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임동지, 같은시간의 다른 감정들
나는 그 여름, 새벽마다 기차를 탔다.
대구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실은 채, 눈꺼풀은 무겁고 마음은 늘 불안했다.
진료보다 더 힘들었던 건 진료 이후의 외로움이었다.
난임 병원은 대부분 오전에 진료나 시술이 집중된다.
진료 시작 시간은 보통 오전 8시.
채취날은 이보다 훨씬 먼저 와서 여러 행정 절차 후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보니 타지방 사람인 경우 전날 병원근처서 숙박을 하기도 한다.
어쨓든 타지방 사람들은 새벽 첫 기차를 타야 겨우 도착할 수 있다. 대구로 전원한 후 병원 가는 일도, 진료 과정도 모든 게 낯설었다. 특히 대기실. 큰 병원의 대기실은 끝없는 기다림으로 시작된다. 처음 방문한 날은 그 묘한 기운에 위축되어 버린다.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는 간호사의 목소리만을 유일하게 기다린다.
그곳에서 그녀를 만났다.
내 옆자리에 앉아있던, 나보다 한 살 어린 그녀.
결혼 3년 차. 자연임신과 유산을 한 차례 경험한 후 시험관 시술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했다.
우린 몇 번 같은 날 같은 시간에 진료를 받게 되면서, 조심스레 말을 섞기 시작했다.
서로의 대기 시간과 진료 상황을 알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연락처를 교환하게 되었다.
그녀는 늘 나보다 수치를 잘 기록했고, 늘 조금 앞서 있었다. 약도, 주사도, 병원의 분위기도 먼저 경험하고 알려줬다. ‘같은 처지의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큰 위로였던가.
지인이나 가족에게조차 조심스러운 이 이야기를, 병원에서 만난 그녀에게는 자연스럽게 꺼낼 수 있었다.
아마도 같은 입장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우린 병원 밖에서도 연락하며 서로의 상태를 고민하며, 함께했다.
그래서 더 덜 외롭고 든든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던 그녀가 4차 시술에서 임신이 되었다.
기쁜 소식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마음 한구석이 복잡했다. 나는 여전히 병원에 다니고 있었고, 여전히 실패를 반복하고 있었다.
자주 연락을 주고받던 그녀와 통화도 메시지도 점점 뜸해졌다. 임신이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축하한다는 말은 했지만, 내가 ‘괜찮은 척’ 하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그녀와의 마지막 연락은 아주 짧은 메시지였다. “계속 착상이 되지를 않네.” 그녀는 잘될꺼라는 말을 조심스럽게 했지만, 나는 이미 지쳐있고 그런 위로조차 들리지 않았다.
그녀의 임신은, 내 실패를 더 뚜렷하게 비춰주는 거울 같았다. 그 이후로 나는 그녀에게 연락하지 못했다.
연락을 받는 것도, 임신진행 상황을 듣는것도 힘겨웠다. 관계가 변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더는 그 시절처럼 솔직할 수 없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그녀가 건강한 딸을 낳았다고 했다. 좋은 소식이지만 여전히 나는 마음 한구석이 복잡해진다. 그리고 이런 감정이 드는 내가 초라하게 느껴졌다.
우리는 같은 처지에 있다는 감정으로 만나서, 서로에게 정보를 주고 받으며, 또 서로를 위로하며 힘든 과정을 함께 이겨나가는 난임동지이다. 하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감정과 미묘한 입장차이가 존재한다.
기쁨과 슬픔이, 희망과 질투가, 응원과 거리두기가 공존한다. 함께였던 우리가 서로에게 임신 소식을 쉽게 말하지 못하는 이유. 누군가의 기쁨이 또 다른 누군가에겐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걸 나는 그 병원의 대기실에서 처음 배웠다.
초음파사진을 들고 기뻐하는 사람들 사이로
난자채취10~20개로 적혀진 쪽지를 들고 있는 그녀들 사이로 오늘도 누군가는 이식실패로 그 힘든 과정을 다시 반복해야하고 채취실에서 하나의 난자도 채취하지 못하거나, 공난포만 채취되어 의사의 위로를 받고 있을 것이다.
나는 그녀들을 말없이 안아주고 싶다.
그녀들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이것이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다.
이 글은 시험관 시술 여정을 함께 했던
한 여성과의 짧고도 깊은 인연에 대한 기록입니다.
다음 글에서는 ‘두 번의 임신 그리고 유산’이라는,
또 다른 터널의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구독해 주시면 제 진심이 담긴 다음 이야기로 찾아뵐게요. 다음주 일욜밤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