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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두! 호두!"

by RN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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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의 흔적이 모두 사라진 어두운 밤하늘, 창가에 서서 달빛 아래에서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의 최후를 바라보았다. 수평선을 따라 갈치잡이 어선이 듬성듬성 떠있었고 집어등의 강력한 불빛 탓에 마루의 커튼이 환히 빛날 정도였다. 잠이 오지 않는 아이는 아빠의 품에 안겨 창 밖을 함께 바라본다. 마을에서 가장 큰 사거리, 그 사거리의 한 줄기를 타고 흐르다 보면 만나는 초록빛 섬광, 아이는 그곳을 가리키며 아빠에게 확인을 하듯 묻는다.


"호두? 호두!"


호두? 호두!


반려동물의 이름을 음식으로 지어주면 오래 산다는 미신 덕에 맛있는 이름을 가진 강아지를 만나는 경우가 많았다. 자몽, 콩, 인절미, 치즈, 두부.... 우리의 단골 칼국수집 강아지도 이름이 '호두'인데 털 색깔이 연한 호두색인지라 아주 찰떡같은 이름이 아닐 수 없다. 우리의 발자국 소리를 기억하는지, 가게 입구에 도착하면 2kg이 겨우 넘는 손바닥만 한 강아지가 스프링처럼 또잉- 또잉- 우리를 향해 뛰어오른다.


아이는 부모를 닮아 동물을 좋아한다. 인간을 경계하는 털북숭이 생물체를 향한 애정은 타고나는 본성이기도 하겠다만 여러 어른들의 인내와 친절함을 양분으로 삼아 보다 두터운 감정으로 분화된다. 칼국수집 사장님은 우리 부부가 밥을 먹는 동안 아이를 훌쩍 데려가 아이가 강아지의 촉감과 습성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게 해 주셨다. 아이는 강아지가 무서워 발로 슥- 밀어내는 와중에도 호기심을 이기지 못해 고사리손을 앞으로 쭉 뻗었다.


아이가 몸무게가 2배로 늘어날 때까지 강아지 호두는 겨우 몇 백 그램이 불어났다. 아이가 배밀이를 하던 시절부터 스프린트를 하는 지금까지의 여정을 함께 지켜본 강아지는 아이의 옆에 딱 붙어 앉아 듬직한 자태로 주변을 경계한다. 2kg짜리 만 3살 푸들이 도합 90kg에 육박하는 부자를 지켜주는 모습이 기특했던지 아이는 부드럽게 호두의 등을 쓰다듬고 쪼르르 달려와 나의 품에 안겼다.


아이가 잠 못 이루는 늦은 저녁, 그리고 창문 너머로 보이는 칼국수집 간판에서 쏟아지는 녹색 섬광. 아이는 거실 창문 앞에 서서 데이지를 그리워하는 '귀여운' 개츠비가 된다. 아이는 그리움이라는, 두 돌 아이의 호두만 한 뇌로써는 이해하기 힘든 복잡한 감정을 배워내고 있었다.


"It makes me sad, I've never seen such a cute little friendship bef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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