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셋, 처음 병원 문을 열다
난임 여성, 난임병원, 시험관...
이런 단어를 들으면 당신은 어떤 생각이 드나요?
임신이 안되서 가는 곳?
정말 힘들다던데…
뭔가 어둡고 우울한 감정인가요?
아니면 자가주사를 떠올리나요?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단어들을 들으면 ‘나와는 무관한 일’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저도 그랬으니까요.
마흔이 넘은 여자가 무슨 자신감인지 결혼하면 애는 금방 생길 줄 알았다. 40대 연예인의 임신 이야기, 주위 사람들의 “요즘은 마흔 넘어서 결혼하고 출산하는 것도 흔해”라는 말들이 나를 안일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40대 임신은 쉽지 않다.
게다가 나는 난소 나이 AMH 0.43으로, 46세에 해당하는 난소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일명 ‘난소기능저하증(난저)’ 쉽게 말해, 내 몸 속에 남아 있는 난자가 얼마 없다는 뜻이다.
내가 마주한 현실은 생각보다 차갑고 냉정했다.
우리는 결혼 전에 아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둘 다 나이가 있으니 "노력은 해 보되, 안 되면 어쩔 수 없지" 정도로 합의했다. 7~8개월 정도 시도했지만 아이는 생기지 않았고, 결국 우리는 난임병원의 문을 열었다.
내 나이 43살이었다. 그때는 몰랐다.
앞으로 펼쳐질 이 긴 터널 같은 시간이 5년이나 지속될 줄은. 인생은 이래서 한 치 앞도 모른다고 하는가 보다.
시험관 시술에는 ‘받아들임’이라는 태도가 필요하다.
나는 그게 잘 되지 않았다.
의사선생님은 말했다.
"현재 임신 확률은 10%정도 밖에 되지 않습니다.
난자 채취와 수정 모두 쉽지 않을 겁니다."
너무 늦게 왔다는 뜻이었다.
실제로 1차 시험관 결과는 냉정했다.
2개의 난포를 채취했지만
하나는 공난포(난포 안에 난자가 없음)였고,
남은 하나가 겨우 3일 배양되어 자궁에 이식되었다.
이후에도 수없이 많은 채취를 반복했지만,
가장 많이 채취한 개수가 3개. 대부분은 1개 채취,
혹은 난자가 자라지 않아 중단되거나 공난포, 미성숙 난자로 폐기되는 일이 반복되었다.
물론 채취 개수와 임신율이 꼭 비례하지는 않지만,
이렇게 결과가 나오면 이식 시도조차 못 하는 경우가 많아 임신을 기대하기조차 힘들어졌다.
이것이 나의 현실이었다.
살면서 현실과 이상 사이의 갭이 늘 존재했지만
나는 그 간극을 '노력'으로 메꿀 수 있다고 믿어왔다.
조금은 어린 생각이었지만 자신감이 넘쳤다.
나는 타고난 노력형이었다.
내가 할 만큼 했다고 여겨야 포기하는 성격이고,
지각생 인생이긴 해도 노력에 따른 소소한 보상은 어느 정도 누리고 살아왔다. 그러나 시험관 시술에서 이런 성향은 오히려 독이 된다.
멘탈이 순식간에 무너진다. 시험관은 내 노력과 결과가 비례하지 않는다.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상황도 자주 마주하게 된다.
그냥 그렇게 된 것이니 받아들여야 한다.
그런데 ‘왜?’라는 질문이 붙고 내 의지로 어떻게든 해보려는 발버둥이 시작되면 스스로를 극도로 힘들게 만든다. 나는 이 5년의 시험관 과정을 통해 '받아들임'이라는 것을 배웠다.
‘시험관 시술은 멘탈이 강해야 한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일정 부분 맞는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멘탈이 강하다 해도 힘들지 않고 장기간 해 온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시험관 고차수를 듣게 되면 마음 한구석이 아려온다. 그녀들이 겪었을 수많은 감정과 상황들이 짐작되기 때문이다.
그래도 멘탈 관리는 매우 중요하다.
이게 영양제 몇 개 먹거나 운동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하지만 쉽지 않다.
미혼 시절, 직장생활의 고단함과 혼자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명상, 요가, 불교, 심리학 책들을 가까이했던 것이 내게 큰 위로가 되었고, 시험관 과정에서도 멘탈 관리에 도움이 되었다.
오랜 직장생활과 40년 넘게 살아온 인생 내공은 시험관 멘탈 관리에 분명히 힘이 되었고, 그래서 30대보다 40대 여성이 악조건 속에서도 중심을 더 잘 잡고 병원을 다니는 경우를 자주 보았다.
의학적으로 여성은 만 35세부터 가임력이 떨어지기 시작하고 만 40세 이후
급격히 떨어진다.
만 45세가 넘어가면 출산까지 이어질 확률은 1% 내외가 된다. 이러한 수치는 병원이나 인터넷 자료를 통해 쉽게 접할 수 있지만 나는 그때까지 이것조차 몰랐다.
나의 무지가 부끄러웠다.
일반적으로 40대 초반까지는 시술이든 자연임신이든 시도할 수 있지만, 중·후반부터는 확률이 매우 낮아진다.
실제로 병원이나 난임 카페, 단톡방에서도 30대 후반~40대 초반 임신 성공 사례는 있지만 40대 중후반은 거의 찾기 힘들다. 설령 임신이 되어도 유산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자신감은 점점 위축되고 떨어진다.
의사와 상담을 할 때마다 듣게 되는
지겹도록 익숙한 말.
"나이 때문입니다. "
이 한 마디로 대부분의 질문은 끝나버린다.
그래서 더 듣기 싫은 말이기도 하다.
이렇게 나는 만 42세, 임신이 쉽지 않은 난임 여성이 되어 난임병원이란 곳을 다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