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을 모르는 터널속을 혼자 걸어가는 기분을 아시나요?
이곳은 조용하다.
긴 복도의 의자에는 부부가 함께 온 경우도 있고, 여성 혼자 무표정으로 대기하는 모습도 있다.
공통된 분위기는 다들 영혼이 빠져나간 듯, 얼굴에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곳에서는 웃고 수다 떠는 것조차 눈치가 보인다.
예약을 하고 가도 대기시간은 꽤 길다. 내 이름이 호명되면 의사 선생님을 만나러 들어간다.
의사 선생님은 처음 보는 나를 향해 과하게 친숙한 미소를 지어주신다.
난임병원의 의사들은 대체로 매우 밝고 친절하다.
환자와의 라포 형성에 신경을 많이 쓰는 듯하다.
그리고 손을 자주 잡아준다. 채취할 때, 검사할 때마다 “나 믿고 편안히 있어요. 안 아프니까요.”라고
하며 손을 꼬옥 잡아준다. 이식할 때도 “이번엔 꼭 아기 품읍시다”라며 손을 잡아주고,
어떤 의사는 이식 때 직접 기도를 해주기도 한다.
채취가 실패한 날에도 여전히 침대에 누워 있는 나를 찾아와 위로해 준다.
진료실에서 눈물을 보이는 환자도 많다.
그럴 땐 휴지를 건네주며 달래주기도 한다.
의사와 환자는 일주일에 2~3번 정도 만난다.
난임은 몸보다 마음이 힘든 병이다. 그래서인지 상담, 심리, 명상 등을 공부하는 의사도 많다고 한다.
이곳을 오래 다니다보면 마치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을 혼자 걷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도대체 언제 끝이 날지, 그 끝이 임신일지, 아니면 포기일지 알 수가 없다. 심지어 포기하게 된다면
그 시기가 언제일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철저하게 혼자 걸어야 하는 길이다.
시험관을 오래 하다 보면 주변 사람에게 말하기보다는 조용히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같은 처지의 사람들과 정보도 나누고 위로를 받으려 난임카페나 단체 톡방에 참여하게 된다. 하지만 결국은 하나둘 임신 소식을 전하며 방을 나가고, 혼자라는 현실을 다시 실감하게 된다.
난임카페에는 힘든 사람이 많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들어가 묻고 의지하지만, 성공한 사람들은 탈퇴하거나 글을 올리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주로 부정적이거나 우울한 글이 많아, 정보를 얻으려 자주 들어가다 보면 약해진 멘탈을 더 버티기 힘들어지기도 한다.
의지가 될 것 같았던 남편은 어떨까?
시험관 시술에서 남편이 하는 일은 영상물을 보고 정자를 채취하는 일 하나다. 물론 아내의 멘탈 관리와 위로가 남편의 몫이긴 하지만 말이다. 남편이 담배를 안 끊고 영양제를 잘 안 먹는다고 하소연을 했더니 한 의사가 내게 이런 말을 한 적 있다.
괜히 그런 일로 스트레스받지 마세요.
시험관이 워낙 여자가 힘든 시술이다 보니 부부가 같이 오면 남편에게도 같이 관리하라고 말은 하지만,
사실은 남자의 정자는 워낙 많은 수가 채취되고,
미세수정이라는 기술도 있어 의학적으로 시도해 볼 수 있는게 많거든요. 본인 스트레스 관리가 먼저입니다.
" 결국 시험관은 혼자 걸어가는 고단한 길임을 인정하고 시작하는 게 좋다."
난임병원의 주 연령대는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이 많다. 물론 병원마다 차이는 있다.
나는 처음에 이곳은 나이가 많아야 오는 곳이라 생각했지만, 전혀 아니었다. 오히려 의외로 젊은 여성도 많았다. 요즘은 젊어도 난임이 많다.
물론 나처럼 오래 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른바 로또라 불리는 1차 성공, 혹은 3~4회 안에 성공하는 경우도 많다. 시험관 전체 성공률은 약 30% 정도라고 한다. 난임병원을 처음 가게 되면 다양한 시도를 한다. 만보 걷기, 식단 관리, 운동, 수많은 영양제, 한의원 진료까지. 나 역시 처음에는 의욕에 차서 열심히 노력을 했다.
시험관 과정에서 가장 힘든 시간은 임신 여부를 확인하는 피검사 날이다.
힘겨운 과배란 주사, 수많은 영양제, 이식 후 질정과 주사까지 4주간의 일정을 버텼지만, 피검 수치 0으로 실패로 돌아갔을 때의 감정은 뭐라 설명하기 어렵다. 동굴로 들어가고 싶었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그저 혼자만 있고 싶었다.
나는 총 12번의 이식을 했다.
그중 3번은 임신수치를 봤고, 나머지 9번은 비임신으로 종료되었다. 초반에는 임신 테스트기로 미리 확인하고 가기도 했지만, 나중에는 한 줄을 보는 것이 무서워 테스트기 자체를 하지 않고 병원에서 피검사로 결과를 확인했다.
나는 부산의 3곳, 대구의 2곳 병원에서 시술을 받았고, 총 6명의 의사 선생님께 시술을 받았다.
유명한 병원, 유명한 의사가 있지만 결국 자기에게 맞는 병원, 맞는 의사가 있다.
내 마음이 편하고 믿음이 가는 병원과 의사에게 진료받으면 된다. 그리고 한 병원에서 너무 오래하지 말고, 세 번쯤 실패하면 다른 병원으로 옮겨보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어떤 방법이 나에게 맞을지 모르기에 다양한 시술법을 다 경험해보는 게 좋다.
하여튼 나는 5년 만에 그곳을 졸업했다.
평생 맞을 주사를 그곳에서 다 맞은 것 같다.
따뜻하기도 하면서 때로는 차가운 곳.
난임병원은 내게 그런곳이다.
다음 화부터는
매주 일요일 밤, 한 편씩 찾아올게요.
7화: 기쁨을 말하지 못하는 이유
병원에서의 인간관계를 들여다보려 합니다.
이 글은 제가 겪은 경험과 감정을 바탕으로
쓴 글이지만, 혹시 구독자분들 중에서도 비슷한 시간을 지나오신 분이 있다면 댓글로 마음을 나눠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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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주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