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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찐찌니 Apr 25. 2024

백만 가지의 문

가설을 세우다

꿈이었을까?

눈이 부시다. 아침인가 싶지만 애써 모른 척해 본다.

눈을 뜨는 게 긴장되는 일이었던가. 눈을 뜨면 어제의 거짓말 같은 일들이 모두 꿈이었을 것 같은 기대감에 살짝 심장이 콩닥거린다.

'두근두근'


눈을 뜨면 모든 게 원래대로 돌아가 있기를 바라며 슬그머니 눈을 떠본다. 흐릿한 시야너머 햇살이 강렬하다.

겨우 떴던 눈이 다시 찌푸려지며 눈이 감겼다.


"깼니?"

'엄마다!'

다시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한다.

'꿈이었을까? 아니었을까?'

30 평남짓 크지 않은 집  거실에서 입구 쪽 작은방까지 걸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3초도 안될 이 시간이 마치 드라마 속 슬로 모션에 걸린 듯 길게만 느껴진다.

딸깍.

감았던 눈을 가늘게 떠  엄마를 올려다본다.



아침을 먹으며 엄마에게 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엄마는 깨작깨작 안 그래도 작은 멸치 볶음을 그나마도 잘게 잘게 끊어먹으며 내 얘기를 들어준다.

그 표정이 알다가도 모르겠다. 엄마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눈은 나를 보고 있는데 나를 보고 있지 않는 것만 같은 흐린 눈으로 묵묵히 멸치를 씹는다.


여느 때 와 마찬가지로 내 숟가락에  햄 반찬을 올려주며 옅은 미소를 짓는다. 짧게 스치는 웃음이지만 안심이 되는 미소다.

언제나 그랬다. 내가 학교에서 친구들과 다투고 왔을 때도 시험을 망쳐 속상해서 왔을 때도 선생님한테 억울하게 혼을 났을 때도 엄마는 늘 옅은 미소를 띤 채 내 이야기를 다 들어주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그 모든 일들이 그럴 수 있는 별것 아닌 일들이 되어있고는 했다.


속상했지만 밥은 맛있었고 엄마의 김치찌개는 숟가락질을 멈출 수 없게 했다. 그렇게 엄마는 아무런 말 없이 나를 안정되고  안심되게 해 주었다. 별일도 별 것 아니게 해 주었다.


이번에도 그럴 것이 당연했다.

아니, 그래야 만 했다.



실눈을 뜨고 올려다본 엄마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며 앞머리를 쓸어 넘겨주었다. 따뜻하다.

꿈이 아닌 것은 확실했다.

엄마의 손을 잡으며 살짝 미소를 지어 보였다.

"네 일어났어요."

"그래, 씻고 나와.  네가 좋아하는 햄 잔뜩 김치찌개 해뒀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기지개를 크게 켠다.


어제와 다를 것 없는 길이가 느껴지며 중년의 몸을 일으켜 화장실로 향했다.

'꿈이 아니었다. 그럼 뭘 어떡해야 하지?'

어색한데 익숙한 어른 같은 몸놀림으로 자연스럽게 일회용 면도기로 손이 향한다. 하루밤새 거뭇해진 수염을 깨끗이 정리하고 보니 동작이 꽤나 익숙하다.

자연스럽게 거품칠을 하고 매끄럽게 깎아내려간다.

혼란스러운 생각을 떨쳐내기라도 하듯 머리를 세차게 저으며 찬물로 세수를 하다 그 물로 머리를 감아버린다.

차가운 물이 닿자 생각이 일순 정지되며 차가움에 온몸이 마비된 듯했다. 그렇게 찬물로 샤워까지 하려다 선뜻 그것까지는 못하겠다 싶어 서둘러 머리만 헹궈내고 수건으로 대충 닦으며 나왔다.


뭔가 머릿속이  개운해진 듯 가벼워졌다.

꿈이 아니라면 이유를 찾든 상황을 파악해야 했다.

짐짓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식탁에 자리한다. 엄마는 갓 지은 새 밥에 보기만 해도 군침 도는 부대찌개 같은 비주얼의 김치찌개를 내 쪽으로 밀어준다. 한입 맛보는 순간 좀 전의 차가운 얼음물의 기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깊고 진한 찌개의 맛이 손끝까지 따뜻함을 전달했다.

"이 맛 기억나요. 왠지 안심되고 위로받는 이 맛"

멸치를 집어 들다 나를 빤히 쳐다보신다.

이미 세 번째 잘라 드신 멸치를 다시 접시에 내려놓는다.

아무 말이 없으셨지만 난 어제의 일을 미주알고주알 엄마에게 쏟아냈다. 학교에서의 일, 경찰서 앞까지 갔다가 도망친 일, 그리고 엄마를 만나기 전까지의 일을 이야기하며 내 기억의 시작과 끝을 정리했다

어젯밤 엄마의 이야기를 기준으로 하면 내 기억은 약 30년의 공백이 있다. 적어도 그 사이에 난 취직도 하고 결혼도 하고 이혼도 했을 터였다. 조금 진정되고 보니 상황을 꽤나 침착하게 나열하며 생각을 전달하는 모습이 분명 어른스러웠다.

 

이렇게 된 데는 이유가 있을 터였다.

식사를 든든히 마치고 동네 주민센터로 가 신분증부터 재발급하고 간이 신분증을 발급받아 엄마와 어제 함께 나왔던 경찰서를 가 주민번호를 조회했다.

나와 관련된 사건 조사기록이든 범칙금 이력이든 뽑을 수 있는 정보는 죄 조회하고 상황을 조사했다.


동사무소와 경찰서를 통해 최종 주소지를 확인하고 그곳으로 향했다.


"그곳에 답이든 힌트든 무언가는 있을 거야!!"

백만 가지의 상상 속  가설들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하나씩 가설을 증명하며 답에 가까운 가설을 찾아내야 한다.


첫 번째 가설에 따라, 최종주소지를 향해 가는 택시 안에서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모를 독백 같은 말을 하며 손가락을 꼼지락 거린다.


스스로의 흔적을 찾아 도장 깨기 하듯 하니씩 가설을 세우고 검증하고 답을 찾아 내 가야 한다.

 그 첫 번째로 살던 집을 찾아가서 최근 흔적에서 힌트를 찾을 것이라는 기대와 조바심에 발이 절로 동동 굴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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