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색한데 익숙한 어른 같은 몸놀림으로 자연스럽게 일회용 면도기로 손이 향한다. 하루밤새 거뭇해진 수염을 깨끗이 정리하고 보니 동작이 꽤나 익숙하다.
자연스럽게 거품칠을 하고 매끄럽게 깎아내려간다.
혼란스러운 생각을 떨쳐내기라도 하듯 머리를 세차게 저으며 찬물로 세수를 하다 그 물로 머리를 감아버린다.
차가운 물이 닿자 생각이 일순 정지되며 차가움에 온몸이 마비된 듯했다. 그렇게 찬물로 샤워까지 하려다 선뜻 그것까지는 못하겠다 싶어 서둘러 머리만 헹궈내고 수건으로 대충 닦으며 나왔다.
뭔가 머릿속이 개운해진 듯 가벼워졌다.
꿈이 아니라면 이유를 찾든 상황을 파악해야 했다.
짐짓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식탁에 자리한다. 엄마는 갓 지은 새 밥에 보기만 해도 군침 도는 부대찌개 같은 비주얼의 김치찌개를 내 쪽으로 밀어준다. 한입 맛보는 순간 좀 전의 차가운 얼음물의 기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깊고 진한 찌개의 맛이 손끝까지 따뜻함을 전달했다.
"이 맛 기억나요. 왠지 안심되고 위로받는 이 맛"
멸치를 집어 들다 나를 빤히 쳐다보신다.
이미 세 번째 잘라 드신 멸치를 다시 접시에 내려놓는다.
아무 말이 없으셨지만 난 어제의 일을 미주알고주알 엄마에게 쏟아냈다. 학교에서의 일, 경찰서 앞까지 갔다가 도망친 일, 그리고 엄마를 만나기 전까지의 일을 이야기하며 내 기억의 시작과 끝을 정리했다
어젯밤 엄마의 이야기를 기준으로 하면 내 기억은 약 30년의 공백이 있다. 적어도 그 사이에 난 취직도 하고 결혼도 하고 이혼도 했을 터였다. 조금 진정되고 보니 상황을 꽤나 침착하게 나열하며 생각을 전달하는 모습이 분명 어른스러웠다.
이렇게 된 데는 이유가 있을 터였다.
식사를 든든히 마치고 동네 주민센터로 가 신분증부터 재발급하고 간이 신분증을 발급받아 엄마와 어제 함께 나왔던 경찰서를 가 주민번호를 조회했다.
나와 관련된 사건 조사기록이든 범칙금 이력이든 뽑을 수 있는 정보는 죄 조회하고 상황을 조사했다.
동사무소와 경찰서를 통해 최종 주소지를 확인하고 그곳으로 향했다.
"그곳에 답이든 힌트든 무언가는 있을 거야!!"
백만 가지의 상상 속 가설들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하나씩 가설을 증명하며 답에 가까운 가설을 찾아내야 한다.
첫 번째 가설에 따라, 최종주소지를 향해 가는 택시 안에서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모를 독백 같은 말을 하며 손가락을 꼼지락 거린다.
스스로의 흔적을 찾아 도장 깨기 하듯 하니씩 가설을 세우고 검증하고 답을 찾아 내 가야 한다.
그 첫 번째로 살던 집을 찾아가서 최근 흔적에서 힌트를 찾을 것이라는 기대와 조바심에 발이 절로 동동 굴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