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싸움은 보통 두 사람의 생각이 다를 때 시작된다. 결론부터 말하면 나와 다른 배우자를 매일 같이 들들 볶아가며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변하기를 기대한다면 그것만큼 시간 낭비인 경우는 없을 것이다.
부부는 일심동체의 사명을 가지고 결혼을 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너는 너 나는 나' 식의 개인주의 마인드로 지낼 수가 없다.
하지만 연애때와는 다르게 서로 다른 두 사람이 한 집에서 '함께 사는 문제'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일단 서로 많이 다르다는 것을 확인한다. 당연히 초반에는 그 다른 모습마저 사랑스럽다. 특별히 애써 마음을 노력하지 않아도 그저 사랑스럽다.
하지만 인간은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오래된 것은 서서히 질려하는 특성이 있다.
부부생활 몇 년만 지나면, 특별히 노력하지 않아도 살아지던 관계가 서서히 엄청난 노력을 해야 살아진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부부는 계속 설레는 사랑을 할 수 없다. 나 같은 경우도 이 더럽게 안 맞는 남편이란 사람에 대해 어쩔 수 없는 의무감으로 살고 있으니 말이다.
신혼에는 양말을 빨래함에 벗어두지 않고 방에다 던져놓는 남편의 모습이 그저 귀여워 보였지만, 이제는 귀엽게 봐주고 싶어도 나에게 최면과 주문을 걸지 않는 이상, 배우자의 모습이 더는 사랑스럽게 보이지 않는다.
그럴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꼴 보기 싫은 그 행동을 고치기 위해 ’ 나는 옳고 너는 틀렸소 ‘ 의 마인드로 배우자를 내 방식으로 바꾸려고 한다.
그래서 샤워를 할 때 세면대에 놓인 치약 하나를 가지고도,
"끝에서부터 짜야한다." "내 맘이다 난 이렇게 살아왔다, 너나 잘해라"
라고 다투다가 이혼을 하네 마네, 법원까지 가게 되는 것이다.
신이 주신 다양한 기질 중 나는 공감 능력이 굉장히 발달한 사람이다. 그래서 감수성이 풍부하고 타인의 일이 내 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남편은 공감능력이 마이너스에 가깝다. 시댁 문제로 피 터지게 싸워도 1분이면 코를 드렁드렁 골면서 잠이 든다.
처음부터 남편은 공감능력이 제로였다. 보통 많은 남자들의 기질이기도 하지만 내 남편은 좀 더 심한 편이라 보면 된다. 무슨 고장 난 고철 따위랑 사는 기분이 드니까.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절대 남편을 고쳐 쓰려고 내 에너지를 쓰지 않을 것이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남편은 절대 시부모님께 "더는 내 여자를 건들지 마시오!!"라고 할 수 있는 그릇이 안 되는 것을 이제는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어쩌면 공감 능력이 좋아 시댁과의 갈등이 나에게 더욱 크게 느꼈던 것일지도 모른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지 못하는 성격이라 말하는 족족 가슴에 화살처럼 꽂혔었다. 그래서 내가 가진 공감이라는 기질을 부정한 적도 있었다. 내 스스로가 싫었다. 많은 감정이 너무 잘 느껴지는 나 자신이 싫었다.
시댁과의 갈등을 내 문제로, 내 잘못으로 치부하니 자존감은 더욱 바닥을 기었다. 내가 괜히 예민한 사람 같고 별것도 아닌 것에 크게 반응하는 사람 같았다.
하지만 이제는 내 잘못이 아니라고, 내가 너무 공감능력이 좋아서 벌어진 일이 아니라고 나를 다독여준다.
내가 가진 공감 능력으로 인해 할 수 있는 좋은 일들이 얼마나 많은데, 나의 가치를 알아주지 못하는 시댁 식구들 때문에 나의 장점을 가치 없는 것으로 만들 필요는 없는 것이다.
누군가 나와 갈등 상황이 생겼을 때, 그도 나와 같은 크기로 고민하고 아파할 거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그들은 내가 생각하는 만큼 아파하지도, 고민하지도 않고 밥만 잘 먹고살더라.
그래서 나는 나라는 사람이 가진 기질에 대해 부정하지 않고 나에게 준 상처를 정중히 사양하고 있는 중이다. 내가 받지 않으면 그 더러운 말들은 내 몸과 마음을 감히 더럽힐 수 없다. 나는 이제 시댁에서 주는 상처를 패스하고 그들을 미워하는 것조차 그만두었다. 그럴 시간에 나는, 내 삶을 더욱 의미 있고 풍요롭게 만들 궁리로 즐겁게 보낼 것이다.