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결혼이 나를 다른길로 데려갔다

마흔셋, 처음 난임병원 문을 열다

by 찐스마일


"난임 여성, 난임병원, 시험관..." 이런 단어들을 들으면 당신은 어떤 생각이 드는가? 임신이 안 돼서 가는 곳? 정말 힘들다던데? 뭔가 어둡고 우울한 감정, 혹은 아픈 자가주사를 떠올리는가?


아마 대부분은 '나와는 무관한 일'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마흔둘. 늦은 나이에 결혼했지만, 그것은 근거 없는 자신감이었거나 혹은 순수한 무지였다. 결혼만 하면 아이는 금방 생길 줄 알았다. 미디어에 나오는 40대 연예인들의 출산 소식, "요즘은 마흔 넘어 낳는 게 흔해"라는 주변의 위로가 나를 안일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현실은 달랐다. 40대의 임신은 결코 쉽지 않다. 나는 '난소 나이(AMH) 0.43', 신체 나이보다 늙은 46세의 난소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일명 '난소기능저하'. 내 몸속에 남아 있는 난자가 얼마 없다는 뜻이다. 내가 마주한 현실은 생각보다 훨씬 차갑고 냉정했다.


결혼 전 우리는 합의했었다. 둘 다 나이가 있으니 "노력은 해 보되, 안 되면 어쩔 수 없지"라고. 쿨한 척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결혼 다음은 아이'라는 숙제가 자리 잡고 있었다. 신혼의 달콤함과 다툼 속에서 안정을 찾아갈 무렵, 우리는 6개월 정도 자연 임신을 시도해 보기로 했다. 주위에서는 당장 병원에 가라고 성화였지만, 왠지 난임병원만은 가고 싶지 않았다. 내심 두려웠던 것이다.


그러다 그해 12월, 코로나19가 터졌다. 금세 끝날 줄 알았던 팬데믹은 해를 넘겨 길어졌고, 우리는 각자의 공간에 고립되었다. 병원행은 차일피일 미뤄졌고, 매달 확인하는 임신 테스트기의 선명한 한 줄은 소리 없는 스트레스가 되어 쌓여갔다. 성격 급한 내가 병원 이야기를 꺼내도 남편은 주저하며 자연 임신을 더 고집했다.

그렇게 속절없이 시간은 흘렀다. 결국 1년이 다 되어서야 우리는 난임병원의 문턱을 넘었다. 내 나이 마흔셋, 6월의 일이었다.


처음 마주한 난임병원은 낯선 세계였다. 2시간이 넘는 대기 시간, 모자를 푹 눌러쓴 채 표정 없는 얼굴로 앉아 있는 환자들. 그곳엔 묘하게 접근하기 힘든 무거운 아우라가 감돌았다.

진료실 문을 열자 의사 선생님은 과한 미소와 친절로 나를 맞았다. 하지만 입에서 나온 진단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현재 임신 확률은 10%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채취와 수정 모두 쉽지 않을 겁니다."


너무 늦게 왔다는 사형선고 같았다. 실제로 받아든 1차 시험관 결과는 처참했다. 난포 2개를 채취했지만 하나는 공난포(빈 껍데기)였고, 남은 하나가 겨우 3일 배양되어 자궁에 이식되었다. 그 후로도 수없이 채취를 반복했지만 대부분 1개를 얻거나, 그마저도 공난포이거나 미성숙 난자여서 폐기되기 일쑤였다.


채취 개수가 임신 성공률과 꼭 비례하는 것은 아니라지만, 이식 시도조차 못 하고 끝나는 날이 많아지자 기대는 절망으로 바뀌어 갔다. 그것이 나의 적나라한 현실이었다. 늦은 결혼은 나를 그렇게 '난임병원'이라는 전혀 다른 길로 데려다 놓았다.


그때까지 나는 몰랐다. 그 어두운 터널이 무려 5년이나 이어질 줄은. 인생은 한 치 앞도 알 수 없다고 했던가? 난임 생활은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좌절과 심리적 고통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불행 중 다행일까? 늦은 결혼으로 혼자 있는 시간이 길었던 나는 직장 생활의 고단함을 달래기 위해 명상, 요가, 심리학 책을 가까이해 왔었다. 그때 쌓아둔 내공이 시험관이라는 거친 파도 속에서 나를 지탱해 주었다. 30대보다 40대 여성이 악조건 속에서도 중심을 잘 잡는 경우를 종종 보는 이유도, 아마 그 세월의 힘 때문일 것이다.


의학적으로 여성의 가임력은 만 35세부터 꺾이고, 40세 이후엔 급격히 추락한다. 만 45세가 넘으면 출산 확률은 1% 내외. 인터넷 검색 한 번이면 알 수 있는 이 사실조차 나는 모르고 있었다. 나의 무지가 사무치게 부끄러웠다.


병원이나 커뮤니티에서 30대 후반, 40대 초반의 성공 사례는 있어도 40대 중후반은 찾아보기 힘들다. 어렵게 임신이 되어도 유산의 문턱을 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자신감은 바닥을 치고, 진료실에 들어갈 때마다 지겹도록 같은 말을 듣는다.


"나이 때문입니다."


이 한 마디로 모든 가능성이 차단되는 기분. 그래서 세상에서 제일 듣기 싫은 말. 그 말을 꼬리표처럼 달고, 나는 만 42세의 '고령 난임 여성'이 되어 병원이라는 낯선 세계에 발을 디디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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