다.




그래서 바로 결심했다. 외국인 친구를 만들자고.


검색창에 '외국인 친구 사귀기'를 검색하자 낯익은 어플 이름이 주르륵 나왔고, 두세 개 골라 어플을 깔고, 내 프로필을 작성해서 올렸다. 작성하자마자 한국어 배우고 싶다, 같이 영어-한국어 언어교환 겸 친구로 지내자 등등 몇몇 사람들이 메시지를 보내오길래 이 정도로 한국의 위상이 높아진 건가, 한류 열풍의 영향인가 싶어 엄청 놀랐다.


그렇게 캐나다에 왜 와 있는 건지, 지내는 건 어떤지, 온 지 얼마 안 되었는데 영어를 잘한다든지 정말 사소하고 일반적인 내용으로 몇 차례 메시지를 더 주고받았고, 그중에 일하는 곳이 가까웠던 한 명이랑은 아예 약속을 정해 만나기도 했다. 그러나 첫 만남부터 남자 친구, 연애, 사랑 위주의 질문만 던져대는 그와의 대화에 지쳐갔고, 결국 참을 수 없어 그날을 끝으로 그와의 연락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그래도 삼세번이라고, 다른 사람들과 몇 번 더 컨택을 시도해봤지만, 내가 원하는 언어 교환이나 심심할 때 커피 마시며 수다 떨 수 있는 관계보다는 데이트 느낌으로 만남을 제안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이쯤 되자 내가 동양인 여자라서 그런 연락들만 오는 건가 싶어서 화가 나기 시작했고, 어플에 대한 불신도 강해져 계정까지 싹 다 지워버리고, 그냥 하던 일이나 열심히 하고 영어공부에나 집중하자 다짐했다.






그러던 어느 날, Oh Gelato 마감이 좀 늦어지면서 타야 할 버스를 놓쳐 막차 버스까지 30분 이상을 기다려야 했던 날이었다. 어두침침한 다운타운 거리를 바라보며 혼자 정류장 벤치에서 이어폰을 끼고 앉아 음악을 한참 감상 중이었는데, 순간 옆에서 인기척이 느껴져 고개를 돌려보니 한 젊은 남자가 내 쪽을 향해 뭐라고 말을 걸고 있었다. 혹시 나 말고 다른 사람이 있나 싶어 뒤를 돌아봐도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나한테 말을 건 게 분명한 것 같아 보여, 이어폰을 빼고 그를 쳐다보니, "Can I sit here? - 여기 앉아도 되지?" 하며 자연스레 옆자리에 앉는 게 아닌가. '뭐지?' 당황하며 핸드폰을 손에 꽉 쥐었다. 혹시 모르는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내 나름의 소심한 경계였다.


자꾸만 머릿속에 이상한 생각이 들면서 뭔가 분위기가 무섭다고 느껴지는 그 찰나에, 그는 너무나 반가워하는 표정으로 눈을 빛내며 내 손에 쥐고 있던 핸드폰, 정확히는 아이폰을 손으로 가리켰다. 알고 보니 그는 평소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그리고 특히 한국인이 운영하는 회사와 기술력에 대해 관심이 많았는데, 마침 딱 봐도 한국인처럼 보이던 내게 말을 걸게 되었다 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생각하는 삼성과 아이폰의 장단점부터 핸드폰 기능에 대해 어찌나 열성적으로 설명을 하던지... 내가 워낙 기계치이기도 하고 영어도 아직은 많이 서툴러서 그의 호기심 많은 질문에 제대로 된 답을 못해주는 게 미안해질 정도였다.  


이런 순박한 친구에게 아까 혼자 이상한 상상의 나래를 펼친 게 너무 부끄러워서 인터넷 검색까지 총동원해서 열심히 답해줬다.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말이 그에게 영어로 잘 전달되었는지는 미지수지만, 그래도 그는 충분히 고마워했다. 그와 얘기하는 사이 막차 버스가 도착했고, 좋은 시간이었다 작별 인사를 하면서 앞으로도 종종 연락하자며 인스타 아이디도 서로 교환했다.


친구 한번 만들어보겠다고 그렇게 아등바등 애쓸 땐 안되더니, 고작 버스정류장에서의 우연한 만남이 인스타 팔로워 수를 늘려주고, 심심할 때 DM 할 수 있는 현지 친구를 만들어주다니. 이런 거 보면 참 세상은 알다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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