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이 넘어서도 나는 여전히 결혼과 출산을 꿈꾼다
나는 한동안, 스스로를 '타인의 시선에 무심한 사람'이라 믿었다. 한 마디로 '마이웨이'. 남들이 뭐라든 내가 괜찮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관계 속에서, 그리고 이 사회 속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삶을 사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때로는 말보다 선명한 눈빛, 말없이 건네지는 미묘한 뉘앙스가 비수처럼 날아와 마음에 박혔다.
"요즘은 늦은 결혼 많잖아." "마흔 넘어서 초산인 경우도 흔하던데 뭘."
사람들은 쿨하게 말한다. 위로인 척 건네는 그 말들. 하지만 그 속내가 그리 쿨하지 않다는 걸 나는 안다. 그 말의 이면에는 여전히 선입견이 있고, '늦은 선택'에 대한 의심이 끈적하게 묻어 있다.
특히 나이 지긋한 분들의 시선은 곱지만은 않다. 세상이 변했다고는 하지만, '마흔 넘은 나이에 결혼과 출산을 꿈꾸는 삶'은 여전히 소수다. 그 소수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호기심을 넘어선 무례한 추측들이 따라붙는다.
멀쩡하게 생긴 내가 왜 결혼이 늦었는지, 왜 아직 아이가 없는지 사람들은 속으로 소설을 쓴다. '성격이 보통 까탈스러운 게 아닌가 봐.' '뭔가 하자가 있는 거 아냐?' '혹시 한번 갔다 온(돌싱) 건가?' '진짜 미혼 맞아?'
대놓고 묻지는 않지만, 대화의 공기 속에 떠다니는 그 의심들을 나는 예민하게 감지한다.
그래서 말 한마디, 행동 하나도 늘 조심스러웠다. 나의 작은 실수 하나가 "역시, 그럴 줄 알았어. 그러니까 시집을 못 갔지"라는 그들의 확신에 도장을 찍어줄까 봐. 기혼 여성이라고 모두 성격이 원만하고 따뜻한 건 아닐 텐데, 왜 미혼 여성에게만 유독 '인격적 결함'을 의심하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걸까. 억울함에 마음이 상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이런 일도 있다. 마트나 길거리에서 학습지 영업사원이 다가와 밝게 외친다. "어머니! 이거 하나 받아 가세요!" 그럴 때면 나도 모르게 움찔하며 고개를 돌리거나, 어색한 미소로 상황을 모면하려 애쓴다. 나는 아직 누군가의 어머니가 되어본 적이 없기에, 그 호칭은 내 것이 아니다. 하지만 세상은 '마흔 넘은 여자 = 누군가의 아내이자 엄마'라는 공식을 당연하게 적용한다. 그 당연한 시선 속에서 나는 자꾸만 작아졌다.
분명히 말하지만, 나는 비혼주의자도 딩크족(DINK)도 아니다. 확고한 가치관을 가지고 독신을 선택한 멋진 여성들도 많지만, 나는 그저 인생의 타이밍이 조금, 아니 많이 어긋났을 뿐이다. 나도 남들처럼 평범하고 아름다운 가정을 꿈꿨다. 나를 닮은 아이의 손을 잡고 마트를 거니는 소소한 저녁을 상상해 왔다.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마음속의 꿈까지 늙어버리는 건 아니니까.
하지만 언젠가부터 그 바람을 입 밖으로 꺼내는 게 두려워졌다. 원하지만 가지지 못한 것을 말했을 때, 내 처지가 너무 초라해 보일까 봐. 혹은 동정의 대상이 될까 봐. 그래서 쿨한 척 "아이? 없어도 그만이지"라고 말하거나, 아예 입을 닫아버리는 편을 택했다. 그래야 잡다한 뒷말을 듣지 않아도 되니까. 그게 편했으니까.
난임 병원 대기실에 가보면 나와 비슷한 또래인 40대 중후반 여성들이 종종 보인다. 그들은 대부분 모자를 푹 눌러쓴 채, 자신이 이곳에 있다는 사실을 들키지 않으려는 듯 잔뜩 움츠러들어 있다. 나는 그 마음을 너무나 잘 안다. "그 나이에?"라는 세상의 시선, 의도치 않은 충고, 무례한 질문들이 얼마나 깊은 상처가 되는지 겪어본 사람만이 아는 침묵이다.
하지만,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아니, 말하고 싶다.
나는 꿈꿨다고. 아니, 지금도 여전히 꿈꾸고 있다고. 내 삶의 시계는 조금 느리게 갈 뿐이고, 그건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고.
지각생이라고 해서 남들이 누리는 행복을 포기해야 할 의무는 없다. 물론, 때를 놓치면 모든 것이 배로 힘들다는 것쯤은 나도 뼈저리게 안다. 온몸으로 부딪히며 겪고 있으니까. 하지만 어렵다는 것이 곧 '불가능'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나는 내가 원하는 삶을 향해 조금 늦게, 하지만 멈추지 않고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다. 사람마다 인생의 시차(時差)는 있다. 그 차이는 다름일 뿐, 우열이나 결함이 아니다. 나는 그저 나만의 속도로, 내 인생에 최선을 다하고 있을 뿐이다.
다음화
《그날 나는 시험관을 멈추기로 했다》
몇 번의 시술 끝에 찾아온 뜻밖의 몸의 이상.
그 순간, 저는 멈출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의 육체적·감정적 위기를 들려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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