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기혼녀가 되어버렸다
어쩌면 마흔이 넘어서면서부터 결혼은 안 하고 살지도 모른다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혼자가 익숙해진 것도 있었지만, 결혼을 할 운명이었다면 이 나이까지 혼자일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귀찮았다.
누군가를 알아가고 만나러 준비해서 나가고 실망하고, 그런 반복되는 패턴이 이제는 너무 피곤해졌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생각은 점점 많아져갔다.
아마 마흔이라는 나이가 주는 무게감일지도 모르겠다. 혼자 사는 이 생활이 마음에 들었지만, 사람은 함께 살게 만들어진 존재라는 생각도 들었다. 지금은 좋지만 50이 되고 60이 되면 삶이 공허해질 것 같았다.
그리고 친구들의 삶과 비교해보면 내 삶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청춘에서 멈춰 있는 것 같았다.
평온했지만 변화 없는 삶이었다. 연애도 해 봤고 사람들도 좋아하는 나였지만, 지금 내 옆에는 아무도 없었다. 평화롭고 자유로웠지만 외로웠다.
그렇게 40대를 맞이했다.
주말이면 집 근처 공원을 산책하고, 카페에서 책을 읽거나, TV 앞에서 재미난 프로그램을 보며 낄낄거렸다. 미혼인 지인이 놀러 오면 술 한 잔 기울이며 넋두리를 나누기도 했다.
그렇게 지내고 있었다.
결혼한 친구에게 결혼을 어떻게 결심했냐고 물어보니, "결혼할 나이가 되었고, 그때 옆에 나타난 사람과 결혼했다"고 했다. 결혼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하는 것도 아니고, 지금까지 만난 남자 중 가장 괜찮은 사람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타이밍이 맞는 사람과 한다는 거였다.
그 말을 들었을 땐 멋없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내가 결혼에 대해 품고 있던 환상이나 기대가 무의식 속에 컸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말이 맞다.
41살 6월.
40대가 되자 소개팅이나 선 자리조차 끊겼다.
그런데 그해 여름, 마치 결혼할 시기가 온 것처럼 갑자기 세 번의 소개가 동시에 들어왔다.
게다가 기존에 소개받았던 사람들과는 달리 셋 다 나름 나쁘지 않았다.
세 살 많은 사업가, 연하의 직장인, 한 살 많은 공무원.
모두가 나에게 호감을 표현했고, 계속 만나고 싶다고 했다.
그중 한 살 연상의 공무원이 지금의 남편이다.
이 남자다! 첫눈에 반한 것도, 가슴이 요동친 것도 아니었다. 그냥 어쩌다 보니 그렇게 연애가 시작됐다.
남편은 나이에 비해 마인드가 어리고 순수해 보였고,
기존에 만났던 남자들이 지닌 삶의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 사람과 함께라면 내 삶도 지금처럼 무겁지 않고 가볍고 즐겁게 흘러갈 것만 같았다.
일이 되려고 하면 모든 게 맞아떨어진다고 했던가.
아마 그때가 그랬던 것 같다.
모든 것이 막힘 없이 순조롭게 흘러갔다.
게다가 그해 여름부터 다니던 대학도 방학이라 오후 2시면 퇴근했다. 시간까지 여유로워지자, 오랜만에 한껏 꾸미고 연애의 맛을 만끽하며 생기롭게 살았다.
결혼해야지 하는 무거운 생각보다는 오랜만에 찾아온 이 설렘을 즐기고 싶었다.
그리고 그 다음 해 3월.
나는 결혼 준비를 하고 있었고, 만난 지 딱 1년 만에 우리는 결혼했다. 모든 게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정신 차리고 보니 기혼녀가 되어 있었다.
뭐야? 미혼 시절 그렇게 고민했는데,
그 고민이 무색해질만큼 너무도 별거 아니게...
결국 결혼은 내 마음이 열리는 그 순간,
내 옆에 있는 사람과 하는 거였구나!
남들보다 한 발자국 늘 늦었던 지각생 인생.
그렇게 42살에 나는 늦깎이 기혼녀가 되었다.
제 글이 인기글 1위에 올랐네요. 감사합니다^^
다음화는 일요일에 찾아올께요.
40대의 신혼생활과 어떻게 난임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는지 어떤 상황을 마주했고, 또 치유해 나갔는지 하나씩 풀어가 보려고 합니다.
기다림과 멈춤, 받아들임과 포기를 반복했던
제 마음의 기록을 함께 걸어가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