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 이야기 IV

친정 엄마가 들려주는 성경 이야기 6

by 찐니

요셉 인생 제3막 - 애굽의 총리가 되어 형제를 만난 요셉


창 41;25-45, 42;1-11, 45;1-15

애굽 왕 바로의 꿈을 해석한 요셉


요셉이 30살이 되던 해 애굽(이집트) 왕이 꿈을 꾸었는데 애굽 내의 술객과 박사들이 해석해 내는 자가 없었어. 그때 술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하고 바로의 꿈을 해석하게 한단다.

창 41;25 “요셉이 바로에게 고하되 바로의 꿈은 하나이라 하나님이 그 하실 일을 바로에게 보이심이니이다”

‘하나님’의 원문은 ‘את-אשׁר הלהים’으로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의미해.

당시에 애굽은 각 지방마다 신들이 있고 바로는 그 신들의 신이었어.

신들의 신 앞에서 요셉은 종의 신분인 자신이 믿고 있는 창조주 하나님이 바로에게 꿈을 보여주었다고 증거해.

고대에서는 창조의 신을 알고 있었으나 생활 가운데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피조물을 신으로 섬겼어. 창조주는 만물을 창조한 뒤 쉬고 있고 피조물들은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었지. 그들은 창조주가 만물을 주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야.

그러므로 지금 요셉은 창조주 하나님이 바로에게 일곱 해의 풍년과 일곱 해의 흉년이 있게 할 만물의 주관자임을 선포한 거야. 그리고 요셉은 지혜 있는 자를 세워서 일곱 해의 풍년 때에 일곱 해의 흉년을 대비하여 곡식을 저장하라고 권면해.

그런데 본문 38-40절에서 바로가 한 말을 봐. “하나님의 신이 감동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얻을 수 있으리오”하고 요셉을 총리로 세우고 “내 백성이 다 네 명을 복종하리니 나는 너보다 높음이 보좌뿐이니라” 하였어.


우리는 여기까지의 말씀에서 두 가지의 교훈을 얻게 된단다.


첫째. 요셉의 믿음의 담력이야.


요셉은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정욕적이고, 마귀적인 행동을 하는 거짓 신앙이 아니라 진실되고, 정직한 언행을 가진 온전한 믿음의 사람이었기에 하나님이 요셉에게 지혜를 주셨고, 담력도 주신 것이란다.

잠 2;7 “그는 정직한 자를 위하여 완전한 지혜를 예비하시며 행실이 온전한 자(바른길을 가는 자, 성실한 자)에게 방패가 되시나니”

둘째. 바로의 안목이야.


요셉은 옥에 갇힌 히브리 종이었어. 근본도 알 수 없는 히브리 종을 위대한 나라 애굽의 총리로 삼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 더군다나 바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도 아니야. 그러나 바로는 요셉을 총리로 세워 나라의 경영을 맡겼어.

사람을 볼 줄 아는 바로의 안목이 엄청난 재물을 얻게 된 비결이었지.


사람은 공동체 생활을 하는 동물이야.

사람을 멀리하고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단다. 사람을 볼 줄 아는 눈과 사람을 적소에 세울 줄 아는 판단력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기억하렴.


2. 형들을 만난 요셉

1) 정을 억제하고 사회적 거리를 둔 요셉


가뭄 2년째 요셉의 형들이 애굽으로 식량을 구하러 왔어. 드디어 애굽의 총리인 요셉과 요셉을 판 형들이 대면하게 된단다.

형들은 애굽의 총리가 요셉임을 알아보지 못하고 엎드려 절해.

드라마 같은 극적인 장면이지.

창 42;9 “요셉이 그들에게 대하여 꾼 꿈을 생각하고..”

자신이 꾼 꿈 때문에 형들의 손에 의해 애굽으로 팔려왔는데 그 꿈이 실현되는 순간 요셉이 마음이 어땠을까?

만감이 교차했을 것 같아.

하나님을 의지하며 버텨야 했던 시간들을 생각하면 형들에게 분노가 일었을 거야. 그래서 정탐군이라는 트집을 부려 가두어버려.

그러나 사흘 뒤에 동생 베냐민을 보기 위해 데리고 오라고 한 후 한 사람만 남기고 식량을 주어 보낸단다.

신앙의 양심이 계속 형들을 가두어둘 수 없었던 것이야.

