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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찌소 Aug 26. 2023

결혼은 했지만 남편은 필요 없습니다.

고난을 당해보니.



남편은 화초 같던 한 여자의 인생을 눈물바다로 만들어 버린 나쁜 놈 중의 나쁜 놈이다. 자기 가족에게 목소리 한 번을 못 내서 아내의 가슴에 커다란 피멍을 남겼다.
나는 남편을 용서할 수가 없었다.

32살, 그 고운 나이에, 내가 좋아 죽겠다는 마음 하나 믿고 결혼했는데 나를 방치했다.

간절하게 울부짖던 내 외침을 들어주지 않았다.

정말, 단 한. 번. 도 시부모님, 혹은 시댁 식구들 앞에서 편들어주기는커녕 그만하라고, 왜 이러시냐라는 간단한 말조차 해준 적이 없었다. 단 한 번도...

나는 이 놈을 정말 죽여버리고 싶었다. 나한테는 잘도 쏘아붙이면서 도대체 왜! 자기 가족에게는 한 마디도 하지 못하는 걸까?

와이프, 혹은 딸자식한테는 싫은 소리, 기분 나쁜 소리도 적잖게 해대면서 자기 집에만 가면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에 지퍼를 잠근다. 그리고 목에 칼이 들어와도 지퍼를 열지 않는다. 결국 그 칼을 맞는 것은 온전히 내 몫이다.

'왜 아무 말도 안 해? 좀 도와줘! '라고 텔레파시를 보내도 절대로 그 입을 열지 않는다.

나는 남편이 무섭기도 했다. 꼭 흉기로 찔러야만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남편에게는 자기 손에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도, 말 한마디 하지 않고서도 사람을 말려 죽일 수 있는 천부적인 소질이 보였다.

시댁에서 점점 아웃사이더가 될수록 나는 살아서 뭐 하나라는 끔찍한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손 하나 까딱 안 하고도 남편은 내게 정신병을 안겨 준 셈이다.
도무지 남편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 나를 점점 미치게 만들었다.


이 인간의 머릿속엔 도대체 뭐가 들어있단 말인가.

사이가 잠시 괜찮아졌을 때도 남편은 왜, 도대체 시댁에 가면 입을 닫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싫어했다. 회피했다.

나는 혹시 남편의 어린 시절, 양육 방식에 문제가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어 조심스럽게 깊은 대화를 유도해 보았지만 남편은 자기 부모님은 완벽하다는 식으로 대화를 단정 지으며 마무리하기 급급했다.

전문가에게 상담을 받아보자고 권유도 해보았지만 본인은 필요 없다고 할 뿐, 관계 개선에 대한 노력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그냥 이혼만은 하지 말자고 바랬을 뿐이다.

평생 가져갈 신뢰와 추억을 쌓아가도 모자란 신혼에, 나는 남편에 대한 신뢰를 잃었고 추억이라곤 시댁과의 악몽뿐이었다.

그래도 살아보고자, 당신이라는 인간에 대해 이해하기를 죽을힘을 다해 노력해 본다면, 우리 삶은 바뀌지 않을까 싶어 용기 내어 손을 내밀었는데.

부부간의 영혼이 묶여있던 고리가 끊어진 기분이다.

처음엔 너무 잘 맞아서 결혼을 했다 한들, 부부는 결코 하나가 아니었다.


사람은 함께 고난을 겪어봐야 진면목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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