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은 알고 있지 않았는가. 모든 게 순탄치만은 않을 거란 걸.
그냥 나도 모르게 편안함에 안주해 마음이 약해졌나 보다.
이 찰나가 지나고 나면 다 아무것도 아닌 그런 게 되어 있겠지. 그때의 나는 지금의 과거를 떠올리며 창피한 과거라며 웃어넘길 수 있는 그런 하나의 에피소드 따위가 되어 있겠지.. 최대한 마음을 다잡으려고 노력했지만, 솔직히 홈스테이와의 불화 이후 '내가 이상한 건가?' '왜 나한테만 이런 일들이 생기는 거지?'를 외치며 한동안은 몸도 멘탈도 나간 채 정신없이 지낸 것 같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어쩌겠는가?
내가 더 이상 살지 못할 것 같다고 말한 것은 6월 초쯤, 그러니까 약 한 달 반 정도를 산 후였다. 피차 불편했던 생활을 유지하고 있던 터라 집주인은 내가 나가는데 어떠한 제약도 걸지 않았다. 디파짓도 바로 돌려받았다. 그런데 막상 이 집을 나가야 하는 상황이 되니, 또다시 이사 갈 집을 구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나마 위안이 되었던 건 지난 집 구하기 때와는 다르게 지금의 나는 돈도, 시간도 여유가 있었고 주변 지리도 더 잘 아는 상태라는 거다.
몇 개의 집을 뷰잉 하고 정한 집이 Karen의 타운하우스다. 업타운에 위치한 Whittier Avenue, 프라이빗 방을 제공해주는 대신 거실, 주방, 화장실 등을 집에 입주하는 룸메이트들과 함께 공유하는 형태다. 흔히 알려진 용어로, 룸쉐어(혹은 룸렌트)라고 설명할 수 있겠다.
방 구조가 썩 좋지 않은 ㅡ자 형태의 작은 방이라 아쉽긴 하지만, 방에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커다란 창문과 창문 너머로 보이는 확 트인 공원 뷰에 마음을 뺏겼다. 집주인인 Karen은 타이완-캐네디언으로, 10대의 딸을 홀로 키우는 미혼모였다.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내게 지대한 관심을 보였던 그녀는 K-pop 특히 빅뱅의 광팬이라고 했다. 그래서 더더욱 한국에서 왔다는 내게 호감이 간다 했다. 다운타운과는 거리가 조금 있긴 하지만, 집 바로 앞에 정류장이 있어 출퇴근하기도 괜찮을 것 같았고, 월 440불이라는 착한 입주비에 더 고민할 필요도 없겠다 싶어 바로 계약서에 사인을 갈겼다.
그동안 한 달에 고정비로 지출하는 게 워낙 커서 쇼핑비나 외식을 자제하곤 했는데, 이제는 조금 더 여유롭게 맛있는 현지 음식들도 많이 도전해 볼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지금껏 엄마가 해주는 밥만 맛있게 떠먹었던 요알못인 나인지라 조금 걱정되긴 하지만.. 뭐 그래도 요리도 하다 보면 요령도 생기고 하겠지?
본격적인 자취생활이 시작되었다.
홈스테이는 오로지 홈맘이 차려 주는 대로만 먹어야 하고, 통금 시간이 있고, 빨래 횟수도 정해져 있는 둥 룰에 따라서만 생활해야 했다면, 룸렌트는 눈치 볼 것 없이 내 멋대로 편하게 생활할 수 있어 좋았다. 먹고 싶은 게 있으면 직접 장 봐서 요리해 먹거나, 귀찮다 싶으면 나가서 사 먹고 오면 되고, 아침에도 맘 편히 늦잠 자다가 배고플 때 기어 나와서 아침밥 해 먹으면 되고, 일 끝나고 코워커들이랑 맥주 한 잔 하고 늦게 들어와도 아무도 터지 하지 않으니 일단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받을 일도 없다. 물론 식사부터 시작해서, 청소와 장보기 등 모든 것을 내가 알아서 챙겨야 한다는 육체적인 귀찮음은 많아졌지만.
새로운 보금자리에서의 나날들은 그야말로 평온했다. 호스티인 Karen도, 딸 Hannah도, 그리고 같은 층 끝 방을 쓰는 Bonnie언니까지. 다들 각자의 생활패턴이 있었기 때문에 실제로 집에서 마주치는 일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음,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그냥 "공간만 공유하는 사이" 였달까. 가끔 시간이 맞으면 같이 밥도 차려 먹고, 거실에서 도란도란 같이 드라마도 보고, 또 힘든 일이 있으면 조언도 구할 수 있는 좋은 룸메이트들이긴 했지만, 거기서 끝. 뭔가 그 이상의 사적인 교류나 만남은 없었다. 편한데 불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