그리고 후에 형들이 다시 식량을 사러 왔을 때 동생 베냐민을 데리고 오자 자신의 혈육인 베냐민을 곁에 두기 위하여 계략을 꾸며, 자신의 은잔을 베냐민의 자루에 넣어 훔친 것처럼 하였어. 그러나 ‘베냐민을 데리고 가지 않으면 아버지가 노년에 얻은 아들 둘을 다 잃게 되어 사망하게 될 것이고, 자신들은 아버지께 큰 죄를 범하게 될 것’이라며 강 청하는 유다로 말미암아 결국 자신이 요셉이라는 사실을 밝히지.

창 45;1 “요셉이 시종 하는 자들 앞에서 그 정을 억제하지 못하여 소리 질러 모든 사람을 자기에게서 물러가라 하고 그 형제에게 자기를 알리니 때에 그와 함께 한 자가 없었더라”

이 말씀은 곧 요셉이 그동안은 정을 억제하고 애굽의 총리로서 사회적 거리를 두고 형들을 대했다는 것을 알 수 있어. 그것은 형들이 자신을 종으로 팔았던 것을 용서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어.

충분히 요셉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어.

형들은 요셉이 애굽의 총리 된 권세로 곡식을 팔지 않고 돌려보냈다 할지라도 할 말이 없었을 거야. 그런데 왜 사회적 거리를 두던 요셉이 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자신이 요셉임을 밝혔을까?

유다의 강청에 넘어간 것일까?


2)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게 된 요셉


청 45;5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요셉이 야곱 가족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자신을 먼저 보내어 애굽의 총리가 되게 한 것임을 깨달았기 때문에 거리를 두었던 마음의 벽이 완전히 무너진 거야.

사실 요셉의 입장에서 생각할 때 형들에 의해 종으로 팔려 고생했으나 그것이 형들을 먹이기 위함이었다면 하나님의 섭리에 반감을 가질 수도 있었어. 그러나 고생 중에도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형통케 하셨으며, 불가능을 가능케 하셔서 애굽의 총리가 되도록 하신 하나님을 생각할 때 그것은 하나님의 구속사를 위한 계획이셨던 것을 요셉은 깨닫게 된 거란다.

오늘날도 하나님의 구속사는 계속되고 있을 거야.

“나를 통하여 이루고자 하는 하나님의 구속사는 무엇인가?”

깊이 묵상해 보렴.


3. 하나님의 구속사를 위해 쓰인 그릇들

자 그렇다면 요셉을 판 형들의 행위는 정당한 것일까?

형들이 요셉을 판 것이 죄가 아니라는 것이 아니야. 형들의 악한 행위는 죄의 값을 치러야 하는 것이 마땅하단다. 이 때문에 형들은 요셉을 두려워하며 야곱이 임종한 후에 또다시 요셉에게 용서를 빌어(창 50;15-17). 그리고 스스로 요셉의 종으로 여기며 숨죽이며 살게 된단다.

창 50;18 “그 형들이 또 친히 와서 요셉의 앞에 엎드려 가로되 우리는 당신의 종이 니이다”

요셉 인생 제3막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구속사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보게 돼. 하나님의 구속사는 형들의 죄와, 요셉의 정직하고 신실한 신앙, 그리고 바로의 현명한 눈이 사용되었어.

롬 9;21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어리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이 없겠느냐”

사 32;7-8 “궤휼 한 자는 그릇이 악하여 악한 계획을 베풀어 거짓말로 가련한 자를 멸하며 빈핍한 자가 말을 바르게 할지라도 그리함 이려니와 고명한 자는 고명한 일을 도모하나니 그는 항상 고명한 일에 서리라”

토기장이 비유처럼 형들은 하나님의 구속사에서 악한 도구로 쓰임을 받았고, 요셉은 선한 도구로 쓰임을 받았어. 그 가운데 바로는 현명한 눈으로 말미암아 요셉과 함께 복을 누린 자가 되었지.

오늘날도 하나님의 구속사는 이어지고 있을 거야.

우리는 어떤 그릇으로 쓰임을 받고 있을까?




대한예수교장로회 새순장로교회 장정숙 목사님의 설교말씀을 친정엄마가 딸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체로 편집한 내용입니다. 인용하실 때는 출처를 명시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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