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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찌소 Aug 25. 2023

아빠는 죽는 게 무서워

나이 듦을 지각한 순간



시아버님의 뇌경색 수술 이후 특별히 변한 것은 없었다. 시댁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지내겠다는 나의 선포는 유효했고 남편 또한 아버님의 수술을 핑계로 시댁에 자주 가는 것은 어떻겠냐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단지 내 눈치를 보며 시댁에 자주 가지 못했던 남편은 혼자서라도 열심히 자기 집을 드나들기 시작했다. 나는 그 부분에 대해서 나도 안 가니까 너도 안된다는 식의 유치한 태클은 걸지 않았다.

친정아버지도 내가 결혼한 지 6개월 만에 심근경색으로 수술을 하셨다. 술도 전혀 안 드시고 담배도 안 피우시는 굉장히 건강한 체질이셨는데 어느 날, 밤 11시에 신혼인 딸에게 전화를 거셨다.

”아빠가 지금 심장이 쪼이는 것 같이 많이 아픈데, 네 엄마가 꾀병이라고..... “

하시며 말을 잇지 못하시길래,

”아빠, 엄마 바꿔봐.
엄마~ 왜 아빠 아픈 걸 꾀병이라고 하는 거야?. “

”네 아빠가 저러는 게 한두 번이냐?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너는 얼른 자. 이 시간에 왜 너한테까지 전화를 하는지 모르겠다. “

”오죽하면 아빠가 나한테 전화했겠어? 당장 병원에 가봐. “

”알았어. 갈게. 걱정 말고 얼른 자기나 해라. “

”당장 가 알았지? 아빠 바꿔봐. “

”으... 응.... 아빠야... “

”아빠, 내가 엄마한테 이야기했으니 지금이라도 당장 병원 가봐. 알았지?. “

”고마워 딸..... “

꾀병이라고, 신경 쓰지 말라던 엄마의 말과는 다르게 아빠는 심근경색 판정을 받으셨고 조금만 늦었어도 큰일 날 뻔했다고 한다. 바로 수술을 받으시고 그 후로 몇 년째 약을 드시며 관리를 하고 계신다.

나에게 아빠는 버팀목이었다. 아프다고 딸에게 죽는소리를 하실 분이 아니셨다. 아직도 그날 밤, 어떤 마음으로 딸에게 전화를 하셨을지 생각만 하면 가슴이 미어진다.

단단했던 아빠의 마음은 60이 넘으시면서부터 젤리처럼 말랑말랑해지기 시작했다.

 "뜸북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
뻐꾹뻐꾹 뻐꾹새~~~ 숲에서 울제"

어릴 적 배우셨다던 동요를 큰 목소리로 부르시기도 하고,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이 난다고 시를 지어 메시지로 보내주시기도 하셨다.

아빠의 젊은 시절엔 볼 수 없었던, 조금은 오글거리고 어색한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많이 약해지셨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아렸다.

아빠는 수술 후에 본인이 곧 죽는 건 아니냐며 밤에 잠을 잘 수가 없다고 무서워하셨다.
마치 어린아이가 엄마한테 징징거리며 보채는 것처럼, 눈 감고 자다가 죽는 건 아니냐면서 편히 주무 시지를 못하셨다.
 아빠 위로 두 분의 큰아버지께서도 심근경색으로 돌아가셨다. 그래서 아빠도 형들처럼 그렇게 자다가 죽게 되는 건 아닐까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닌 모양이었다.

아빠에게 괜찮다고 위로를 해주었지만 죽음에 대한 원초적인 공포까지 떨쳐버리게 해 줄 순 없었다. 아빠도 이제, 산 세월보다 살아갈 세월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이번 수술을 통해 크게 느끼셨을테니까.

딸이 자식을 낳고 중년의 나이가 되니, 중년이었던 아빠는 얼굴에 검버섯이 가득한 노인이 되어 있었다.

세상이 참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워하던 마음도, 사랑하던 마음도, 이들이 떠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을, 공중으로 분해되어 없어져 버리는, 공기 같은 것임을.

나는 왜 그렇게 악착같이 미워하는 데 힘을 다 빼고 살았을까?

그렇게 미워하는 마음으로 내 30대를 바치고, 어느새 나는, 마흔 살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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