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밤바다를 걸었다. 겨울바람이 매섭기로 소문난 제주도의 최고 기온이 18도까지 치솟자, 우리는 아기를 데리고 애월에 있는 유명한 산책로를 찾았다. 아직 아기가 배에서 나오지 않았던 무더운 여름, 인파에 치이고 해초의 악취에 질려 다신 돌아오지 않으리라 결심했던 그날의 추억이 서늘하고 상쾌한 바람 아래에서 다시 떠올랐다. 영양가 없는 많은 경험이 우리를 편협하게 만든다.
망각의 두려움을 극복했을 때 나는 처음으로 용감해졌다. 영광의 순간이라 정의했던 작은 기억들은 질긴 족쇄와 은밀한 무게를 함께 선물했다. 아이가 태어날 때 멈춰있던 시간의 파도가 다시 몰아치기 시작했고, 해변에 어설프게 쌓인 모래성은 곧장 무너졌다. 들이치고 흘러나가는 맑은 물자국 위에서 햇빛은 산산이 부서졌다. 새로운 길과 강인한 곶이 보였다.
오랜 시간 머물렀던 길들이 그저 어디론가 이어주는 삶의 부속물이었음을, 현재를 사랑할 줄 아는 아빠가 되며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