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산

by RNJ


아이가 생기기 전에는 설산, 눈으로 덮인 한라산을 오르는 취미가 있었다. '제주도산지 대설특보 발효' 안전안내문자는 겨울 등산을 위한 짐을 꾸릴 시기가 왔다는 뱃고동 소리와 다름이 없었다. 눈이 멈추고 도로가 열리면 1100 도로를 오르는 버스에 몸을 싣는다. 매주 똑같은 코스를 걸어도 좋았다. 지인이 찾아오면 반드시 모시고(끌고) 함께 산을 올랐다. 산행 이후로 지인들의 연락이 뜸해진 것을 보니 이소라의 노래 가사가 떠오른다.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아이가 생긴 이후로 겨울 등산은 언감생심이 되었다. 함께 육아를 하는 입장에서 돌봐야 하는 사람이 하나 늘어나는 사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홀로 떠나는 겨울 산행은 아주 위험하다). 일터로 가는 길에선 눈이 소복이 쌓인 한라산이 너무나 선명하게 보인다. 아쉬운 마음에 매일 군침만 꿀떡꿀떡 삼킨다. 체인을 감고 비탈길을 위태롭게 오르던 버스는 음지를 지날 때마다 날카로운 비명소리를 토해냈었다. 고도 변화로 귀가 조금씩 먹먹해질 때 심장소리는 더욱 크게 공명했다. 상상만으로도 설렘이 느껴질 때 조금씩 슬퍼진다.


언젠가 함께 설산을 오를, 작은 친구를 떠올리며 차창에서 고개를 돌린다. 어떤 미련은 미처 묻어두고 오지 못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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