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있을 수 없는 세계.

[우리가 머무른 순간들] 08. 조세희 <침묵의 뿌리> (1)

by 진군
이미지 출처 : 열화당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세계. 조세희, <침묵의 뿌리>


<1984>의 작가 조지 오웰은 그의 문학론을 밝힌 에세이 <나는 왜 쓰는가>에서 작가가 글을 쓰는 이유를 네 가지로 요약합니다. 첫 번째는 순전한 이기심. 간단히 말해 자신을 알리고 과시하고 싶은 욕망입니다. 두 번째는 미학적 열정입니다. 아름다운 것들을 적절하고 훌륭한 문장와 리듬으로 써내려 가고자 하는 열정이라고 볼 수 있겠지요. 그 다음으로는 역사적 충동정치적 목적이 있습니다. 사실을 기록하여 후대에 알리고 보존하는 한 편, 자신이 원하는 사회의 모습을 위해 정치적인 주장을 전달하고 그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는 목적을 지니는 것입니다. 조지 오웰 자신은 세 번째와 네 번째 이유에 무게를 둔 작품세계를 펼쳐냈습니다.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은 정치적 글쓰기를 예술로 만드는 일이었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 그는 <동물농장>, <1984> 등 소설을 통해 당대의 현실을 비판하고 자신이 바라는 정치적 지향을 녹여내는 한 편, 스페인 내전에 참가하여 논픽션 <카탈로니아 찬가>를 써내는 등 사회 변화에 직접적으로 참여하는 데에도 주저함이 없었습니다.


그런 조지 오웰의 글쓰기를 떠오르게 만드는 작가가 우리 사회에도 있습니다. 연작 소설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을 집필한 조세희 작가입니다. 어찌 보면 그의 삶 전체가 약자와 고통받는 자를 위한 투쟁이자 대변의 서사였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불과 몇 년 전의 인터뷰만 보더라도 그는 집회나 시위 현장을 찾아가 사진으로 기록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전하는 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다운로드 (2).jpeg ©조세희


그가 카메라를 들기 시작한 것은 1980년 '사북 사건'을 겪으면서부터입니다. 사북사건은 광주 민주화운동이 일어나기 한 달 전인 1980년 4월, 강원도 정선군 사북읍의 탄광촌에서 열악한 노동환경과 어용노조, 터무니없이 낮은 임금 인상폭 등에 분개한 탄광 노동자들이 집회를 벌였습니다. 이 때 두 사람의 광부가 경찰 차량에 치여 중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했고, 이에 분노한 노동자들이 경찰지서를 공격하며 촉발된 사건입니다. 사건을 지켜보던 조세희 작가는 카메라를 들고 사북읍으로 향했고, 그렇게 세상에 나오게 된 책이 사진산문집 <침묵의 뿌리>입니다.


책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죄의식'입니다. 그는 첫머리에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작가로서가 아니라 이 땅에 사는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그동안 우리가 지어온 죄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그가 말하는 죄의식이란, 동시대인으로서 다른 사회 구성원들의 불합리한 고통과 슬픔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마음일 것입니다. 사회의 병리적인 시스템과 구조적인 문제를 지적하고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보겠다는, 그리하여 그들의 곁에 있겠다는 다짐이기도 할 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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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1-540x359.jpg ©조세희


<침묵의 뿌리>는 흔히 사북 사건을 다룬 책으로 알려져 있지만, 막상 책을 열어보면 사건 자체에 대해서 다루는 대목은 후반부에 이르러서야 등장합니다. 그마저도 사건의 공소장과 관련 기록, 증언들이 부록처럼 실려 있을 뿐, 책의 중심 주제를 이루는 사건은 아닙니다. 그 대신 그는 광부들이 살아가던 방과 노동의 현장을 묘사하고 그곳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의 일기장을 인용하며, 그들의 삶의 모습을 단단하게 그려냅니다. 작가는 단일한 사건 하나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를 관통하는 큰 주제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주제로는 가난과 불평등, 환경과 개발, 현대사와 독재정권에 대한 비판을 넘나들고 서술 방식으로는 소설과 산문, 인용을 오고 가는 <침묵의 뿌리>의 구성은 아마 거기에서 비롯되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하필 사진이었을까요? 훗날 그는 인터뷰를 통해 이렇게 말합니다. "사진을 찍으려면 현장에 있어야 돼. 현장에 못 가고선 찍을 수 없지. 내가 카메라를 들고 어딜 간다는 것은 현장 깊숙이 들어가는 거야. 글을 쓰는 사람은 집에서 써도 돼. 하지만 사진은 아니지. 현장에서 현장을 호흡해야 돼. 사진기를 대고 있으면 노동자들 숨소리가 다 들려. 내가 글도 못 내놓고 있는데, 노동자 친구들 외로움 탈 수 있으니까 내가 가서 외로움의 분량이 줄어들 수 있다면 하고 바라면서 가는 거야."* 현장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 진실을 포착하고 그것을 이 사회에 전하고자 하는 열망, 그것이 그를 움직인 동력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그는 글쓰기를 통해서는 완전히 채울 수 없던 자신의 사명을 카메라를 통해서 보충해나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 출처 : "노동자들 신음소리에 숨이 막힌다" 매일노동뉴스. 이문영 기자.

https://www.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46295


Part 2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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